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경제학 한입에 털어 넣기사카이 도요타카 지음, 신희원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코카콜라와 펩시의 ‘조합’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코카콜라든 펩시든 콜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저자 본인과 펩시만 좋아하는 부친의 사례로 ‘무차별 곡선’을 설명하고, 마라톤의 고통에서 한계비용 개념을 도출하며, 카페 주인의 고민을 통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핵심을 가르쳐준다. 복잡한 도표와 수식 때문에 미시경제학에 넌더리를 내본 독자라면, 거의 직관적 수준에서 간단한 그림만으로 기본 개념을 충실히 설명한 이 책을 다시 경제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식전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단지 기본 개념들뿐 아니라 상품 가격 책정, 의료보험 정책, 네트워크 외부성, 지하철과 부동산 개발의 관계 등 현실 사례에 경제학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알려주는 ‘입문의 입문서’다.

고대의 연애시를 읽다류둥잉 지음, 안소현 옮김, 에쎄 펴냄

“복숭아를 던지시면 자두로 답하리다 어찌 물고기가 황허의 잉어뿐이랴.”

몰랐다. 〈시경〉이 중국 여인들의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그 시절의 중국 여인들이 현대의 여인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덕분에 알았다. 그러면서도 중국 유학자들이 받들던 신성한 경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가 말하고자 하는 주지가 무엇인가 하는 논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유가 사상이 자리 잡히기 전 (기원전 10세기~기원전 5세기) 쓰였기 때문에 〈시경〉에 실린 시의 여성 화자는 언행에 제한과 구속이 없었다. 과일을 던져 사랑을 표현하고 “남자들이여 용감하게 앞으로 나와요”라고 노래한다. 이런 솔직한 감정을 실은 시들이 유학자들에 의해 2000년 이상 곡해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시경〉은 ‘연인을 위한 다빈치 코드’로 손색없다.

돈이 필요 없는 나라나가시마 류진 지음, 최성현 옮김, 샨티 펴냄

“돈은 말이지요, 본래 저축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이상한 나라에 들어섰다. 그곳은 ‘돈이 필요 없는 나라’였다. 모든 물건은 공짜이고, 사람들은 화폐나 소유 개념이 뭔지 몰랐다. 결혼, 가족, 학교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사회는 너무도 멀쩡히 잘 굴러가고 있었다.신자유주의가 팽창하던 시절에 이 책을 접했다면 코웃음을 치며 집어던졌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긍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소설이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저자의 태도에 어느 순간 코웃음도 멈춘다. 출구도 퇴로도 보이지 않는 시대에, 어쩌면 이런 상상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천관율의 줌아웃천관율 지음, 미지북스 펴냄

“우리는 이제 민주정의 주권자가 된다는 게 얼마나 두근거리는 경험인지를 알아버렸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책으로 묶은 칼럼은 ‘쪽글’로 소비되던 때와는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낸다. 모아놓은 글에는 시간의 흔적과 시대의 얼굴이 고스란하다. 그래서 칼럼집을 읽는 것은 색다른 독서 경험이 된다. ‘기사 모음집’도 그럴 수 있을까. 〈천관율의 줌아웃〉은 ‘그렇다’라고 답한다.기사의 수명은 길지 않다. 마감을 하고 나면 독자들이 ‘내 기사를 보기 전에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헛된 희망을 품곤 한다.

그러니까 2012~2017년에 쓴 기사 27편을 수정·보완해 묶어낸 이 책은 꽤 용감한 책이다. 읽다 보면 그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다. 책을 들이밀며 서명을 요구하자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 책 생각보다 볼 만해.” 동의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양자오 지음, 조필 옮김, 유유 펴냄

“미국인은 인류가 전에 보지 못했던 평등 사회를 세웠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신생국가 미국을 여행한 후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이 책은 당대의 미국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다. 하지만 19세기 서양 독자를 대상으로 쓴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을 독파하기는 쉽지 않다.타이완 출신 인문학자 양자오가 쓴 이 책은 맞춤한 출발점이다. 토크빌의 시대를 낯설어하는 현대 독자의 눈높이로 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해설서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다이제스트 해설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양자오는 다윈, 프로이트, 마르크스, 공자 등 사상가들의 주저를 읽는 고전 강의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은 전방위 인문학자다.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춘 간결한 분량으로도 고전의 깊이를 살려내는 솜씨가 경지에 올랐다.

공감의 언어정용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소통은 춤과 같다. 한 사람이 한 발짝 내디디면 상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엉켜들 수 있다.”진정한 소통이란 뭘까. 커다란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답답함. 말은 청산유수인데 단어의 편린만 귓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허무함. 아나운서 정용실은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런 상황에 무시로 직면했다.초보 진행자의 대응법은 훈계였다. “목소리 크게 하시고요, 대본 보지 마시고요….” 26년차 베테랑의 대응법은 사뭇 다르다. “다들 처음인데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요. 이판사판 생긴 대로 해보자고요!”그사이 무엇이 변한 것일까. 스튜디오를 처음 찾은 필부부터 이어령, 박해미, 강수진, 이세돌 등 유명인들과의 인터뷰까지 울음바다로 만든 베테랑의 공감 소통법이 담겨 있다. 낯가림이나 소통 울렁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겐 처방전이 담긴 책.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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