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동성애를 하면 성 중독과 에이즈에 걸린다”라며 보건복지부가 펄쩍 뛸 만한 ‘헛소리’를 했다. 박원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겨냥한 질문이었지만 박 후보는 대답을 피했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텔레비전 토론에서 “동성애 찬성하냐”라고 했던 질문의 반복이었다. 그때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 찬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가 인권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세력은 동성애 찬반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끌고 온다. 민주당은 이 문제에서만은 진퇴양난이다. 동성 결혼이 유럽, 미국은 물론 타이완 등 아시아 국가에서까지 허용된 마당에 성소수자 인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민주당이 ‘같이’ 짊어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민주당이 확실한 대답을 자꾸 피하려 할수록 자유한국당은 더욱 집요하게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들고 나온다. 색깔론과 지역주의가 사라진 지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자유한국당이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기독교 언론사는 각 정당에 ‘동성애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동성애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는 반대한다’라고 대답했다. 민주당은 차별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대답을 한 셈이다.
‘동성애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은 정치인으로서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 정체성으로 인정하느냐’ ‘동성애에 대한 차별 금지를 찬성하느냐’ 등을 묻는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 누구도 ‘동성애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다. 그냥 대답하기 싫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의 반대로 좌절된 이후, 12년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겁만 내고 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정당 조직 등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결사체가 발전하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에서 각 지역구의 강력한 조직은 종교단체, 특히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다. 이들은 지역과 전국 차원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 교회는 동성애 반대에 사활을 걸고 있고, 지역구 정치에서 성소수자들이 과소 대표되는 만큼 보수 교회가 과잉 대표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답을 피한다. 자신들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집권 여당이며,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새로운 갈등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애용하는 구호는 ‘사람’과 ‘상식’이다. 이 구호에는 우리 사회의 사람이라면 응당 어떤 가치와 정서를 공유할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민주당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 서로 처지가 다른 사람들,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권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정치제도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다’의 사람에서 한국인·이성애자·‘정상가족’이 아닌 이들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성소수자·젠더·난민·노동 형태 등 새로운 갈등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더 이상 보편적인 사람에 대한 호소로는 이러한 갈등을 다룰 수 없다. 민주당은 새로운 갈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갈 유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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