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악수를 나눈 4월27일 오전 9시29분은 캐나다 동부 시간으로 4월26일 저녁 8시29분이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가 역사적인 장면을 생중계해줄까 싶어 텔레비전을 켰더니 NHL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었다. 하키의 나라다웠다. 텔레비전 방송을 보아서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세계사적인 사건에 캐나다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게 아니었다. 비록 공영방송이 실시간 중계는 하지 않았으나 CBC 인터넷에는 두 정상이 만나자마자 금세 뉴스가 올라왔다. 이튿날 아침 캐나다 양대 일간지 〈토론토 스타〉와 〈더 글로브 앤드 메일〉 역시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사진을 1면 머리기사와 제호의 상단에 올렸다. 물론 북한 지도자가 1953년 종전 이후 남한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내용을 비롯해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 성과, 의미 등을 소개하는 기사가 뒤따랐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캐나다 언론 보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이곳 매체들은 ‘노스코리아’를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나라로 지목했고 김정은 위원장을 ‘전쟁 미치광이’ 정도로 묘사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캐나다 매체는 미국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있는 캐나다인들은 ‘북한’과 ‘김정은’이라는 말만 들어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던 그들이 “뉴스 봤니? 남북한 정상들이 만나 평화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는 내 질문을 받고는 반색했다. “축하한다”는 말은 기본이고 “드디어 평화가 왔다”라며 내게 악수까지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하느님이 축복을 내렸다”라고 했다. 다소 전문적인 견해를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러시아에서 역사 과목 교사를 했다는 어느 중년 여성은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으니 한반도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내 질문을 받은 10명 중 2명만 남북 정상회담 뉴스를 모르고 있었다.
마침 한국인으로서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이인원씨와 연락이 닿았다. 캐나다 공무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해달라고 했다. “전쟁광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의 멀쩡한 모습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이인원씨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강남스타일’ 노래가 유행했을 때만큼이나 한반도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라고 말했다.
캐나다 국민들이 보기에,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화약고와 다름없었다. 더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그런 뉴스를 보는 나 같은 한국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났다. 이곳 신문의 제목처럼 남북한 두 정상이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었고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던 한반도가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쟁 먹구름이 걷혔다고 믿으니 악수를 청하며 축하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두고 ‘실질적 내용이 없다’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지만,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벗어난 것 이상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캐나다에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핵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핵화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
-
나선시에 가면 ‘경제권’ 띄우세요
나선시에 가면 ‘경제권’ 띄우세요
이종태 기자
‘남북 경협’은 단지 남한과 북한만의 경제 협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 극동 지역, 몽골, 일본 등이 밀접하게 얽히는 ‘동북아시아 경제권’으로 가는 관문으로 ...
-
홍준표식 북·미 정상회담 독해법
홍준표식 북·미 정상회담 독해법
김연희·이상원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요즘 혼자 화가 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당일인 4월27일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신랄한 글을 올렸다.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
한반도 운명 가른 도보다리 위 40분
한반도 운명 가른 도보다리 위 40분
남문희 기자
남북 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은 한반도 운명을 가른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서 약 40분간 ‘독대’한 데 이어 평화의 집 접...
-
쉴 새 없이 울린 한국 학자의 휴대전화
쉴 새 없이 울린 한국 학자의 휴대전화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필자는 학회 행사 때문에 예테보리를 방문한 가브리엘 욘손 교수를 만났는데, 이날은 운 좋게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날이었다. 그는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로 스웨덴에서 대표적...
-
‘톱뉴스’에서 메르켈 밀어낸 남북 정상회담
‘톱뉴스’에서 메르켈 밀어낸 남북 정상회담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4월27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런데 독일 공영방송 ZDF는 이날 간판 뉴스 프로그램 〈오늘의 저널(Heut...
-
한반도의 평화, 그 속도에 놀란 프랑스
한반도의 평화, 그 속도에 놀란 프랑스
파리∙이유경 통신원
프랑스 주요 언론도 4월28일(현지 시각) 1면에 남북 정상회담을 담았다. ‘두 한국의 역사적인 악수(〈르몽드〉)’ ‘새로운 시대의 시작, 함께하는 두 한국(〈리베라시옹〉)’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