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어느 행복한 부부에게 이상한 소포 꾸러미가 배달된다. 상자 안에는 앙증맞은 분홍빛 생물이 들어 있고, 이렇게 쓰인 쪽지가 목에 걸려 있다. “내 이름은 자가주예요.” 꽤 사랑스러웠던 이 생물은, 어느 정도 자라자 끊임없이 변신한다. 울음소리가 끔찍한 새끼 대머리독수리, 코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새끼 코끼리, 진흙처럼 보이면 아무것에나 달려들어 뒹구는 멧돼지, 불을 뿜어 옆집 할머니 스웨터를 태우는 새끼 용, 커튼에 거꾸로 매달리는 박쥐, 이상하고 낯선 털북숭이 괴물….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거나 쩔쩔매며 머리를 쥐어뜯기만 한다. ‘어떻게든 해봐!’ ‘우리 흰머리 늘어나는 것 좀 봐!’ 그런데 어느 날, 괴물이 예의바르고 말끔한 청년으로 변한다. “어머니, 아버지.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퀜틴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이를 부모가 만드는 줄 알았지? 아니야, 어디선가 만들어진 아이가 배달되어 오는 것뿐이지. 아이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했어. ‘내 이름은 자가주’라잖아. 아이가 인간인 줄 알았지? 아니야, 아이는 용이고 멧돼지고 대머리독수리고 코끼리고 박쥐고, 괴물이야. 당신들과 같은 생각이고 같은 느낌인 줄 알면 큰코다칠걸?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한숨 쉬며 늙어가는 것밖에는. 하지만 절망할 것도 없지.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 결국 번듯한 인간이 되니까.
그렇게 심술궂은 펀치를 날린 블레이크 경(그는 2013년 훈작 Knight Bachelor 서훈을 받았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작위다). 마지막 페이지는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한 쌍의 젊은 인간과 한 쌍의 늙은 펠리컨의 뒷모습에다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니까요!”라는 감탄이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이다. 작가의 파안대소가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명료하고도 유쾌하게 인간 일생의 본질과 핵심을 그려내다니, 퀜틴 블레이크는 정말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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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하며 포착한 생명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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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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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날아볼까 아주 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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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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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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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뛰어난 그래픽 노블리스트인 지피(본명 잔 알폰소 파치노티)는 〈전쟁 이야기를 위한 노트〉로 ‘르네 고시니 상’과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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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불러주는 아름다운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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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오백 년 잠자던 잠귀신 노리가 눈을 떴다. 신나게 한판 놀아볼 생각으로 밖에 나갔는데, 어라?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강남 쪽 배추밭은 모두 없어지고 높다란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