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 일본공산당은 판문점 선언을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커다란 진전’이라며 대표자 명의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총선거 이후 야당·시민 연대를 주도하며 아베 신조 총리를 압박하고 있는 일본공산당이 신속하게 반응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다. 국회의원 26명과 당원 33만명을 거느린 일본공산당은 1983년 아웅산 테러 이후 북한 조선노동당과 관계를 단절했다. 대북 관계에서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원론적 태도를 취해왔다.

일본공산당의 판문점 선언 지지는 ‘국내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 판문점 선언은 강경 대북 정책을 펴며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 파괴를 획책해온 아베 정권의 정책 기조를 밑에서부터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연합뉴스일본공산당과 시민사회는 판문점 선언을 지지했다.반면 대다수 언론은 ‘완전한 비핵화 합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견해는 시민사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 최대의 평화운동 단체인 일본평화위원회의 지사카 준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이번 회담이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핵 갈등에서 비핵 평화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일본 내 진보 매체도 판문점 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문 아카하타〉는 4월28일자 1면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를, 한국전쟁의 종결 연내에’라는 제목을 올렸다. 이튿날인 4월29일자에는 문 대통령에 대한 인물 기사를 올렸다. 이 신문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의 아들로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문 대통령의 인생사를 소개했다. 그가 촛불시위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부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라는 의지를 천명해왔다고 전했다.

반면 일본 언론 대부분은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 합의’ 문구가 포함되었지만, 비핵화의 일정과 방법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신문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산케이 신문〉이다. 이 신문은 4월28일자에서 “삼촌인 장성택을 숙청하고 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살해한 인물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정하게 대했다”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현재 일본 정가와 언론에는 ‘재팬 패싱’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4월17~18일 이틀 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 자리마저 ‘트럼프-김정은 직접 대화’ 속보에 묻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한 첫날, 로이터 통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대화했다”라는 속보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오보였지만 나중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방북이 확인되었다.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재팬 패싱 논란을 불식시키려던 아베 총리의 꼼수는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대미 외교 카드까지 소진해버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북한 핵도, 북한 미사일도, 개헌 드라이브도 더는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이 카드가 일본 국내에 통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굳이 성향을 따지자면 보수에 가까운 전문가들조차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외무부 국제정보국장을 역임한 마고사키 우케루 전 방위대학 교수는 ‘아베 총리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기자의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북한과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라고 평가했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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