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의 눈이 일제히 스크린에 쏠렸다. 분주히 타자를 치던 손도 잠시 멈췄다. 판문각 계단을 걸어 내려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맞잡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몇몇 외신 기자들은 스크린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역사적 순간을 목격한 감동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문재인 대통령)”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이 대화를 주고받더니 갑자기 북측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세 걸음을 옮겨 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문 대통령의 예정에 없던 ‘방북’이었다. 돌발 상황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메인 프레스센터를 채웠다.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출신으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쓴 영국인 작가 대니얼 튜더 씨도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튜더 씨는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운 순간이다. 6개월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의장대 사열을 하는 김 위원장을 두고 그는 “스왜그(swag)가 있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평화의집으로 이동한 두 정상이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취재 동선 조율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 취재진이 생중계를 하던 카메라 앞을 가렸다. 보통 때 같으면 기자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튀어나왔을 상황이다. 이때만은 폭소가 터졌다.
정상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외신 기자만 37개국 198개 언론사에서 929명이 취재를 신청했다. 2000년과 2007년 지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때 해외 언론의 취재 열기보다 뜨거웠다. 국내 취재진까지 합치면 모두 3071명이 등록했다. 2018 남북 정상회담 메인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일산 킨텍스에는 1000여 석 규모의 거대한 브리핑룸이 꾸려졌다. 판문점 현장에는 공동취재단(풀단)만 취재가 허용되었다. 사실상 모든 취재는 이곳 메인 프레스센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26일 오전 6시 메인 프레스센터가 오픈했다. 들어가려면 검색대를 통과하며 몸수색과 가방 검사를 받아야 했다. 국내외 취재진이 기자석을 가득 채웠다. 브리핑룸 뒤쪽에는 국내 방송사와 CNN, NHK, CCTV 등 해외 방송사 중계석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해외 언론 가운데 일본 언론이 다수 눈에 띄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였다. 아라키 도시미쓰 지지통신 기자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 주재했다. 그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도 취재했다. 아라키 기자는 당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차려진 프레스센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보다 이번 프레스센터 규모가 훨씬 크다. 이번에는 북핵 위기와 남북 간 긴장이 매우 높아진 상황에서 열린 정상회담이라 해외 취재진이 훨씬 더 많이 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 메인 프레스센터 첫 공식 브리핑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진행했다. 그는 다음 날 여는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브리핑했다. 앞서 4월2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감옥에서 대통령 비서실까지:과거의 급진주의자가 한반도 긴장 완화를 돕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임 실장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4월26일 오후에는 하늘색 상의를 맞춰 입은 초등학생 34명이 메인 프레스센터에 들어섰다. 통일부 어린이기자단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윤서 학생은 “우리나라가 통일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어 감격스럽다. 내일 남북 정상회담이 잘되어서 친구들과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어린이기자단은 메인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통일향수 전〉 부스도 취재했다. ‘통일향수’는 이북 5도 출신 실향민이 기억하는 고향을 주제로 특별히 제작한 향수다. 각 향수의 이름은 ‘평안북도 옥수수 향의 추억’ ‘황해도 해주 바다 내음’ ‘평안남도 대동강 솔 향’ ‘함경도 한여름 산딸기 향’ ‘함경남도 명사십리 해당화 향’이다. 통일향수 프로젝트에 참여한 실향민 5명의 평균 나이는 94세였다.
취재진 기념사진 촬영 위해 단상 앞에 긴 줄
이날 오후 메인 프레스센터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관련 주제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설명회가 3차례 열렸다. 영어와 한국어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국내 언론보다 외신 기자들이 주로 질문했다. 관심은 비핵화 이슈로 모아졌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소속 귀도 산테베치 기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풍계리 실험장은 이미 수명을 다해서 쓸모가 없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 때문에 김 위원장이 폐기를 선언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핵 실험장에 붕괴가 발생하고 오염이 심하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확인할 수는 없다. 풍계리 핵 실험장은 북한의 유일한 핵 실험장이다.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라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 아침부터 메인 프레스센터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아침 8시6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출발해 판문점으로 향했다. 메인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문 대통령의 이동 모습이 생중계됐다. 프랑스 〈르몽드〉의 필리프 메스메르 기자는 이날 현장 등록을 했다. 메스메르 기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라도 이번 회담의 성과가 아주 중요하다. 비핵화에 대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4월27일 낮 12시15분, 오전 정상회담이 끝난 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판문점 평화의집 2층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했다. 윤 수석이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 참여하시면서 새벽잠을 많이 설치셨다는데 새벽에 일어나시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 대통령께서 새벽잠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전하자, 프레스센터에 있던 취재진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5시58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는 순간, 다시 한번 메인 프레스센터의 모든 시선이 스크린에 쏠렸다. 진행 요원들도 대형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BBC 기자는 메인 프레스센터 중앙을 가로지르며 이 순간을 리포팅했다.
저녁 8시46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오늘 밤과 내일 일정에 대해 알리겠다”라며 마이크 앞에 섰다. 김 대변인은 “아무것도 없다. 판문점 선언이 굵고 짧게 끝났듯이 취재도 굵고 짧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마친 뒤 문 대통령이 메인 프레스센터에 들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던 참이었다. 저녁 9시12분 환송 공연 〈하나의 봄〉이 생중계되었다. 피아니스트 정재일씨의 연주에 맞춰 평화의집 벽 전면을 스크린 삼아 노란 나비가 등장했다. 공연이 끝나고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자 메인 프레스센터에는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사를 마감한 취재진들은 파란색 바탕의 중앙 단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단상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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