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무실에서 두 교수의 다른 행보가 화제가 됐다. “둘이 친하지는 않은가 봐.” “지금 분위기로는 ○○○이 되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두 사람 어쩌려고 저러지?”
지방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한 후보의 캠프에서 중책을 맡은 ㄱ교수와, 유력 후보에 맞서 출마한 다른 후보의 핵심 브레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해온 ㄴ교수 이야기였다. 때가 때이니만큼 말도 많고 떠다니는 이야기도 많다. ㄴ교수는 왠지 운동권 출신 같다는 둥 ㄱ교수가 더 줄을 잘 섰다는 둥. 직원들은 종종 마주치면 인사하던 두 사람이 정치인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선거를 맞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많은 전·현직 교수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원하거나 직접 정치를 해보겠다며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명, 수백명의 교수들이 단체로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감까지 선출하는 지방선거여서 교수 출신 후보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육감을 정치인으로 향하는 징검다리로 여기고 있다.
정치권의 부름을 받았든 먼저 정치권에 기웃거렸든, 이들을 모두 ‘폴리페서’라고 몰아세울 생각은 없다. 한국에는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싱크탱크가 부족하다. 정치권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를 찾다 보면 적임자가 교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도 교수이다. 교수 처지에서는 평생 매진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현실정치에 적용하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대학 처지에서도 은근히 교수의 정치권 행보를 반기는 측면이 있다. 지난 대선 때 우리 대학 한 교수가 문재인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러다 청와대 들어가거나 장관이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대학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시나리오다. 학교 이름도 알리고 급할 때 정부 부처, 국회, 정치권과 연결되는 중요한 채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 대학에 해가 되는 일은 없겠지’ ‘중요한 정보나 부처 분위기를 남보다 늦게 파악하진 않겠지’ 하는 식의 기대도 깔려 있다.
연구자로서 교수 개인에게도 실익이 많다. 현실 참여라는 명분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것이 학회에서의 본인 위상 제고나 연구 과제 선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교수를 선호하는 공공·민간 부문의 각종 자문위원·평가위원·전문위원 위촉식에 불려 다니기도 쉽다. 분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연구 과제가 많은 교수나 외부 활동이 활발한 교수 밑에는 지도 학생도 많은 경향이 있다. 어쨌든 연구비가 부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일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지도 학생들이라도 미리 정리해주길
교수의 정치 참여가 낳는 최대 피해자는 역시 학생들이다. 맡고 있는 수업은 다른 강사로 대체하면 되지만, 밀착 지도를 받던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가 갑자기 학교를 떠나거나 휴직이라도 하게 되면 당장 학위논문에 영향을 받는다. 보통은 지도교수를 변경해주지만 세부 분야나 방법론이 맞지 않을 경우 학교를 옮기기도 한다.
부탁하건대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청와대 호출, 장관 하마평,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 자리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교수라면 미리미리 지도 학생들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좀 더 욕심내자면, 훌륭한 성과는 못 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 열심히 정직하게 일한 공직자와 참모로 기록되고 캠퍼스로 돌아와 달라. 정권의 성공을 위해 나선 교수들이 국정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권력 앞에서 어떻게 양심을 버리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고 배웠다.
-
대학 평가라는 남는 장사
대학 평가라는 남는 장사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외국의 대학 평가 기관에 제출한 자료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올해 순위 발표에서 제외됐다. 조작한 이는 다름 아닌 대학 평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교직원이었...
-
대학원 연구실은 교수의 ‘소왕국’
대학원 연구실은 교수의 ‘소왕국’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방학을 맞아 다소 한산해진 대학 캠퍼스를 바쁘게 오가는 이들이 있다. ‘학문 후속 세대’라 불리는 대학원 학생들이다.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을 임시 정거장으로 삼은 석사 과정 1년차...
-
꼬리표 없는 대학 입학금
꼬리표 없는 대학 입학금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최근 주요 대학의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됐다. 내년 초까지 신입생 유치전에 매진해야 하는 각 대학은 예년에 없던 고민 하나를 끌어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학 입학금 폐지,...
-
총장 하려고 교수 되었나?
총장 하려고 교수 되었나?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박근혜 청와대’가 교육부를 통해 국립대 총장 선출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고 한다. 국립대가 추천한 1순위 총장 후보 대신 2순위 후보가 임명되고, 교육부가 특별한 사유 없이 후보 ...
-
오늘도 ‘대나무숲’으로 간다
오늘도 ‘대나무숲’으로 간다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종종 우리 학교 ‘대나무숲’에 들른다. 학생들이 페이스북에 개설한 익명의 소통 공간이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요즘 학생들의 속마음을 엿본다.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줄임말이나 신...
-
‘부모’ 교수와 ‘자녀’ 학생
‘부모’ 교수와 ‘자녀’ 학생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아버지가 구속됐다. 쌍둥이인 딸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다. 셋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교사로, 두 딸은 학생으로. 교무실 금고에 시험지가 보관돼 있는 중간·기...
-
교수님께 여쭤보고 창업해도 될까요?
교수님께 여쭤보고 창업해도 될까요?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교내에서 열리는 창업 관련 행사를 준비할 때였다. 참석자 섭외를 위해 한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교수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