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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네 잘못이다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8년 07월 06일 금요일 제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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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욱 시인 특유의 짧은 시 가운데는 걸작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내가 항상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이 있다. 본문은, ‘니가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시를 읽는 재미는 제목에 있다. 여러분도 한번 맞춰보시라. 이 시에는 어떤 제목을 붙이면 좋겠는가. 답은 ‘신용카드’이다.

신용카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보통 사람에게 발급된 백지수표이다. 황송한 일이지만 없는 사람 사정 봐주려고 생겨난 제도는 아니다. 돈에 쪼들려 사는 게 일상인 이들에게는 잔인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돈놀이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사악한 면이 있다. 분배를 하지 않고도 경제가 돌아가게 만들려고 생각해낸 꼼수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 신용카드 탓에 얼마나 많은 평범한 가정이 박살났을까. 시인의 눈에는 신용카드를 가위로 잘게 자르며 눈물 흘리는 이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부당하다. 신용카드야말로 국가가 ‘자본의 시다바리’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신용카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잘못’도 있다. 7가지로 분류되는 플라스틱 제품 중 가장 해로운 폴리염화비닐(PVC)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PVC는 생산-사용-폐기 단계에서 모두 유독물질을 뿜어내는, 애초에 태어나서는 안 될 물질이다.

ⓒ한성원 그림

PVC 공정은 매우 복잡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분화 발전하고 있는데, 단순화해보면 이런 거다. 기본 재료는 원유(43%)와 소금(57%)이다.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에 소금물을 전기분해한 염소를 섞어 이염화에틸렌(EDC)을 만드는데 다단계 공정을 거쳐 이 EDC는 염화비닐단량체(VCM)가 됐다가 PVC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간암, 뇌종양, 폐암, 림프종, 백혈병, 간경화 등을 일으키는 악명 높은 염소·다이옥신을 비롯한 유독물질이 대기로 풀려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순수한 형태의 PVC는 부서지기 쉬워서 쓸모가 없다. 여기에 갖은 화학물질과 첨가제를 보태야 유능해진다. 신경 독인 납·수은 같은 중금속과 생식계 장애를 일으키고 암을 유발한다는 의심을 받는 프탈레이트 같은 인공 화합물이 합세한다. 불행하게도 첨가물은 고착되지 못하고 서서히 새어나온다. 이를 기체방출(off-gassing)이라고 한다. 어떤 때는 빠르게, 어떤 때는 느리게 완전 제멋대로다.

PVC는 가볍고 질긴 데다 값도 싸서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사람 사는 모든 곳에 등장한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인조가죽 신발과 지갑, 비옷과 장화, 빗물받이 홈통을 비롯한 각종 건축용 파이프, 창호, 전선과 케이블의 피복이 모두 PVC이다. 이뿐 아니라 바인더와 같은 사무용품,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가운데도 PVC 제품이 적지 않다. 중국집 배달음식인 짜장면이나 짬뽕, 대형마트의 육류·해산물·채소류를 감싼 비닐 랩 역시 PVC이다. 병원에서 쓰는 수액 줄도 대부분 PVC 제품이라고 보면 맞다.

2008년 미국의 환경단체 보건환경정의센터(CHEJ)는 새 PVC 샤워커튼에서 기체방출 현상으로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새나오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28일 동안 108종이나 되는 유독성 물질이 나온 것을 확인됐다. 미국의 그린빌딩협의회(US Green Building Council·USGBC)가 권고한 실내공기 품질 기준치를 16배나 초과한 수준이었다. 새집에 입주할 때뿐만 아니라 새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마치 수집이라도 하듯 각양각색의 신용카드를 갖고 다닌다면 화학 지뢰를 품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바닷거북 콧구멍에서 왜 빨대 조각이 나올까


PVC는 사용 후에 더욱 처치하기 곤란하다. 바다에 투기하거나 땅에 묻으면 독성물질이 새어나온다. 소각은 더욱 나쁜 선택이다.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환경에 잔류하는 초강력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이 대량으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PVC는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염소 함유량이 높은 탓이다. 재활용하려면 염소를 제거할 수 있는 정교한 장치가 필요한데 국내 업체 가운데는 이런 설비를 갖춘 곳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PVC 재활용률은 5%에 불과하다.

