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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는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인들에게 정치적 성향은 이제 선거 날 어느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쇼핑 방식과 직장 생활, 주거지와 차량 선택도 좌지우지한다.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정치학)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11일 수요일 제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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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14년 6월에 발표한 <미국인들의 정치적 양극화>라는 보고서는 큰 충격을 줬다. 보통 여론조사보다 10배는 많은 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미국인들이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정치적 양극화의 수준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다양한 통계 지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잘 안 통한다는 점은 생활 속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에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사이의 이념적 격차는 1970년대까지 갈 것도 없이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더라도 대단히 크게 벌어졌다.

퓨리서치센터는 먼저 응답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물었다(10점 척도로 1점은 매우 진보적, 10점은 매우 보수적). 이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묻고 지지 정당에 따른 정치적 이념 분포를 살펴보았다. 이념의 양극화가 상당히 심해진 시대를 사는 우리가 보기에 민주당은 진보적, 공화당은 보수적 이념을 대표할 것만 같지만, 예전에는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도 보수적인 사람이, 또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도 진보적인 사람이 많았다. 1994~2014년을 10년 단위로 나누어 총 세 차례 해당 분포를 살펴보면 아래 <표 1>과 같다. 파란색이 민주당 지지자, 빨간색이 공화당 지지자, 그리고 중간에 보라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두 정당 지지자들의 이념 분포가 겹치는 부분을 나타낸다. 항상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지지자들보다 진보적이었던 점은 변함없지만, 지난 20년간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 진보적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더 보수적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이념 격차가 벌어지면서 보라색 영역도 줄어들었다.

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념 격차가 커지면서 상대방 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도 증가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27%는 공화당이,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의 36%는 민주당이 미국에 도움은커녕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퓨리서치센터 설문조사 결과는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정치적 의견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답한 사람의 27%는 가족이 공화당 지지자와 결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보수주의자들의 답변도 비슷했다. 정치적 이념은 주거지역의 선호에도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사는 동네를 고를 때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지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한 이들이 응답자의 28%나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사이의 이념적 양극화는 쇼핑 방식과 직장 생활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닐 말호트라 교수가 공저자들과 발표한 논문은 정치가 우리 일상에서 내리는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The Economic Consequences of Partisanship in a Polarized Era>, 2017).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첫째, 직장 상사나 직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임금 협상 전략을 달리하는가? 둘째, 크게 할인된 상품권을 판매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 상품권을 구매할 확률이 달라지는가? 셋째,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가로 3달러를 받는 것과, 6달러를 받는 대신 설문 주최 측이 응답자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추가로 4달러를 기부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까?

정치 엘리트의 양극화가 만들어낸 착시 효과

첫 번째 실험 결과 응답자들은 자신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공유하는 직장이나 그런 상사와 일할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평균 6.5% 낮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다만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상사 아래서 일한다고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상품권을 파는 사람이 응답자와 지지 정당이 같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품권을 살 확률이 두 배나 높았다. 그리고 마지막 실험에서는 75%의 응답자가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음에도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누군가 기부금을 내는 것을 거부했다. 즉, 응답자 넷 중 셋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정당의 금고를 채워주는 꼴은 볼 수 없다고 답한 것이다.

ⓒEPA
3월24일 워싱턴에서 열린 총기 규제 시위.
파크랜드 총기 사건의 생존 학생 엠마 곤살레스가 연설하고 있다.

말호트라 교수와 공저자들의 연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가 단지 어떤 정책을 지지하고 어떤 정치인에게 투표하는지와 같은 정치적 결정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정체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비자로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단체와 관련된 기업을 적극적으로 보이콧한다. 지난 2월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17명이 목숨을 잃은 직후 소셜 미디어에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해온 기업들의 명단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미총기협회는 회원들에게 호텔, 렌터카, 항공권 등 여러 상품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해왔는데 이를 후원한 기업들이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총기 규제 완화에 찬성한 정치인이나 전미총기협회 자체를 비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전미총기협회 회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기업, 협회 웹사이트에 광고를 내는 기업, 그리고 <폭스뉴스>처럼 총기 규제 완화 주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보수 언론에 광고를 싣는 기업까지 적극적으로 골라내 비판하고 있다. 델타·유나이티드 같은 주요 항공사, 엔터프라이즈나 헤르츠 같은 렌터카 회사, 그리고 메트라이프 보험사 등 수십 개 기업이 파크랜드 총기 사건 이후 전미총기협회와 관계를 끊겠다고 발표했다.

