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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 정상회담이 만약 없었다면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이 빛을 발했다.
문 대통령이 격식을 따지면서 ‘번개팅’에 응하지 않았다면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은 아예 성사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6월 11일 월요일 제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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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올해 들어서만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 한 차례, 미·일 정상회담 두 차례(6월7일 예정 회담 포함) 열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역내 현안을 다룬 한·일·중 정상회담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역내 국가들의 활발한 외교전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한반도 운명을 가를 연쇄 정상 외교의 기본 목표는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이다. 각국은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 과정에 참여해 자국의 목소리를 내고, 향후 만들어질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5월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남북한 정상이다. 한국에서는 현 국면이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 역할이 주효한 성과라 평가하고,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주동적 조치’가 만들어낸 결과라 선전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던 한반도에서 이렇게 평화의 기운을 싹트게 한 것은 남북한 정상이다.

남북 간의 신뢰가 싹튼 가운데 지난 4월27일 우리 측 지역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11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이 보여준 감동과 ‘판문점 선언’이 제시한 남북관계의 비전은 머지않아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를 기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뒤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됨으로써 이러한 기대는 현실로 바뀔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서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취임부터 리비아 해법을 강조하는 등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무장관으로 전격 발탁된 마이크 폼페이오도 매파 본색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요구를 더욱더 강화한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내걸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미국 측의 압박이 거세지자, 북한은 미국이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취하는 협상술로 가볍게 치부하며 관망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미국이 5월12일 시한의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예고하자 북한 내의 관망적 자세가 우려로 변했다. 마침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5월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을 나누는 절제된 형식으로 포문을 열었다. 외무성은 미국 내의 추가 대북 제재 움직임과 한·미 공군의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에서 전략자산의 반입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같은 날 <노동신문>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북한의 내부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5월7일과 8일 중국 다롄을 전격 방문했다. 두 번째 북·중 정상회담은 첫 번째와 달리, 비핵화를 결심한 북한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더라도 미국이 과연 체제 안전을 보장해줄 것인지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간 5월8일 저녁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미국에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중요한 역할 발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중 정상 간의 전화 통화가 끝난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5월9일부터 양일간 평양에 머무르며 고위급 협상을 재개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은 3월31일~4월1일 양일간 CIA 국장 자격으로 방문한 데 이은 2차 고위급회담이었다. 2차 방북은 당초 5월8일 평양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북측의 요청으로 하루 연기한 것이다.

ⓒ연합뉴스
5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명록을 쓰고 있다.

두 번째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린 직후인 5월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이란 핵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고, 미국 내 강경파들의 대북 공세는 계속됐다. 미국의 험악한 분위기에 북한 내부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5월16일 새벽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리선권의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와 맥스선더 실시와 영국 주재 공사였던 태영호의 발언이 ‘판문점 선언’ 위반이라면서 그날 오전 예정되었던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를 무기 연기하겠다고 통보했다. 5월16일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5월24일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개인 명의 담화를 잇달아 발표하며 벼랑끝 전술을 펼쳤다.

북한의 대미 반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5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라며 북한 대미 강경 발언의 배후에 중국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미 양국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배후설을 이어갔다.

5월24일 오전 10시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공개서한을 전격 발표했다. 다급해진 쪽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미 4월2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료를 선언하고, 새롭게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노선을 채택했다. 풍계리 핵실험장도 폭파해 폐기한 상태였다. 원래대로 되돌아가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의 3가지 성과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찾았다. 5월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한 것이다. 이른바 남북 정상 간의 ‘번개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긴밀한 협력과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을 재확인하고 6월1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동과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으로 몇 가지 성과를 얻었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회담 취소를 통해 대미 강경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하며 비핵화 협상을 계속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에서 다시 폼페이오 장관이 협상의 전면에 나서고, 북한에서도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전부장이 다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셋째, 이번 소동을 통해 중국 변수가 해소되었다. 통상 마찰, 남중국해 문제 등 현안이 많은 가운데 미국의 경고를 받은 중국으로서는 적어도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한반도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5월30~31일(현지 시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은 미국 뉴욕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고위급 협상을 진행했다. 이 회담은 판문점 의제 협상과 싱가포르 의전·경호 협상을 아우르는 최종 담판의 의미를 띠었다. 이러한 담판도 문 대통령이 격식을 따지지 않고 ‘번개팅’에 응하지 않았다면 아예 성사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빛을 발한 2차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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