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였다. 각본이 없었기에 감동과 여운은 더욱 진했다. 국내외 누리꾼들은 FIFA 랭킹 1위 독일을 이긴 한국 축구에 열광했다. 16강 진출보다 더 값진 승리라거나 독일을 이긴 거면 8강에 진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댓글이 넘쳤다.

특히 독일전 승리의 수훈 선수인 조현우 골키퍼와 첫 골을 넣은 김영권, 두 번째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에 대한 ‘댓글 헹가래’가 돋보였다. “살다 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골키퍼를 보다니…” “김영권은 까방권 5년” 등등.

독일 대표팀은 80년 만에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유구무언 신세가 되었다. 독일 언론과 축구팬들은 멘붕에 빠졌다. 독일의 유력 시사 주간지 〈슈피겔〉 페이스북 담당자는 축구 중계를 보며 실시간으로 포스팅을 올렸다. 경기 도중 2골 차 미만 또는 무승부 상황을 염두에 두었는지, 첫 포스팅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암시하는 수학 공식이 떠다니는 풍자 동영상이었다. 후반전 막판까지 0-0이 지속되며 답답한 경기를 이어가자 서류를 던져버리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결과는 0-2 패. 종료 직후 〈슈피겔〉 페이스북 담당자는 ‘All The Feels(모든 느낌)’라는 짧은 글과 함께 통곡하는 남성의 사진을 올렸다.

충격적인 패배를 한 독일 내에서는 특히 주목할 만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메수트 외질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터키계인 그는 지난 5월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는 에르도안을 외질이 지지했다며 월드컵 전부터 구설에 올랐다. 독일 언론은 월드컵 경기에서 그가 패스한 횟수 등 각종 수치를 제시하며 정당하지 못한 비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독일에 처참하게 패한 경험이 있는 국가의 언론은 속보를 타전했다. 압권은 브라질의 ‘폭스 스포츠 브라질’.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7로 패한 앙갚음인지, 경기가 끝난 뒤 A와 H만으로 이루어진 1340자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다(사진). 영국의 한 매체는 F조 꼴찌를 한 독일 성적표를 1면에 담은 뒤 이런 글귀를 뽑았다. ‘이 순위표를 잘라 소장해뒀다가, 기분 안 좋을 때 꺼내 보고 웃어요.’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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