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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 미국에서도 옛말

소득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아메리칸드림도 옛말이 되었다. 소득 불평등 정도나 소득 계층 이동 가능성은 태어난 해, 사는 지역, 인종과 민족성 등에 따라 다르게 관찰되었다.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정치학)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5월 31일 목요일 제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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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works
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소득 계층 이동 가능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위는 캘리포니아의 한 공원.

지난 10년간 미국 사회의 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과학자 두 명을 꼽으라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라지 체티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이다. 두 사람 모두 불평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던 소득 불평등이 지난 30년간 실제로 크게 증가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숫자로 보여준 그들의 연구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낙관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기회의 땅’ 미국에 사는 이들에게도 이제 소득 불평등은 낯선 주제가 아니다. 소득 불평등에 관한 뉴스와 신문 기사는 쏟아져 나오고, 정치인들은 소득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날을 세우며 토론을 벌인다.

피케티의 소득 불평등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그의 책 <21세기 자본>이 영어로 출판된 2014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2003년과 2006년에 이미 소득 불평등에 관한 영향력 있는 논문을 출판했다. 2003년 경제학자 이매뉴얼 사에즈와 함께 쓴 <미국에서의 소득 불평등, 1913~1998(Income Inequality in the United States, 1913~1998)>은 미국 국세청의 세금 데이터를 분석했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20세기 초반에 매우 높았으나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매우 낮아졌고, 이런 패턴이 1970년대까지 유지되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급속히 심각해졌다는 것을 이 논문은 보여주었다. 위 <표 1>은 미국에서 소득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2007년에는 그 비중이 50%로 1930년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 집중화를 보여준다. 2006년 사에즈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는 다른 나라와 미국의 사례를 비교했다. 소득 불평등에 관해 미국에서 나타난 역사적 패턴은 일본과 프랑스를 제외하고 영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소득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아메리칸드림도 옛말이 되었다.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은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스탠퍼드 대학 라지 체티 교수와 공저자들은 2016년 소득 불평등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체티 교수와 공저자들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고서 태어난 해에 따라 자녀가 부모보다 더 많은 소득을 벌게 되는 비율을 계산했다(아래 <표 3>). 1940년생부터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한 결과 194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90%가 자신의 부모보다 더 소득이 높았지만, 이 비중은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경우 50%로 급락했다.

과연 이렇게 소득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연구자들은 가장 큰 차이로 1980년대에는 1940년대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았다는 점과 소득 분배가 더 악화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각각의 요인이 계층 상향 이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경제성장의 열매를 균등하게 나누지 않은 것이 경제성장 속도가 더딘 것보다 아메리칸드림을 몰아내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연구자들은 결론 냈다. 현재의 GDP 성장률 아래에서 소득 불평등 정도가 1940년대 수준이었다면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부모보다 소득이 높아지는 사람의 비율은 80%에 육박하리라는 것을 이 연구는 보여준다.  

미국에서 지역별 계층 이동 정도를 살펴보면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의 흐름과는 또 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2014년 체티 교수와 공저자들은 400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이용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미국 어느 지역에 사는지에 따라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상위 20%의 소득군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애틀과 올랜도의 확연한 차이

1980~1982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서른 살이 됐을 때의 소득과 이들 부모의 1996~2000년 소득을 비교해서 부모보다 소득이 높은 자녀의 비율이 (다른 조건들을 통제한 뒤) 지역별로 어떻게 다른지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자녀와 부모의 소득을 20%씩 다섯 단위로 나누고 부모의 소득이 하위 20%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연령대에서 상위 20% 소득에 들 확률을 계산했다.

위(<표 2>)는 그 확률의 지역별 격차를 보여주는데, 한눈에 봐도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시에서는 이 비율이 12.9%에 달했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시의 경우 4.4%에 불과했다. 

