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피엔폴루스 3층 상가 전경. SK의 웨딩홀이 지난 8월부터 영업하고 있다.
피엔폴루스. ‘성스러운 천국’이라는 뜻을 가진 서울 강남 청담동의 이 주상복합 건물은 2003년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강남 부자들 사이에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한 인테리어 업체 사장은 “피엔폴루스와 비교하면 타워팰리스는 서민 아파트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ㅈ그룹, ㅅ그룹의 회장과 최진실, 이수만, 에릭, 탁재훈 등 톱스타가 입주자 카드에 이름을 올렸다.

피엔폴루스는 애초에 부자 중의 부자만을 위한 ‘아방궁’으로 기획되었다. 대리석은 디자인에 따라 색감과 질감을 고려해 수입국을 달리했다. 유리의 색감이 나쁘다는 이유로 국산을 급히 미국산으로 바꾸었는데, 국산 유리를 쓰는 것에 비해 35억원이 더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바닥에는 가죽을 깔았다. 신세계건설 현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런 고급 건축물은 없었고 당분간 다시 짓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서울 강남구 청담동 4-1번지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 피엔폴루스.
가전제품도 최고가 제품만 사용했다. 냉장고와 와인 냉장고는 미국의 서브제로(SUB-ZERO), 그릴은 독일의 쿠스한트(KUSS HAND), 세탁기는 스웨덴의 유피오(UPO), 커피 메이커는 독일의 밀레(MIELE), 비데는 일본의 토토(TOTO)를 썼다. 신발장에는 외국산 탈취 시스템이 가동된다.

“신세계가 상가와 템플럼을 강탈했다”

불황이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지만 부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2005년 오피스텔 평당 분양가가 2300만원이 넘었다. 당시 최고 분양가였지만 92세대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총 분양가만도 1350억원에 이르렀다. 사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이었다. 청담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실평수 92평짜리 한 채 가격이 50억원을 호가하는데 지금 같은 불경기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피엔폴루스는 오피스텔보다 상가와 스파가 더 유명하다. 피엔폴루스에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6300평 규모의 대규모 상가가 자리하고 있다. 강남 청담동 금싸라기 땅에 고급 백화점이나 상가를 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한다. 미국의 니먼마커스, 바니스뉴욕, 하비니콜스 등 세계적인 백화점이 눈독을 들였다. GS, 코오롱 등 국내 대기업에서도 관심이 컸다. 

헬스클럽과 스파 시설인 ‘템플럼’은 피엔폴루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라틴어로 ‘성역’이라는 뜻인 템플럼은 애초에 일반인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어졌다. 이탈리아의 천재 건축가 클라우디오 실베스트린이 설계를 맡고, 빛의 마법사라 불리는 마리오 난니가 조명을 맡은 템플럼은 시작부터 건축 전문지의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을 지으면서 손을 잡은 바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파를 만든다는 것은 ‘돈을 많이 썼다’는 말이기도 했다. 헬스클럽과 스파 1200평에 140억원이 넘는 건축비를 쏟아부었다. 입소문을 타고 템플럼은 열자마자 재벌 회장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외국계 회사의 지사장과 탤런트 김희선 등 톱스타의 일부만이 템플럼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스파로 가는 계단(왼쪽)은 공사비로만 60억원이 들었다
2003년 6월 (주)경원과 신세계건설이 손을 잡고 피엔폴루스를 짓기 시작했다. 경원은 고급 빌라를 전문으로 짓는 건설업체다. 경원 박종섭 회장은 “2003년 5월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집에서 오너가 건설에 관심을 가져야 성사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했더니 정 부회장이 ‘관심을 갖겠다’고 해서 사업이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경원과 신세계건설이 55대45의 지분을 갖고 각각 시행과 시공을 책임지기로 했다.

2007년 말 오피스텔의 분양과 입주를 성공적으로 마칠 때까지만 해도 사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명성이 자자해 상가와 헬스클럽 분양도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잘 지어놓은 상가와 템플럼에서 벌어졌다.

