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박사과정 수료 후 3년차가 되면서 받고 있던 장학금이 끊겼다. 그때 나는 학교 근처 원룸에서 월세 55만원을 내며 살고 있었다. 생활비야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 쳐도 매달 나가는 월세가 큰 문제였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셋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5000만원 정도면 서울 외곽 지역에 원룸 전세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세 보증금에 더해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돈 2000만원을 제하고도 3000만원이라는 목돈을 더 구해야만 했다. 집안 사정상 부모께 손을 벌릴 처지는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을 찾아갔다. 학교 안에 있는 지점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입출금 창구가 아닌 대출상담 창구 앞에 앉아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이 학교 대학원생인데요. 조교 근무 경력이 3년쯤 되고요. 지금은 수료 상태인데, 직전 학기까지 월 100만원씩 장학금을 받았고, 아르바이트로 매달 얼마쯤을 벌고 있고….” 내 구질구질한 사정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던 창구 직원은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학생이신 거네요. 죄송하지만 고객님, 학생은 전세자금 대출이 안 되세요.”
반전세라도 구해볼 요량으로 임차료가 저렴한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부동산’에서 저 공인중개사무소로 발품을 팔았다.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이란 뻔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가 15만원인가 20만원인가 하던, 방이 삼각형에 가까운 사다리꼴 모양으로 생긴 집을 보고 난 직후 내가 시무룩하게 있으니 부동산 사장이 믹스커피를 타주며 말했다. “토지주택공사에서 대학생들에게 전세금 지원해주는 게 있던데, 학생도 한번 신청해보지 그래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청년 주거 안정화를 위해 대학생들에게 최대 7500만원까지 연 2% 정도의 이자로 전세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LH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이 정말 있었다. 7500만원의 연 2%면 매달 12만5000원, 내가 가진 돈으로 반전세를 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토지주택공사에 전화를 걸어 지원 자격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학원생은 해당 사업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생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대학원생은 ‘학생이라서’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고, ‘학생이 아니라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세임대주택 혜택을 받지 못한다. 대학 기숙사 역시 학부생 우선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대학원생 수용률은 매우 낮다. 사회적으로 대학원생이란 미성숙과 성숙, 학교와 사회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문제는 이 ‘끼어 있음’이 단지 사회적 인식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 정책의 기획, 입안 및 시행 과정에서 대학원생을 실질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외의 구조는 비단 주거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대학 내 인권, 노동권 문제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객님, 학생은 대출이 안 되세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의 좌절로부터 4년이 지난 2018년 현재, ‘LH 청년전세임대주택’ 사업이나 ‘SH 행복주택’ 사업처럼 전일제 대학원생도 지원할 수 있는 주거 안정화 사업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고통을 호소해온 대학원생들의 외침이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진정 성숙한 사회라면, 대학원생의 ‘공부’가 개인적 성취이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 ‘앎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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