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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음식에서 난민을 읽다

환타 (여행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10일 화요일 제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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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입을 사로잡은 외국 요리는 베트남 쌀국수 가운데 하나인 ‘분짜’다. 이 요리는 북베트남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푸드’다. 1990년대 하노이의 한 골목을 거닐다 발견한 분짜는 식당의 외관부터 놀라웠다.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연신 국수를 입에 욱여넣는 사람들이 장관이었다. 한 그릇 요리의 대명사 국수치고는 채소도 풍부했고, 마리네이드된(양념장에 재워둔) 고기를 계속 부채질하면서 구워대는 그 풍경이 발길을 이끌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이미 한 그릇을 해치우고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쌀국수를 집어 베트남식 젓국인 ‘느억맘’을 희석한 소스에 담갔다가 양상추, 박하, 고수, 그리고 훈제 향이 가득한 달콤한 돼지목살 구이와 함께 싸먹는 그 맛은 1990년대에 먹어본 외국 요리 가운데 단연코 가장 인상적이었다. 국수, 채소, 고기가 어우러진 완벽한 맛이라고나 할까. 이후로 나는 베트남 식당만 보면 으레 분짜를 찾았다.

홍콩은 베트남 전쟁 직후 꽤 많은 보트피플을 받아들였던 곳이다. 그 덕에 전역에 베트남 식당이 있다. 특히 삼수이포(深水埗) 지역은 그 시절 홍콩에 정착한 베트남인의 집단 거류지 같은 곳이다. 홍콩 번화가에서 분짜를 못 찾은 나는 물어물어 삼수이포라는 곳의 존재를 찾았다.

ⓒ안진헌 제공
분짜는 북부 베트남에서 즐겨 먹는다.

그러나 기대는 허물어졌다. 삼수이포에도 분짜는 없었다. 분짜의 베트남어 발음기호까지 들이밀었지만, 삼수이포의 베트남 식당에선 그런 요리를 모른다고 했다. 어찌된 일인가 싶을 즈음, 어느 식당 주인과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분짜’ ‘분짜’ 하는 걸로 보아 내 이야기였다. 이윽고 식당 주인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그건 하노이 음식이래.” “그게 무슨 말이야? 하노이도 베트남이잖아.” “이 친구야 잘 생각해봐. 베트남이 어찌 됐어? 북쪽이 남쪽을 통일했잖아. 그 탓에 우리가 홍콩에 살고 있잖아. 우리는 남베트남 출신이야. 네가 찾는 요리는 북쪽 음식이고!” “아! 그렇구나!”

예상치도 못한 실수였다. 아니 그래도 요리깨나, 그 나라 역사깨나 안다고 자랑하고 다니던 처지에서는 대망신이었다. 말하자면 마산 아귀찜 전문점에 가서 왜 함경도의 가자미식해가 없느냐고 하는 황당한 짓을 국제적으로 꾸준히 하고 다녔던 셈이다.

마산 아귀찜 집에 가서 가자미식해 찾는 격

몇 년 뒤 서울에 분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를 의심하면서 서울로 갈 일정을 잡았다. 광역버스 안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실 쌀국수인 ‘Pho’와 월남쌈이라 불리는 ‘고이꾸온’이 전 세계에 퍼진 계기는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패배하면서 대량의 난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별 재주가 없던 남베트남 사람들은 아시아인 거주지에서 국수를 팔았고 그게 세계 각지에 퍼졌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음식은 난민의 요리다.

분짜가 한국 땅에 들어온 건 좀 다르다. 한국에서 분짜 식당을 연 사람들은 남베트남 사람이 아니다. 베트남의 경제 개방 이후 대거 외국인 노동자로 밀려들어온 북베트남 사람들이다.

한국의 분짜 식당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박하처럼 베트남에서 즐겨 먹는 향신료가 빠졌거나, 고기를 굽는 기술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느억맘 소스도 너무 달기만 하다. 그럼에도 홍콩은 물론 남베트남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분짜를 한국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꽤 행복감을 준다. 제주도 난민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베트남 요리가 각별하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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