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돌려보지 않은 마음의 열쇠’ 같은 것이 몇 개 있다. 항상 마음을 짓누르고 있지만 한 번도 열쇠를 돌려서 열어본 적이 없는.
첫 번째 열쇠는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이다. 두 번째 열쇠는 1980년 ‘광주’다. ‘광주’를 겪으면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의뭉스럽고 조금 우스꽝스러운 경상도 사투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왜 전두환과 비슷한 어투로 말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은 내게 대책 없는 좌절감을 던져주었다. 세 번째는 세월호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 무기력증이다. 거의 반년 넘게 글쓰기는 물론, 다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
내 마음속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죄책감 속으로 빠져들게 할까? 서영채 문학평론가의 원고를 읽으면서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친구들, 내 형제, 부모, 모두가 겪고 있는 한국인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영채는 이광수에서부터 최인훈·임철우·한강에 이르기까지 한국 소설 100년(이 책이 나온 2017년은 한국 소설 100년이 되는 해다)을 톺아보며 한국 소설이 드러내고 있는 한국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말한다. 서영채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근대를 맞이하면서 네 개의 관문을 지나왔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 분단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정치적 압제기,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이다. 거기에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월호와 그 이후 촛불집회가 있다. 그는 이런 현실들이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특히 어떻게 비틀리고 일그러지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본다.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이를 따라감으로써 ‘한국인’이라는 주체의 형성사를 추적하는 책이다. 나는 ‘근대 100년을 관통하는 장대한 마음의 연대기’라 할 만한 이 책을 만들면서 내 마음의 열쇠를 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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