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현장 취재를 위해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덥고 힘겨웠다. 가장 답답한 건 융통성 따위 없는 빡빡한 통제였다. 취재진이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올림픽을 치르듯 그럴싸한 프레스센터를 마련했지만, 현장 소식은 현지 언론인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의존해야 했다. 국가자본이 지분을 소유한,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였다. 언론 자유 최하위권 국가라서, 오히려 정부 소식은 이 신문이 가장 빨랐다.
돌아와서 궁금증이 생겨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리콴유-리셴룽 부자의 통치를 이 도시국가는 어떻게 용인하고 있는지, 눈으로 본 풍경의 진짜 속사정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직접 일하고, 생활하고, 아이를 교육한 저자는 다양한 층위에서 싱가포르의 역사·사회·경제·문화를 설명한다. 잠깐 여행하는 이의 겉핥기가 아니라, 싱가포르 사회의 명과 암을 모두 체감한 이의 경험과 연륜이 묻어나는 책이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도 그래서 명쾌하다.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 싱가포르는 주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는지, 싱가포르 사람들은 경제적 번영을 대가로 어떤 자유를 포기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일률적인 교육제도, 에어컨의 축복, 비밀경찰의 존재, 메이드(가정부) 문화의 일반화 등은 일관되게 싱가포르라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독재자이자 논쟁적인 지도자도 있다.
저자는 이 통제국가를 “기득권자라면 기득권자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소수민족은 소수민족대로 각자의 몫을 챙긴 채로 유리벽 안에서 행복을 만들었다. 지금의 싱가포르는 암묵적 동의가 곁들여진 작품일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한다. 거대한 호텔 수영장과 사자 머리 조각상으로는 읽을 수 없는 싱가포르 사회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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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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