몇몇 기업은 소비자들의 보이콧 행렬에 응답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더욱 뚜렷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5일 아웃도어 용품업체 파타고니아는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쳐갔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담긴 제품 광고를 배치했다. 까만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선명하게 쓰인 이 문구는 유타 주에 있는 두 군데 천연기념물을 대폭 축소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파타고니아가 회사 차원에서 소비자와 연대해 항의하는 메시지였다. 전통적으로 기업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다. 여러 기업이 가급적 정치적 색채를 지우려고 노력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기업들이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소비자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요즘 소비자들은 단순히 상품의 품질만 보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를 고를 때 기업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졌다. 전미총기협회가 회원 수 500만명을 자랑하는 거대한 조직이라지만, 이 협회와 결탁한 기업의 물건은 절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천에 옮길 소비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이 사실을 알고도 전미총기협회에 계속 광고를 낼 만큼 용기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단체와 엮이는 건 실제 이윤 감소로 이어진다. 정치적 요인을 고려해 소비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결과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EPA
2016년 11월8일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마지막 심야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일상적인 소비에서도 정치 성향을 따지게 될 만큼 미국인들은 정말로 이념적으로 양극화됐을까? 앞서 언급한 통계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이념적 성향 차이가 지난 20년간 더 벌어졌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시민들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많은 학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아래 <표 2>를 보면 1963~2013년 미국 연방 하원의원들의 투표 행태가 어떻게 변했고, 이를 통해 이념의 양극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숫자(DW-Nominate Score)가 낮을수록 진보적, 높을수록 보수적 투표 행태를 나타낸다. 파란색 그래프가 민주당 의원들의 이념 성향 분포, 빨간색 그래프가 공화당 의원들의 이념 성향 분포다. 민주당 의원들이 줄곧 공화당 의원들보다 진보적 성향을 보였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공화당 의원보다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 민주당 의원보다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두 정당 소속 의원 가운데 이념 분포가 겹치는 의원들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정치 엘리트 가운데 발생한 이념의 양극화는 특히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훨씬 보수적으로 변한 탓이 크다. 민주당 의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해지긴 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보수화에 비하면 그 정도가 훨씬 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인만큼이나 이념의 양극화가 진행되었을까? 언론에서는 유권자들도 양극화됐다는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나 근거도 어렵잖게 들이민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스탠퍼드 대학의 모 피오리나 교수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매슈 레벤더스키 교수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즉, 미국 유권자 전체의 이념 분포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유권자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지지 정당이 명확히 구별되는 ‘정당 분류(party sorting)’ 현상이 일어나 마치 유권자들의 이념도 극명하게 갈린 듯 보인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도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이 섞여 있었다.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나같이 보수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정치 엘리트들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두 정당이 지지하는 정책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던 보수적인 사람은 공화당을, 반대로 공화당을 지지하던 진보적인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두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이념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졌다. 이렇게 이념과 지지하는 정당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아지면 유권자 전체의 이념 분포에는 차이가 없어도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이념적 차이는 커 보일 수 있다. 미국 유권자들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것 같은 모습에는 일종의 착시 효과도 있다는 뜻이다(<Disconnected:The Political Class versus The People>, 2006) 

ⓒAP Photo
2017년 8월22일 피닉스 컨벤션센터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

유권자들의 이념 분포가 변하지 않고도 지지 정당에 따른 이념적 양극화가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을 아래 <표 3>으로 정리해봤다. 진보·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각각 100명씩 있다고 가정하자. 1970년에는 진보 성향 유권자 100명 중 60명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40명이 공화당을 지지했다. 2000년이 되면 전체 유권자 가운데 진보 성향 유권자의 수는 100명 그대로지만, 그 100명 가운데 90명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는 10명밖에 남지 않는다.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고,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계속 무당파로 남아 있다고 가정하자. 이러면 유권자들 전체의 이념 분포는 진보·중도·보수가 그대로 3분의 1씩으로 같지만, 두 정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념적 양극화가 두드러져 보인다. 피오리나 교수와 레벤더스키 교수는 미국 사회에 바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며,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 유권자들이 이념적으로 더욱 갈라섰다는 해석은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원이 동성애자 아니면 흑인이라고?

미국 유권자 전체를 놓고 보면 이념의 양극화가 덜 진행되었을지라도 지지 정당에 따른 유권자들의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진다. 정치학자 더글러스 에흘러와 고라브 수드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서로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The Parties in Our Heads: Misperceptions about Party Composition and Their Consequences>, 2018). 예를 들어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32%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한다(실제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동성애자 비율은 6%).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지지자의 38%가 연봉이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가 넘는 갑부라고 생각한다(실제로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연봉이 25만 달러 이상인 사람은 2%).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응답자일수록 어떤 사람이 상대방 정당을 지지하는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만큼 더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을 동성애자, 흑인, 노동조합원, 그리고 무신론자들이나 지지하는 정당이라고 여기고,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이 노인, 연봉이 2억8000만원이 넘는 사람들, 남부 시골에 사는 사람,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정당 구성원에 대해 더 왜곡된 인식을 가진 사람일수록 상대 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강하고, 자기 정당에 대한 애착이 컸다.

미국인들에게 정치적 성향은 이제 선거 날 어느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기업의 제품을 사고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으며 어떤 지역에 살고 싶은지, 심지어 어떤 차를 운전하고 싶은지와 같은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보적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몰리고, 보수적 시민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게 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공유하는 특징이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 차이보다 두 정당 지지자들의 차이를 더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왜곡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괴물처럼 여기며,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정치적 스캔들을 바라볼 때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가기 쉬워질 만큼 이념 양극화는 시민의 눈을 가린다.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편견을 덧씌우는 행위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민주주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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