일부러 ‘후보’라고 적힌 머리띠를 썼다. 머리띠를 쓰지 않으면 주민들은 20대 여성인 그를 지방선거 출마자라고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 같은 이름도 혼란을 키웠다. “제가 인사를 드리면 주민 분들 동공이 흔들리면서 ‘후보가 어디 있지?’ 하고 찾거든요.”

백상진씨(29·가운데)는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시의원으로 출마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서 정책비서로 일했던 그는 고양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심상정을 키워달라’고 호소했다. 20대 내내 진보 정당 당원으로서 좋은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했다면, 30대에는 직접 좋은 정치를 펼쳐보고 싶었다. 올해 4월에는 그간 다져온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모든 것〉(김예찬 공저)이라는 책을 썼다.

ⓒ시사IN 신선영

동갑내기 선대위원장 최한솔씨(29·오른쪽)는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 출신이다. 같은 당 사람이니 알고는 지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선거 캠프를 맡아달라고 먼저 제안한 건 백상진씨였다. 뜻밖의 제안을 최씨가 덥석 받았다. “청년 여성이 정치하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도울 거리가 있다면 돕고 싶었어요(최한솔씨).” 여기에 정의당 당원이자 고양 시민인 이버들씨(28·왼쪽)가 합류했다. 후보 백상진, 선대위원장 최한솔, 사무장 이버들로 ‘가시나(가즈아, 시의원, 나도!) 선본’이 꾸려졌다.

선거판에서 20대 여성 셋은 보기 드문 조합이다. 처음에는 이들 스스로도 가시나 선본이 불완전하게 여겨졌다. “일단 저희 셋 중에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사무실로 이상한 사람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캠프에 남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백상진씨).” 선거운동도 녹록지 않았다. ‘청년’ ‘여성’ 그리고 ‘진보 정당’, 정치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꼽히는 3가지를 모두 갖춘 캠프였다.

결론은 “우리가 해도 문제없다”였다. 짧은 선거 기간 이들은 빠르게 노련해졌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던 “결혼은 언제 하나”라는 주민들의 물음에 어느덧 “아드님 있으면 소개해주세요”라고 눙칠 수 있게 되었고, “이 지역에 연고가 없다”라는 경쟁 후보의 네거티브는 “덕분에 지역의 이권에서 자유롭다”라고 맞받아쳤다. 주민들의 호응도 점점 좋아졌다. 하루 유세를 마치면 가시나 선본은 다 같이 손을 포개고 “당선!”을 외쳤다.

선거 결과는 낙선. 백상진 후보는 14.2%(6644표)를 득표해 3위까지 당선되는 고양시 사선거구(일산동구)에서 4위를 했다. 개표 참관을 갔던 이버들 사무장은 “눈물이 앞을 가리면 무효표를 제대로 못 볼까 봐 (개표장에서 울음을 참았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숙연해졌던 가시나 선본은 저녁으로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얘기에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백상진씨는 앞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며 정치적 기반을 닦을 계획이다. 6월22일 열린 정의당 지방선거 보고대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년 여성이 해내는 진보 정치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일산을 보게 하겠습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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