신세계와 경원 측에는 몇 번의 상가 분양 기회가 있었다. 홍콩계 펀드에 상가를 일괄 매각할 기회가 있었고, GS리테일에 임대 분양이 추진되었고, 차클리닉과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특히 코오롱 측과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성사를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기회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경원 측은 “신세계에서 상가와 템플럼을 빼앗으려고 일마다 훼방을 놓았다”라고 말했다. 신세계건설의 고위 관계자는 “상가에 대한 지분을 놓지 않으려는 경원의 욕심이 일을 그르쳤다”라고 말했다.

헬스클럽 템플럼의 수영장 전경.
신세계와 경원의 감정싸움은 격해졌다. 경원 측은 신세계건설이 의도적으로 경원 죽이기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2008년 8월부터 SK에서 피엔폴루스 3층을 임대해 예식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임대보증금 30억원에 월 1억3000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SK 측에서 임대계약을 인정해주고, 향후 적당한 시점에 임대보증금에 상응하는 전세권설정 등기를 해준다면 임대보증금을 사용해도 좋다고 동의한 상태였다. 신세계건설과 경원 모두에게 무리가 없는 조건이었다. 양측은 협의를 끝냈고, 실무자들은 공문을 만들어 발송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9월22일 신세계건설에서 갑자기 공문발송을 거부해 경원은 은행 이자 22억원을 갚지 못했다. 부도나 다름없었다. 이로 인해 경원의 모든 자산은 공매 처분 대상이 되었다.

한편으로 신세계건설은 9월22일 곧바로 템플럼에 공문을 보내 스포츠센터 분양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9월26일 템플럼에 다시 공문을 띄워 해지 통보를 철회했다. 신세계건설 고위 임원은 “변호사가 해약 사유가 안 된다고 해서 철회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신세계의 공문이 템플럼에게는 치명타가 됐다. 해지를 철회한다고 해서 사업이 원상 궤도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템플럼은 투자 유치가 막혀 9월30일 부도 처리됐다.

신세계의 ‘다운당한 경원 짓밟기’

또 신세계 측은 템플럼의 온수를 끊어 템플럼 분양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템플럼 회원 서 아무개씨는 “10월 초 목욕하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아 회원들의 성화가 컸다. 템플럼이 위기라는 소식이

ⓒ시사IN 한향란지난 10월30일 1인 시위를 벌이는 (주)경원 직원.
전해지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건설 측은 “관리회사 사장이 경원 박 회장의 동기여서 말을 믿을 수 없다. 템플럼 관리회사에서 온수를 끊겠다는 공문이 왔는데 당신들이 판단하라고 했을 뿐 부당한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템플럼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신세계건설 측에서 템플럼 관리회사 측의 공문을 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0월6일 상가와 템플럼에는 신세계에서 인수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신세계건설은 경원이 발행한 240억원짜리 당좌수표를 9월26일 경원에게 지급하라고 은행에 제시했다. 경원이 자금난에 묶이자 당좌수표를 돌린 것은 경원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템플럼 회원인 한 중견기업 회장은 “사업을 하다 틀어졌다고 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목을 죄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괴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라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을 잘 아는 지인은 “신세계에서 상가와 헬스클럽을 취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손목을 비틀고 있다”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성공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유에 대해 신세계건설의 관계자조차 “신세계가 왜 그렇게 매정한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경원의 박종섭 회장은 “딸애가 정용진 부회장의 애인과 친분이 있어 원만하게 사업을 처리해달라고 사적으로 부탁했다. 그런데 그 부탁을 듣고 정 부회장이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신세계에서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해 사업이 틀어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에서는 “경원 쪽에서 돈을 빼돌려 손실이 너무 커져 고소를 해놓은 상태다.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피엔폴루스 사업은 겨우 한 달 만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물론 중소기업에 국한된 얘기다. 상가와 템플럼은 온전히 신세계 손에 떨어질 공산이 크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재벌과 사업을 해서 이득을 보는 중소기업이 드물다. 이번 사례는 재벌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서 시장을 어지럽히는,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벌의 불공정 거래를 제재할 수 있는 법이 미흡한 데다 이를 감독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엄격하게 다루지 않아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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