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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 어울리는 ‘빛의 기록’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8년 06월 29일 금요일 제5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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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내 순간의 기억> 정헌기 지음, 아트주 펴냄
정헌기 호랑가시나무창작소 관장은 광주 문화계에서 낮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상대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 목소리는 조용한 견제를 부른다. 그의 입바른 말이 불편한 이들이 그를 프로젝트에서 배제한다. 그럴 때도 그는 목소리를 높여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조용히 속으로 삼킨다. 보통 목소리가 커야 인정받고 보상받는데, 그는 이런 룰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양림동은 그런 그를 묵묵히 품어주었다. 구한말 광주의 대표적 풍장 터(돌림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내다버리던 장소)였던 양림동 언덕은 서양 선교사들이 호남 지역 선교를 위해 처음 자리 잡은 곳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전의 광주를 설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서양 선교사들에게 배운 근대정신이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양림동은 광주의 맥락을 풀어주는 곳으로 여기서 광주의 속살을 엿볼 수 있다.

마음의 분노를 삭이며 정 관장은 양림동에 문화기지를 한 땀 한 땀 지어나갔다. 귀신이 나올 지경으로 방치되었던 선교사 사택을 다듬고 가꾸어 예술가 레지던스 시설인 호랑가시나무창작소와 호랑가시나무게스트하우스를 조성했다. 두 시설은 ‘근대 양림동’을 재현해주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의 단골손님 중 한 명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방치된 창고를 개조해 ‘아트 폴리곤’ 갤러리를 만들어 광주를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요즘은 빈터에 쉼터 ‘갇혀진 시간’을 만드는 중이다. 정 관장이 구축한 ‘호랑가시나무 존’은 가장 양림동다운 공간이다.

지난 14년 동안 양림동에서 자발적 유배의 시간을 보냈던 그는 이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같은 자리의 다른 순간이 보여주는 같음과 다름을 글로도 풀었다. 여행자가 받은 순간의 느낌으로는 결코 포착하지 못할 깊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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