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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6월 15일 금요일 제5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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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고뇌하는 인간과 대면하다
정용선 지음, 빈빈책방 펴냄

“존재의 고독을 부르는 것은 ‘사랑의 결여’가 아닐까.”


철학서들이 삶의 스승이거나 이성을 자극하는 지적인 친구라면 문학작품은 가슴을 울리며 사랑의 대상이 되는 애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사는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한 작가들 (프리모 레비, 알퐁스 도데, 가브리엘 마르케스, 엔도 슈사쿠, 알베르 카뮈)과, 그 작가가 창조해낸 문학작품 속 분신들을 탐구하는 문학 철학 에세이다. 여러 작가들과 그 분신들을 통해서 인간의 고뇌를 읽고 그것을 장자적 시각에서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며 사유의 지평을 넓혀간다. 이들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 작품 속 고뇌하는 인간과 만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장자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풀어낸다.




고사리 가방
김성라 지음, 사계절 펴냄

“원래 경헌다. 발 조꼬띠 건 잘 안 보여.”


4월, 서울에서 벚꽃이 막 피어날 즈음 제주에서는 ‘고사리 한철’이 시작된다. 저자는 이맘때 고향 제주를 찾아 엄마와 고사리를 딴다. 새벽 첫차를 타러 정류장에 가면 고사리 따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누군가 말한다.
“이 동새벡의 고사리가 뭔산디 (이 새벽에 고사리가 뭐길래).” 숲에 들어가기 전 비닐장갑 위에 얇은 면장갑, 두꺼운 장갑을 낀 뒤 팔에 토시까지 낀다. 고사리 앞치마를 두르고 햇빛가리개 모자를 쓴다. 집중해서 찾다 보면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소똥, 뱀, 빈 새집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홀로 만개해 있는 산벚나무를’ 만나게 된다. 작가의 자전적 만화 에세이에 등장하는 제주의 풍경은 사진으로 접하는 그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고사리 한철’까진 아니어도 반나절쯤 쉬고 온 기분이다.




서촌을 걷는다
유영호 지음, 창해 펴냄

“한 마을의 역사는 물을 따라 형성되는 법이다.”


길을 걸으며 도시를 소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그 도시의 빛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고의 ‘서울 걷기’ 안내서라 할 만하다.
일단 길을 잘 잡았다. 마라톤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차를 놓고 멀리 가려면 물가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물길을 줄기로 잡고 서울을 안내한다. 중랑천이나 청계천처럼 드러난 물길이 아니라 복개 공사로 감춰졌지만 예전 한양의 줄기가 되었던 물길, 백운동천 등을 따라 걷는다.
길 중간에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알면 알수록 화가 나는데, 그래도 알아야 할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을 꼼꼼히 짚어준다.




도덕의 궤적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도덕은 과학과 이성에 기반을 둔 체계다.”


마이클 셔머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사이비 과학과 종교에 맞선 싸움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그가 들고 나온 키워드 ‘도덕’은 그래서 좀 안 어울려 보인다. 삐딱하기로 치면 인류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이 회의주의자가 도덕이라니. 책은 ‘도덕과학을 향해’라는 장대한 목표를 내걸고, 과학과 이성이 도덕의 진보를 이끌었다고 선언한다. 이성이라는 덕성과 무관하거나, 심하면 반대말에 가깝다고 믿는 통념을 가차 없이 해체한다. 그가 회의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다. 우리의 도덕에 어떤 신성이나 불가해한 가치가 있다는 뿌연 믿음이다. 우리의 도덕은 신성이 아니라 이성에서 왔고, 앞으로도 이성이 우리를 더 도덕적으로 만들 것이다. 지독한 회의주의자만이 쓸 수 있는 멋진 낙관주의다.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필로소픽 펴냄

“집단 정체성이나 개인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가 먼저다.”


매우 논쟁적인 책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부상 중인 ‘정체성의 정치’를 격렬히 비판하는 내용. 당초 ‘정체성의 정치’는 성 소수자, 흑인, 여성 등 ‘소수 집단’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점점 더 개인만을 강조하고 다수파 형성엔 무관심한, 협소하고 배타적인 정치 혐오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너’와 ‘나’의 차이만을 강조하다 보면 ‘내가 너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자신의 차별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정치와 운동을 자기만족의 수단 으로 남용하는 행태로 귀결된다는 것. 이런 정체성의 정치를 극복하고 다수파 형성을 위해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더 나은 진보’를 복원하자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먹이는 간소하게
노석미 지음, 사이행성 펴냄

“사람이 먹고사는 일이 동물의 그것에 비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책에 소개된 조리법은 대개 2~3단계를 넘지 않는다. ‘1. 바질 잎에 올리브오일을 넣고 믹서로 간다. 2. 병에 담아두고 요리에 넣어 먹는다. 또는 소분해서 냉동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같은 식이다. 그러나 단순함 안에 깃든 수고가 만만치 않다. 가능하다면 음식의 재료를 직접 키우는 게 저자의 원칙이다. 이웃 농부가 보면 혀를 찰 정도로 작은 규모의 밭농사를 해온 지도 어느덧 10년차. “겨우 이걸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한다”라며 호미를 내던질 때도,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 같아!”라고 흡족해하는 날도 있었다.
저자의 본업은 화가다. 책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저자가 주로 해 먹는 음식을 그림과 함께 담았다.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 싶은 간소한 음식이 모여 맛있는 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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