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는 같은 1984년생이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39년, 한국전쟁이 ‘멈춘’ 지 31년 되던 해 한반도에서 태어났다. 조부모 세대는 일제 폭압과 분단을 겪었고, 부모 세대는 전후 세대로 자라났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더 이상 없었다.
처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김 위원장을 봤을 때 그는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기괴하고 낯설어 보였다. ‘불바다’ ‘철천지원수’ 따위 무시무시한 위협을 쏟아내는 북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은 늘 미사일 시험장 아니면 노동당 회의장에서 광기 어린 신도들의 영전을 받는 미치광이 독재자였다. 7년 전, 스물여덟 살에 그가 집권했을 때 같은 나이인 나는 경악했다. ‘이 불안정하고 미숙한 나이에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다니!’ 한반도의 미래가, 내 삶이, 내 가족의 운명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요 몇 달 사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저 나와 같은 1984년생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도보다리 위의 그는 연륜 있는 멘토에게 인생 조언을 듣는 고민 많은 젊은이 같아 보였다. 중간에 합류한 부인을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소개할 때 살짝 얼굴을 붉힌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젊은 남편의 모습이었다. 6월11일 싱가포르 식물원에서 찍은 셀카 사진 속 그는 ‘위대한 령도자’이기보다 다소 신난 해외 여행객 같았다.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그의 등과 팔을 만질 때마다 이에 질세라 ‘맞’스킨십을 하던 그의 손에는 눈치 채기 쉬운 어색함이 보였다. 괜히 좀 짠했다면, 나는 ‘종북’인가?
애초에 그런 너무 젊고 불안정한 지도자의 손에 북한 2500만, 아니 한반도 7500만 인구의 운명이 달려 있는 지금 상황 자체가 민족의 비극이고 역사의 아픔인 건 맞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한반도의 한 사람이라는 가정을 해보는 게 그렇게 위험한 생각일까? 미국 언론과 〈조선일보〉는 그랬다간 뒤통수 호되게 맞을 거라 경고하지만, ‘뿔 달린 도깨비’ 취급하던 세월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똑같이 단군의 후손으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슴슴한 평양냉면의 맛이 뭔지 아는 1984년생 동갑내기 김정은 위원장을, 이번에는 한번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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