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익 사진기자가 들떴다. 온종일 새 카메라를 매만졌다. 취재 현장에서 실수를 할까 봐 미리 카메라를 손에 익혔다. 오전 7시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집결. 이 기자는 남북 고위급회담 공동사진기자단에 포함됐다. ‘풀단’이라 불리는 사진기자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역사적인 회담 장면뿐 아니라 판문점 등 다른 취재도 좀 해올게요.” 천생 기자였다. 이튿날 출근한 이 기자의 어깨가 축 처졌다. 5월17일 새벽 3시27분에 북한 쪽이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시켰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기 싸움일까? 북·미 정상회담이 깨지는 걸까?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남문희 선임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한 줄 정리. “대세 지장 없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말 대 말’ 싸움이 치열하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 정치에서도 판을 깨는 말과 판을 만드는 말은 결이 다르다. 말로 판을 만든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었다. 1998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그는 ‘한반도 운전석’에 앉았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이제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시면 저는 옆자리로 옮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북 정책을 한국이 주도했다. 그 결실이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국제 무대에서 통한 DJ 화법의 비결은 무엇일까?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 것, 되도록이면 상대 말을 많이 들어줄 것, 의견이 같으면 내 의견과 같다고 말해줄 것, 회담 성공은 상대의 덕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것, 상대를 진심으로 대할 것(김택근, 〈새벽:김대중 평전〉).’ 두 번째로 한반도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은 이 DJ 화법을 잘 지키고 있다. 정상회담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주었다. 정상회담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공을 돌렸다. 북·미 간 신경전에 문 대통령의 중재가 더 절실해졌다.

DJ는 2009년 7월14일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초청 행사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원고를 써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건강 악화로 ‘9·19로 돌아가자’는 제목의 원고를 생전에 연설할 수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접근방법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평생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헌신한 DJ는, 2018년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번 호 커버스토리도 남북·북미 이슈로 올렸다. 제555호 4·27 남북 정상회담 커버스토리에 이어 4주 연속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이 이뤄지는 결정적인 시기다. 매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