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 ‘예루살렘’이다. ‘보수의 텃밭’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상반된 정체성이 공존한다. 선거에서 재미를 본 것은 늘 전자였다. 민주당계 당적을 가진 후보는 한 번도 도지사가 되지 못했다(2010년 지방선거 때 김두관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후 2년 뒤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다르다’는 평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가운데,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출마했다. 2014년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패배한 뒤 재도전이다. 2012년 총선에서 김경수 후보를 이긴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와 맞붙게 됐다.

김경수 후보는 출마 선언을 앞두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포털사이트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과의 관계를 의심받았다(〈시사IN〉 제554호 ‘수사와 선거 사이 그의 승부수 통할까’ 기사 참조). 당초 불출마를 검토하던 그는 출마 선언과 동시에 특검을 수용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경남이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가 된 배경이다.

ⓒ시사IN 이명익5월15일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가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수 선거캠프는 언론 취재에 예민한 모습이었다. 경남 창원 유세 현장에서 만난 캠프 관계자는 “후보에게 즉석에서 질문하지 말고 캠프를 통해 해달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후보의 말 한마디가 왜곡되어 기사화되는 때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5월16일 김 후보 측은 〈조선일보〉 기자들을 고소했다. ‘김경수 요청에… 드루킹, 글 고쳐주고 지지 댓글도 달아’라는 기사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지역 주민들은 어떤 의견일까? 취재 중 마주친 주민 대부분이 드루킹 사건을 언급했다. 그 가운데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예상외로 답변자의 나이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다만 30~40대는 ‘어르신들 생각’이라고 단서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주민들은 묻지 않은 말을 덧붙였다. “원래는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을 지지했다. 근데 지금 경남이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자유한국당계 정당에 투표해왔다는 김해의 한 시장 상인은 “계속 밀어줘봤자 살림살이 나아지는 것도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찍어놓으니까 창피시럽게 탄핵이나 되고”라고 말했다. 그는 “김태호가 인물은 괜찮은데 그 당이 영 별로다. 이 동네에서 요즘은 김경수도 인기 많다. 대통령이 잘하니까”라고 말했다.

저자세 취하지 않는 “강한” 후보

5월1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은 41.4%로, 25.9%의 김태호 후보에 앞선다. 그런데 드루킹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0.8%,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39.2%였다. 드루킹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자가 절반인데도 지지율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앞서고 있다. 이 ‘모순’은 두 가지 이유에서 생긴다. 첫째, ‘의혹 당사자’가 있는 경남에서도 드루킹 사건은 다른 이슈에 밀리고 있다. 응답자 13.5%만이 드루킹 사건을 지방선거 주요 이슈라고 답했다. 북·미 정상회담(26%)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재판(12.5%), 이명박 구속 수사(9.6%)를 합하면 50%에 가깝다. 둘째, 도민들이 필요로 하는 덕목에서 김경수 후보가 우위다. 응답자들은 일자리와 복지 등 서민 정책(39.3%), 통합의 리더십(23.1%), 조선업 등 지역 경제문제 해결(23%), 지역을 대표할 인물(11.7%) 네 항목을 주된 척도로 여긴다. 김경수 후보는 항목 모두에서 김태호 후보에게 12~18%포인트 정도 앞서 있다.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이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김경수 후보를 지지한다. 네 가지 척도에 따라 적임자를 물었을 때도 비슷한 비율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김경수 후보를 꼽았다. 반면 김태호 후보를 지지하는 진보적 응답자는 5%에 불과하다. 경남 보수는 민생 문제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경남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8명이 대상인 5월13일 KSOI 자체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www.nesdc.go.kr 참조).

ⓒ연합뉴스5월14일 창원시 창원마산야구장 공사장을 방문한 김경수 후보(오른쪽).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경남본부도 5월14일 김경수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한국노총이 민주당계 경남도지사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 때마다 노동을 존중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하면서 지지를 호소해놓고는 (중략) 분배를 요구하면 좌파니 종북이니 하면서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참으로 후안무치한 자유한국당”이라고 지지 선언에 적었다. 스스로 반성하는 내용도 있다. “보수 정당과의 30년 넘은 정치적 연대”는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5월17일에는 직능·중소자영업자 단체인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가 지지 선언을 했다. “김경수 후보가 경남 경제를 살릴 가장 확실한 적임자”라고 밝혔다.

드루킹 수사가 굴러가는 와중에도 김경수 후보는 저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남자” “맞을수록 강해지는 후보”라고 운을 떼곤 했다. 5월14일 건립 중인 창원시 창원마산야구장에서 황순현 NC 다이노스 대표는 김 후보에게 새 야구장 예산 문제를 언급했다. 김경수 후보는 역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해달라. NC 마스코트가 공룡이니 고성의 공룡 콘텐츠와 연계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정책설명회에서도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청중 한 사람이 돌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힘들다”라고 말했으나, 김 후보는 “8시간만 일해도 먹고살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몇몇 청중은 부채질을 하며 자리를 떴으나 후보는 계속해서 ‘상생’을 말했다. 공약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5월15일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김경수 후보는 “지지도 자체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지지의 ‘강도’가 대단히 강하다. 어려운 경제를 피부로 느낀 경남도민들이 변화의 열망을 품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도정의 목표를 물었을 때에도 경제 이야기뿐이었다.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추진하면, 경남 제조업을 중흥시켜 대륙으로 가는 물류창고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필요하다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팀워크로 뉴딜에 가까운 기반시설 투자도 감행하겠다고 밝혔다. 가구 배치가 채 끝나지 않은 선거사무소 벽면에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붙어 있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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