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 간 첫 만남이 이뤄진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책 제공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두 정상은 그 내용을 공동성명으로 문서화하고 직접 서명함으로써 새로운 양국 관계의 시작을 예고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이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후속 협상을 통해 채워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과거 미국이 북한에 제시했던 체제 안전보장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보완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래야 북한이 핵 없이도 체제의 존속이 가능하다고 믿고 진정한 비핵화의 길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AP Photo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왼쪽)이 특사 자격으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면담했다.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해 직접 약속했던 미국 대통령이 비단 트럼프만은 아니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서명 하루 전인 1994년 10월20일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친서의 주요 내용은 일본과 한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한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미국이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부시 대통령도 2007년 김정일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북한의 핵무기와 핵 개발 계획의 포기 대가로 북·미 간 외교관계 정상화를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보즈워스 특사 편에 친서를 북한으로 보냈다. 친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보즈워스 특사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는데, 미국은 북한에 새로운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 역내 동맹국 및 협력국과 함께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의 대가로 클린턴 대통령은 경제적 차원의 보상을,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 차원의 보상을,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포괄적 보상을 약속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안보 보장을 담은 북·미 양국의 합의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3년 6월 양국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첫 번째 원칙은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문에서도 북한에 대한 에너지 제공, 양국의 외교관계 개선 문제와 함께 3조 1항에서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미국의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보장을 제공한다”라고 언급했다.

2000년 10월에는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그는 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코언 국방장관 등과 최고위급 회담을 했다. 회담 후 발표된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는 “쌍방은 상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도를 갖지 않을 것을 선언하며,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나 미래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확인한다”라는 안보 보장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2012년 체결된 ‘2·29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주권과 동등성에 대한 상호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 개선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북·미 양국은 주요 합의 때마다 북한에 안보 보장 및 보상에 대해 꾸준히 언급해왔다.

국제조약을 통한 제도화 필요

이번 북·미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안보 보장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안전보장책을 제공하기로 약속”한다는 포괄적 언급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북한에 대해 세 분야에서 안전보장책들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REUTERS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첫째, 안보적 조치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후 언급한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과 미국이 보유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또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가침 약속과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 핫라인 설치, 군사회담 등도 가능한 조치이다. 둘째, 경제 분야 조치이다. 경제 제재의 해제는 비핵화가 상당 부분 진전을 이루어야 가능하겠지만, 인도적 지원과 제재의 조건부 유예는 초기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외교적 조치이다.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해 상시적 외교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초기에 가능한 조치이며,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외교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를 북한에 제시하기에 앞서 미국 정부가 고려해야 할 게 있다. 어떠한 형식과 내용으로 제시해야 북한의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유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 친서나 양국의 공동성명을 통한 안전보장 약속은 당사국들의 제도적 책임이 발생하지 않아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좀 더 책임 있는 형식인 국제조약을 통한 안전보장 약속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미국 행정부와 연방의회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약속의 제도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월24일 미국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미 간 합의 사항을 조약으로 제도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상원의원들 역시 양국 간 합의가 상원의 인준을 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물론 북·미 간 합의의 제도화를 바라는 행정부와 의회의 속셈이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제도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생겼다는 점에서 비핵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리라 기대할 수 있다.

북한 체제 안전보장 약속의 형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기존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은 미국이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내용이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불가침 약속은 미국이 무력으로 북한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데 그쳤다. 국가 간 상호 불가침 약속에 대한 학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에 더해 갈등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적극적 안전보장까지 더해졌을 때 불가침 약속의 갈등 방지 효과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가침 약속을 통해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적극적 안전보장 조치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극적 안전보장과 적극적 안전보장의 조화는 비단 군사적 조치뿐 아니라 외교적·경제적 조치에도 적용되어야 양국 관계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이며, 북한 비핵화의 새로운 시작점이다. 비핵화의 성공과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변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자명 김영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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