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미투(Me Too)’로부터는 석 달, 미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_내_성폭력 운동’으로부터는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미투 앞에서 크게 둘로 나뉜다. 미투를 지겨워하는 쪽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쪽.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은 이렇게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미투를 실패라는 단어로 곧장 호명할 쪽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이후를 끊임없이 궁금해할 쪽.

나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미투는 실패했을까. 미투라는 이름으로 떠오른 개별 사건에 주목해서 보면, 미투의 등장과 동시에 그 한계부터 읊어대며 실패를 점치던 ‘예언자’들의 말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는 듯도 하다. 실제 각 사건의 경과가 좋지 않다.

ⓒ정켈 그림

기자를 불러 모아 떠들썩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사임을 선언했던 동덕여대의 하일지 교수는 미투를 시작한 학생을 고소했다. 여성 교수들의 지지 선언과 학교 외부인들의 서명에 힘입어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듯 보였던 연세대 교수는 고작 1개월 감봉 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수많은 고발자의 증언으로 가해자라 지목된 이들 중 몇몇은 벌써 재기를 준비한다. 배우 조재현이 대표적으로 얼마 전 공연 재개를 알렸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불과 몇 개월 전 공분을 일으키고 각성을 도모했던 다른 여러 고발 글 역시 온라인상에서 자취를 찾기 어렵다. 

그러니 미투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이 운동을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미투 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예언이 적중한 것은 신통력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미투가 등장하자마자 미투를 다른 국면으로 넘기거나 덮어버리려 애썼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대신 항변했다. 그들은 미투가 실패하리라는 미래를 그저 예견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

미투의 실패는 미투가 실패했다고 외쳐대는 이들이 원인이다. 그래서 오늘도 절망하는 쪽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황을 바꿔보려고 애쓴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만이 오늘의 상황을 뼈아파한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희망을 불어넣는 글을 쓰고 싶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지쳐가고 있으므로 나만이라도, 우리는 잘해냈고, 잘하고 있고, 그러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게임 업계는 오늘도 여성 직원의 사상 검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성은 가게의 고객이어도 점원이어도 남성에게 조롱을 당하거나 위협을 느낀다. 여자 가수는 베스트셀러를 읽어도 협박을 받는다. 소신 있는 정치관으로 사랑받던 남성 코미디언은 여성 관객들 앞에서 페미니즘을 비웃고도 무사히 하루를 넘긴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이들의 용기는 꾸준히 이어지지만 불명확성이라는 성폭력의 특성은 미온적인 태도를 간단히 용인해준다. ‘법정에서 확실히 유죄로 판결되지 않았기에 판단을 내릴 수 없다’라는 대답은 우리가 무엇과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를 잊게 만든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누구도 북돋기 어려운 밤이 지나간다. 어쨌거나 나는 울분과 절망을 안고 이 사태를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기자명 이민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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