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5월9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 앞 출근길 인사에서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흰 점퍼 차림이었다. 붉은 점퍼를 맞춰 입은 구청장·구의원 후보들과 대비됐다. 크게 박은 이름 석 자와 달리 당명은 주머니 위에 작게 적었다. 붉은색은 새누리당 시절부터 써온 자유한국당 색깔이다. 캠프 관계자는 “후보의 장점이 붉은 옷에 묻히는 감이 있어 바꿨다. 원 오브 뎀(여럿 중 하나) 이미지를 벗으려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야당 후보들의 최대 험지가 된 서울에서 흰 점퍼는 원정 경기 유니폼처럼 보였다.

유세 현장에서 김문수 후보를 만난 시민들은 극과 극의 반응이었다.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거나 후보의 등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 운전자는 경적 울리는 차량들을 뒤로한 채 차를 멈춰 창밖으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 후보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이가 더 많았다. 명함을 거절하고 인사는 무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됐어요” “주지 마세요”라고 명확히 의사를 밝혔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관심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널리 알려진 제1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시민들은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았다. 5월9일 유세 일정 내내 ‘유명인’을 신기해하거나 그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시민은 전무했다. 기자가 현장 분위기를 묻자 김 후보는 “최악이다. (20대 총선에서 패한) 대구보다 영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도 더 힘들다”라고 답했다.

지난 한 달간 김문수 후보의 선거 전략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출마 직후 김 후보는 초점을 ‘반(反)문재인’에 맞췄다. 4월11일 그가 읽은 출마선언문도 “문재인 정권은 지금 혁명을 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권의 좌향좌를 심판해” “대한민국을 좌파 광풍에서 구하자”고 말했다. 그 뒤 몇 주간 공식 일정을 ‘드루킹’ 관련 1인 시위, 보수 단체 행사 참석 등으로 잡았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규탄했고, “청와대는 주사파 인사들에게 장악됐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1위인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넘보기는커녕 15% 득표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15%는 선거 비용을 전액 돌려받기 위한 최소 득표율이다.

코너에 몰린 김문수 후보 측은 전선을 ‘지상전’ 위주로 재편하려 한다. 5월 들어서는 이념 대결보다 공약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5월9일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김 후보는 미세먼지 저감 공약을 발표했다. 미세먼지 측정기와 도로 물청소차를 늘리고 중국과 대책을 협의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에 앞서, ‘지하철 증편’ ‘재건축 규제 완화’ ‘셋째 자녀부터 대학 학비 전액 지원’ 등 공약을 수일 간격으로 5차례에 나눠서 내놓았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공약이 주목받게 하려고 나눠서 발표했다. 제발 정치적 질문보다 공약 위주 질문을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공약을 강조한다고 대북 강경 기조를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5월3일 ‘남북 정상회담 진단과 평가, 남은 과제는?’이라는 제목의 당내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신영복은 명백히 간첩인데 그의 사상을 대통령이 존경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기자에게도 김 후보는 “청와대의 가장 큰 문제가 지나친 친북 성향”이라고 주장했다.

‘색깔론’ 피하는 자유한국당 후보

흥미로운 장면은 당내 지역조직 행사에서 보인다. 자유한국당 ‘필승 결의대회’에 참석한 김문수 후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5월9일 서대문구 필승 결의대회에서는 ‘대학가 상업지역 활성화’와 ‘3호선 급행열차 신설’을 설명하는 데에 발언 시간 대부분을 썼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으나 그 범위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좁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을 옮기려 했지만 자유한국당이 막았다”라는 주장이었다. 강경 대북관을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동작구 필승 결의대회 발언은 이랬다. “서울은 항구다. 한강 주변에는 항구가 110개 이상 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더 좋고, 안 좋아지더라도 뱃길은 열겠다. 배가 쫙 들어오도록 600년 넘은 뱃길을 다시 잇겠다.”