재활용도 폐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는 2005년 냉동식품을 제외한 모든 먹을거리에 PVC 랩을 사용하는 걸 금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2015년 PVC 수액 줄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런 법은 지금 거의 유명무실하다. 정부도 지자체도 이 법을 근거로 업계를 제대로 단속한 일이 없다. 국가가 자본의 밑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중국은 30년 넘게 전 세계의 플라스틱 쓰레기 하치장 노릇을 해왔다. 우리나라는 골치 아픈 PVC를 포함한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를 중국에 떠넘기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1년에 1인당 비닐봉지 420장, 플라스틱 100㎏을 소비하는 플라스틱 강국이 되었다. 어느덧 분리수거도, 재활용도, 독성물질 단속도 느슨해지고 말았다.

2016년 중국은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의 절반 이상인 700만t을 수입했다. 그동안 중국이 통 크게도 전 세계의 쓰레기를 흡수해준 탓에 도덕적 해이에 빠진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집요하게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용에 힘써온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소수 유럽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그동안 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애써 외면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플라스틱 초강대국인 미국의 재활용률은 9%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2016년 중국의 젊은 감독 왕주량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영화에 따르면 5000개에 달하는 중국의 쓰레기 마을에서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란다. 플라스틱을 압축해 쌓아놓은 산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배가 고프면 오염된 물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건져내 튀겨 먹기도 한다. 이 영화 상영을 계기로 중국 내 여론이 악화했다. 결국 지난해 환경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1월 플라스틱 쓰레기를 포함한 수십 종의 폐기물 수입을 중단했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부 외신은 이를 ‘역 아편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이 오랫동안 전 세계가 플라스틱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부추겼다가 갑자기 쓰레기통 뚜껑을 닫아 금단현상을 초래했다는 뜻에서다.

중국의 금수 조처로 각국 야적장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가면서 전 세계는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서서히 깨달아가는 중이다. 중국이 골치 아픈 문제를 떠맡아준 탓에 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국제 협약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말았다.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 협정 정도의 느슨한 국제 규제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가운데 중국에 쓰레기를 수출할 형편도 못 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구 버려졌다. 특히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4개국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 관리가 정부나 지자체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함부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반은 중국과 이 네 나라 작품이다.

한때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민의 자랑이자 휴식처였던 파시그 강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파시그 강은 해마다 7만2000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다에 쏟아놓는다. 전 세계 강 중에서 쓰레기를 많이 운반하기로 10위권에 든다. 현대식 빌딩과 위태로운 판잣집 사이에 끼어 있는 차이나타운 근처의 지류는 엉켜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밟고 지나다닐 수 있을 지경이다. 마닐라에서는 17개 지방자치단체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관리하는데, 혼란과 비효율의 표본이다.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MH370기가 쿠알라룸푸르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던 도중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수색은 인도네시아에서 남인도양까지 확대되었다. 몇 주일 동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위성이 바다에 떠다니는 물건 더미를 포착할 때마다 희망이 솟았다. 하지만 비행기 잔해나 유해가 아니었다. 번번이 쓰레기였다. 망가진 선박용 컨테이너, 버려진 낚시 장비, 하지만 가장 많은 것은 플라스틱 봉지였다. 전 세계가 처음으로 대양이 플라스틱 쓰레기 최종 처리장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2015년 미국 조지아 대학 제나 잼벡 교수(공학)가 거칠게나마 계산한 바에 따르면 매년 530만t에서 1400만t에 이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 세계 해안으로 밀려든다. 누군가 배를 타고 와서 버리는 게 아니다. 육지에 버린 쓰레기가 빗물을 타고 강으로 흘러들어 해안가로 유입되는 것이다. 그는 “상상해보라. 전 세계 해안선에 1피트(30.48㎝)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든 백화점 쇼핑백이 늘어서 있는 꼴이다. 그 무게만 아마도 880만t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1950년 이래 생산된 플라스틱은 92억t에 달한다. 그중 70%에 못 미치는 양이 재활용되거나 매립되었다. 27억t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수장되었으리라는 얘기다. 인류는 그동안 수영장에서 몰래 오줌을 누는 것과 같은 일을 해온 셈이다. 자연 분해되기까지 450년도 모자란 이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금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당장 눈에 띄는 광경부터 기괴하다. 사진작가들은 섬뜩한 장면을 질리지도 않고 잡아낸다. 인도네시아 해안에선 서퍼가 비닐봉지가 물방울처럼 흩날리는 속에서 서핑을 즐긴다. 해양 생물학자가 바다거북의 콧구멍에서 플라스틱 빨대 조각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이든 붙들고 이동하기를 좋아하는 해마가 면봉에 매달려 있다. 그것도 청정 해역에서.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더욱 아슬아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제566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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