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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가능할까

뉴욕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판문점에서 벌인 북·미 실무협상의 연장선이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6월 08일 금요일 제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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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밀레니엄 힐튼 호텔은 5월30일(현지 시각)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가 체크인한 이후 취재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 2000년 조명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북한 최고위직으로서는 18년 만에 방미했다. 그는 도착 당일 저녁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90분간 만찬 회동을 한 데 이어 다음 날에도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 이견 해소를 위해 논의를 이어나갔다. 김영철-폼페이오 회담은, 판문점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벌인 실무협상의 연장선이었다.

ⓒAFP PHOTO
5월30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뉴욕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을 만났다.

평양을 두 차례 방문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폼페이오 장관은 5월23일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체제 보장과 평화조약, 미국의 경제 지원 등을 원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 가운데서도 체제 보장,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안전보장 방안을 절실하게 요구했던 것 같다. 이는 5월26일 2차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미국이 비핵화 이후 북한과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에 근거한 비핵화를 원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영철 부위원장이 뉴욕에 도착한 직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김 부위원장과 정상회담 문제 논의를 고대한다”라면서도 “CVID에 대한 우리의 방침은 확고하다”라고 썼다. 다만 CVID의 방법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비핵화가 즉각 이뤄지면 좋겠지만, 물리적 측면에서 볼 때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다만 “단계적 비핵화라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런 발언들로 인해,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방안에 이미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 방식을 수용하되 북한 역시 미국의 ‘신속한 비핵화’를 받아들이는 방향이다.

이와 관련해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5월 초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내놓은 ‘비핵화 진단 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5월29일 NBC 방송 보도를 통해 최초 공개된 이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 비핵화 방침을 기본적으로 ‘단계적 접근과 이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NBC는 해당 보고서에 접근한 바 있는 전직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비핵화 접근은 단계별로 세분화돼 있고, 비핵화 조치 단계마다 상응하는 지원과 제재 완화를 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먼저 1차적으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을 신고하고, 핵융합 물질을 처분하면서 일부 핵시설까지 폐쇄하길 원한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북한에 보내 검증 절차를 진행하면서 추가적인 핵무기 제거를 북한에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측은 이런 비핵화 조치들을 실현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NBC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는 표면적으로 “CVID가 이뤄지기 전엔 보상도 없다”라는 기조를 유지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단계적·동시 조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는 의미다.

‘CVID의 신속한 실현’은 기술적으로 불가능

ⓒ사진공동취재단
5월24일 5개국 국제기자단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폭파 작업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유연한 태도를 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CVID의 신속한 실현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미국 측의 상응 조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홀로 비핵화를 진행해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5월28일 <북한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역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낸 저명한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정치적·기술적 복잡성을 감안하면 북한 비핵화에는 15년 정도가 걸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비핵화 조치 과정에서 정치적 시비와 지연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해체하고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기술적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소 6개월에서 길어도 2년6개월(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의 ‘신속한 비핵화’를 내세운 미국 측 요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헤커 보고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단계적 접근(phased approach)으로 북한 비핵화를 준비해야 한다. CVID를 요구하되 최소 1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헤커 보고서는 “북한 핵무기를 국외로 반출하라는 제의는 순진하고도 위험한 일이다. 북한 핵무기는 이를 조립한 북한 사람들에 의해 해체돼야 한다”라고도 주장했다.

헤커 박사는 2004년, 2007년, 2008년, 2010년 네 번에 걸쳐 북한 영변 핵시설 단지와 우라늄 농축시설을 직접 방문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소상히 파악해온 미국 최고의 권위자다. 순전히 기술적 차원에서 그가 주도해 작성한 해당 보고서 내용은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역시 ‘신속한 비핵화’만은 양보하기 힘들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종료 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단계적’ 절차만을 쫓아가다 보면 이전 행정부들이 경험한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는 데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의회 중간선거가 있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지낸 조지프 윤 전 대사는 <포린폴리시> 최근호에서 “북한 측이, 트럼프 임기 종료 연도인 2020년까지의 ‘신속한 비핵화 시한표’에 합의한다면 워싱턴과 서울, 도쿄의 회의론자들도 잠잠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신속한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확고한 체제 보장과 경제 보상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미국 국무부에서 30년 이상 북한을 연구한 존 메릴 박사는 “비핵화 속도는 정치적 문제만큼이나 기술적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북한의 협조 여부는 미국이 얼마나 상응한 보상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와 직결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쟁점들이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 해소된다면 양측 간에 최초 비핵화 공동선언까지도 넘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직도 회의적 분위기가 강하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 대사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고 IAEA의 검증과 통제까지 받는 비핵화를 명기한 공동선언에 합의하면 좋겠지만, 그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라고 NBC 방송에서 말했다. 권위 있는 민간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포린어페어스> 최근호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타협안을 끌어내기보다는 비핵화 의제를 확정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속전속결식 협상이 아닌 ‘단계별 협상’을 주장했다. 이 같은 갑론을박 속에 북·미 양쪽 사이 협상이 판문점과 뉴욕에서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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