그런데 유독 당내 행사에서도 이념 요소를 제거할 이유가 있을까? 행사 성격을 감안하면 더 의아한 일이다. 필승 결의대회는 당원만 입장할 수 있으며 청중 다수를 구의원·시의원 후보가 미리 모아온다. 주로 노년층인 청중 중에는 막대풍선이나 피켓을 든 사람도 많았다. 일종의 ‘박수 부대’를 앞에 두고, 김 후보는 결집이 아니라 설득을 시도하고 있었다. 김문수 후보는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정치성이 덜하다. 관심도 없을 북·미 정상회담을 비판하는 것보다 각 지역 아파트 재개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합리적’ 답변이야말로 자유한국당이 처한 위기를 드러낸다. 박근혜라는 아이콘을 잃은 자유한국당은 현재 ‘노년층 당원’의 지지마저 상수로 여기지 못한다. 최소한 지방선거라는 판에서는, 이들이 정치적 신념보다 경제적 이득을 좇아 투표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가령 60대 자유한국당 당원이라도 동작구 자가 거주자라면 ‘북핵 완전 폐기’보다 ‘한강 해운 개발’을 우선시할 수도 있다.

야권 단일화에 대한 모호한 태도도 ‘눈치 보기’로 설명이 된다. 김문수 후보는 여러 차례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와는 뿌리가 다르기에 어렵다”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기자에게 그는 “그 당 후보가 유승민이었으면 전화라도 몇 번 했겠지. ‘이제 그만하라’든지 ‘내가 그만하겠다’든지”라고 귀띔하면서, “강남 3구 쪽 지지자들은 (안 후보와도) 단일화하라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사모’ 홈페이지에는 다른 의견이 많다. ‘탄핵의 원흉’과 단일화는 불가능하며, 안철수 후보의 사퇴만 바란다는 이들이다.

 

 

기자들은 관훈토론회로 가고…

 

이상원 기자와 김연희 기자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 유세를 밀착 취재했다. 대통령 지지율 83% 시대, 야당 후보가 살아남는 법이 궁금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는지 두 기자의 수다로 풀어봤다.


이상원:김문수 후보 캠프에서 동행 취재를 허락해줬다. 5월9일 하루 동안 계속 따라다니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인터뷰를 했다. 1시간가량 대화한 것 같다. 김 후보는 연신 ‘언론이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김연희:나도 안철수 후보 동행 취재를 신청했는데 안 됐다. 다른 언론사에서 먼저 신청한 게 밀려 있어서 이번에는 어렵다고 하더라. 유세 일정 보고 알아서 찾아다녔다. 안 후보랑 전화라도 한 통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시간 빼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상원:인터뷰 도중에 안철수 후보 얘기가 나왔다. 김문수 후보가 하는 말이 안 후보는 기자들하고도 전화가 잘 안 될 거라고 했다.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뉘앙스였다.

김연희:사교적인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선대위원장을 맡은 손학규 전 의원이 안 후보랑 같이 유세를 다녔다. 악수하고, 와서 사진 찍으라 하고. 대중을 향한 제스처에 손 전 의원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상원:김 후보는 정치인답게 친화력이 좋았다. 그런데도 주변에 시민이 거의 몰리지 않았다(웃음). 취재진은 나와 우리 사진기자뿐이었다.

김연희:안철수 후보 유세에도 취재진이 많지는 않았다. 5월8일에 캠프 사무실에서 서울 시정 7년 평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취재기자가 7명 왔다.

이상원:나는 그 시간에 프레스센터(서울 중구)에서 하는 김경수(더불어민주당), 김태호(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 관훈토론회에 갔는데 거기에는 기자들이 많이 왔다.

김연희:서울에서도 서울시장 선거보다 경남지사 선거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 같다.

이상원:박원순 시장이 워낙 막강하니까 선거 초반부터 김문수·안철수 단일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 후보는 “정치 성향상 안 후보랑 박 시장이 단일화해야 맞다”라는 취지로 얘기하면서도 유권자들 눈치를 좀 보더라.

김연희:안 후보는 “내가 열심히 해서 야권 대표 후보가 되겠다. 정치공학적인 단일화는 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이다.

 

 

 

ⓒ서울경제 제공5월9일 자유한국당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공정선거를 다짐하며 악수하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