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방콕
김병운 지음, 제철소 펴냄

“왜냐하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세계에서만 허락된 일이니까.”

여행 얘기인 줄 알았는데 연애 얘기다. 냉큼 애인에게 책을 건넸다. 몇 년 전부터 방콕(혹은 동남아)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지만 애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그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명 방콕에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또 방콕이 아니어도 무슨 상관이람. “사실 방콕보다는 방콕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라는 저자 소개 문구처럼, 함께라면 뭐 어디든 즐겁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때론 가이드북에 의지하겠지만, 여행지의 시간은 낯선 골목에 ‘우리만의 지도’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당연하게 함께 걷는 길이 “결코 당연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수쿰윗 소이 49’ 마사지사의 말은 옳다. “라이프 노노 트래블 오케이.”


병서, 조선을 말하다
최형국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병서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뭇 백성의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조선 왕조 500년의 굵직한 사건들과 정치·사회 변화의 맥을 짚어보고, 시대에 발맞추어 등장한 병서들을 소개한다. 조선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정도전이 〈진법〉이라는 병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군대의 역사를 통합 정리한 〈역대병요〉를 펴냈다. 문종 시대에 펴낸 〈동국병감〉에는 우리 민족이 전쟁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내용이 담겨 있어, 한일병탄 이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간행되기도 했다. 세조가 펴낸 〈오위진법〉은 임진왜란까지 조선군의 핵심 전술서로 활용되었다. 조선 시대의 주요 병서들을 소개하며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환란을 이겨내고 혁신을 이루어냈는지 살펴본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모든 것
백상진·김예찬 지음, 루아크 펴냄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아고라의 정치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목만 보면 아주 딱딱한 정치학 서적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파란만장한 한국 정치사를 쭉 돌아본 뒤 ‘헬조선’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헌법과 선거제도가 정착되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중임제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야당이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 혹은 내각책임제)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기 쉽게 풀어 썼다.
공저자인 백상진씨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 정책비서로 근무하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양시 시의원 예비후보로 도전장을 던졌다. 김예찬씨는 〈날치기 국회사〉를 통해 한국 정치의 민낯을 고발한 바 있다.


감세 국가의 함정
김미경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국가의 조세 징수 권리를 가능한 한 제약하면서 복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3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금을 적게 걷고, 공적 지출도 적은 국가. 이런 국가를 저자는 ‘감세 국가’라고 명명한다. 한국은 대표적 감세 국가다. ‘국가’가 조세 수취를 최소화하고, 조세의 재분배 기능에도 소극적이다. 불안정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국가의 생존 자체가 최고 목적이었고, 이런 나라에서 조세는 국가 재정의 최후 재원일 뿐, 주요 원천일 수 없다. 복지 지출보다 조세 지출(감세와 소득 보전)을 우선하는 한국에서, 국가는 복지를 “시장 소득 보전을 위해 세금 좀 덜어드릴게”로 달성하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간접세 의존도 심화, 양극화 확대로 이어진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이런 ‘감세 국가’ 조세 구조가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각종 데이터로 분석한다. 조세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궤적을 살펴본다.


경제지표 정독법
김영익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지표는 전혀 어렵지 않다.”

현실적 근거를 추적하고 공부하는 데 최소한의 성의를 들여야 어느 정도라도 감을 짚을 수 있는 부문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이 책은 통화, 금리, 자금순환, 국민총생산, 물가 등 12개 경제지표를 통해 경제 흐름을 읽어내는 방법을 매우 쉽고 간략하게 보여준다.
각종 경제지표를 구하는 구체적 요령부터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는 데 필요한 개념적 지식, 지표의 개요와 핵심을 파악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담았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라면, 복잡하고 따분한 숫자의 나열에 불과했던 경제지표들이 사실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세상의 역동적 모습을 간편하게 알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뀌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옥명호 지음, 옐로브릭 펴냄

“특히 좋았던 건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사이에 잠이 드는 거였어요.”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자기 전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밤 아빠의 로맨틱한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는 많다. 중학교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글을 쓰고 책 편집 일을 하는 저자가 그 희귀한 사례의 주인공이다. 책 읽어주기는 ‘가성비가 탁월한’ 사랑 표현이었다. 저자는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긴밀한 유대를 쌓을 수 있었다. 퇴근 후에 내는 15분의 시간이 10년 쌓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잠자리 낭독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과정에 어떤 즐거움이 있었는지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다. 육아의 부담을 얹으려는 책은 아니다. 읽은 책 목록도 참고할 만하지만, 눈길이 가는 건 책읽기 자체보다 천천히 쌓아올린 그들의 ‘관계’에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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