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사 바이올렛이라는 가수가 있다. 1990년생으로 미국 출신인데, 타이와 홍콩 등지에서 모델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녀가 모델 일을 접고 음악 쪽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2014년쯤부터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앨범을 발표하고 미국 동부를 돌며 투어를 진행했다. 이쯤 되면 아마도 당신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거다. “음반사와 계약하고 투어를 했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다. 앨범 계약? 그런 것 역시 없었다.

앨범 계약을 하지 ‘못했다’가 아니라 ‘없었다’고 적었다. 투어 제목 역시 거론하고 넘어가야 한다. 〈더 리빙 룸 투어(The Living Room Tour)〉. 그렇다. ‘남의 집 거실’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얼마 전, 테사 바이올렛은 신곡 ‘크러시(Crush)’를 공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5만 회를 넘고, 댓글 수천 개가 주렁주렁 달렸다. 15만 회가 별거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소속사도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일궈낸 수치라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핵심 동인은 음악 그 자체다. 작곡이 깔끔하고 과하지 않은 편곡으로 노래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냈다. 더불어 호평 일색인 댓글들은 뮤직비디오의 퀄리티가 얼마나 빼어난지를 말해준다.

ⓒYou Tube 갈무리뮤지션 테사 바이올렛(아래)은 음반사와 계약하지 않고도 미국 동부를 돌며 투어했다.

그녀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없었던 것’들을 말해야 할 차례다. 음반사와 프로모션, 그리고 차트.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를 인지해야 한다. 먼저 뮤지션이 얻을 수 있는 수익 구조의 변화다. 과거에는 음반 판매와 저작권이 주를 이뤘다면 2010년대부터는 음반 판매가 아닌 공연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스트리밍 시대가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변화다.

프로모션 방식 역시 극적으로 변화했다. 과거, 최우선 타깃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음악 전문 채널)이었다.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 기반의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가 강력한 홍보 수단으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더욱 핵심적인 변화는,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당신은 유튜브 사무실까지 찾아가거나, 홍보 CD를 보낼 필요가 없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음악이다”

음반사와 라디오, 텔레비전은 뮤지션과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본 권력을 통해 수십 년간 압도적 위치를 유지해왔다. 반대로 소셜 미디어, 유튜브 등에서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거의 전부를 자신의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 심지어 테사 바이올렛 같은 뮤지션들은 차트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음반사와 계약하지 않아도, 매스 미디어의 간택을 받지 않아도, 앞서 언급한 마이크로 미디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주목만 받는다면,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러시’의 유튜브 댓글 중 하나. “이것이 우리 세대의 음악이다. 지친 표정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밀레니얼 세대의 음악 만들기에 과거의 거대 권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속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창조하길 원한다. 장담컨대, 이런 뮤지션의 수는 앞으로 훨씬 많아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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