연구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특징을 보이는 지역에서 소득 계층 상향 이동 가능성이 큰지 분석했다. 그 결과 새너제이나 시애틀 같은 지역은 인종에 따라 주거 지역이 나뉘는 경향이 덜했고, 소득 불평등 정도도 낮았다. 또 공립학교의 질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으며 종교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처럼 이웃과 어울리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례도 많아 사회적 자본이 높았다. 체티 교수와 공저자는 후속 연구에서 미국 주요 도시에서 태어나는 것이 성인이 되었을 때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모든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시애틀에서 태어나 26세가 되면 같은 나이대 미국인의 평균 소득보다 12%, 즉 3120달러를 더 벌게 되고,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태어나면 평균보다 3120달러를 덜 벌게 된다.

체티 교수팀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논문은 인종에 따라 소득 계층 상향 이동 정도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2000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 사회에서 부모의 소득이 같더라도 인종별로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분명히 달랐다. 아래 <표 4>는 백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미국 인디언, 그리고 흑인의 경우 부모와 자식의 소득 상관관계가 어떤지 보여준다. 아시아인의 경우는 (자녀가 부모보다) 더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할 확률이 백인과 비슷하거나 더 높았지만, 흑인의 경우는 부모의 소득이 다른 인종과 같은 수준이더라도 그 자녀가 더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할 확률이 백인이나 아시아인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낮다. 이러한 패턴은 흑인의 부모가 상위 10% 소득군에 속해 있더라도 예외가 없었다. 딸들은 부모의 소득이 같으면 흑인과 백인 사이에 자녀 소득의 차이가 없었지만, 아들들은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흑인과 백인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이렇듯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지난 30년간 그 정도가 심해졌지만 지역별 그리고 인종별로 특히 큰 격차를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수치는 일관되게 미국의 심화된 소득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적극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정부를 압박하며 그런 의제를 제기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까? 놀랍게도 아직은 그런 움직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래 <표 5>는 일반 사회통계 조사(General Social Survey)를 통해 1970년대 말부터 2011년까지 미국인들에게 정부가 소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얼마만큼 개입해야 하는가를 물었을 때 미국인들이 내놓은 답변의 평균을 보여준다(1=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7=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파란색 다이아몬드로 표시된 것은 전체 응답자의 평균 응답이고 녹색 점으로 표시된 것은 소득이 평균 소득 이하인 사람들의 응답을 보여준다. 197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소득 불평등은 꾸준히 나빠졌지만,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소득이 평균 이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득 불평등 해결할 정책 신뢰도는 낮아

소득 불평등이 이렇게 심각한데, 정부가 나서서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의견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미국인들이 소득 불평등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로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수도 있다. 일리아나 쿠지엠코 교수와 공저자들이 2015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들에게 미국의 소득 불평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최상위 소득 계층의 소득세율 인상 같은 정책에 대한 응답자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소득 불평등을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할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셈이다. 연구자들은 소득 불평등의 현실과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할 정부에 대한 불신, 또 제안된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한 불신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정부에 대한 신뢰나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낮았다. 지난 3월 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86%가 ‘열심히 일하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50%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이 부자이고 어떤 사람이 가난한지, 그 원인에 대한 진단도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아래 <표 6>은 퓨리서치 센터가 2017년 벌인 설문조사 결과다. 공화당 지지자는 개인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것은 그 사람의 노력 때문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주어진 환경이나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부자는 열심히 산 보상이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른 대가’라고 여기면,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 자체가 환영받지 못한다. 환영은커녕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얻지 못할 것이다. 적잖은 미국인, 특히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은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실제로 빈부격차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다. 이런 사람들이 유권자의 대부분인 지역구 출신 공화당 정치인들은 소득 불평등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체티 교수와 연구자들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조건을 모두 통제한 뒤 어느 도시에서, 어떤 인종, 어떤 성별로 태어났느냐와 같이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 소득 계층 이동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조적 요인 또한 경제적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점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 한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한동안 정치적인 해법을 시도해보지도 못한 채 계속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자칫하면 정부와 정책에 대한 낮은 신뢰가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그 때문에 더욱더 소득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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