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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투’ 망언 풍년이로구나

일본에도 ‘미투 열풍’이 번지고 있다. 일본의 미투 운동은 후쿠다 준이치 전 재무부 사무차관에게 성추행당한 여성 기자의 폭로로 불붙기 시작했다. 정부와 관료라는 최고 권력을 정조준한다.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5월 09일 수요일 제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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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이 일본 열도에 번지고 있다. 일본 미투 운동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와 같으면서도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피해 여성들이 폭로하며 불붙은 점은 같지만, 문화 예술계 중심으로 퍼졌던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정부와 관료라는 최고 권력을 정조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국무의원(장관)은 총리가 지명하는 국회의원이 맡는다. 대개 의원인 장관들의 부처 장악 능력이 떨어지고, ‘얼굴마담’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각 부처를 움직이는 실세는 따로 있다. 바로 정치권과 연계된 관료들이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등 관료제의 긍정적인 효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관료는 교체되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후쿠다 준이치 전 재무부 사무차관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인물이다. 재무부는 일본식 관치행정의 정점에 있다. 잘나가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주로 근무한다. 전신은 대장성. 대장성은 1869년 메이지 유신 시절부터 재정과 금융정책을 쥐락펴락하다 1998년 ‘요정 접대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01년 해체되었다. 대장성을 잇는 재무부의 사무차관은 행정고시를 합격해 공무원이 된 관료가 정부 부처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그동안 일본은행 총재 네 명과 총리 한 명을 배출했다. 후쿠다는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재무부 관료가 되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재무부 상사의 중매로 결혼했는데, 장인도 록히드 사건에 연루될 정도의 고위 관료였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세이와(清和) 정책연구회와 더불어 제2기 아베 정권의 근간을 이루는 파벌인 시코카이(志公會)의 보스, 아소 다로 재무장관(부총리 겸임)의 눈에 들어 지난해 7월 재무부 사무차관에 발탁되었다.

ⓒ교도=연합뉴스
4월20일 일본 야당 의원들이 재무부를 방문해 ‘후쿠다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항의했다.
후쿠다는 사퇴 기자회견에서조차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공개한 음성 파일이 있는데도 “내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저렇게 심한 대화를 한 기억은 없다”라고 발뺌했다. 재무부에서 발표한 자체조사 결과도 문제투성이였다. 음성 파일을 공개한 <슈칸 신초(주간 신조)>를 제소하겠다는 후쿠다의 주장 등이 일방적으로 나열되었다. 후쿠다의 권한대행을 맡은 야노 고지 재무부 관방장은 “직장 밖에서 직원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라는 말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바닥을 드러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아소 재무장관의 태도다. “실적 등을 고려할 때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라며 후쿠다를 옹호하던 그는 “후쿠다는 인권이 없단 말이냐”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미투 운동, 일본판 ‘촛불’과 결합할까

아베 총리 측근들의 망언 ‘활약’도 입길에 올랐다. 지난 4월20일 다쓰미 고타로 참의원 의원(일본공산당)은 “후쿠다는 사임할 게 아니라 징계처분을 받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민주당(여당 시절)과 유신의당을 거쳐 자민당 내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둥지를 튼 ‘철새’ 나가오 다카시 중의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성희롱과는 인연이 먼 분들”이라며 미투 운동에 동참한 여성 의원들을 모욕했다. 그는 숱한 극우 발언으로 아베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한 장본인이다.

일본의 야당연대와 시민사회는 후쿠다 전 재무부 사무차관의 성추행 사건을 모리토모·가케 학원 문제와 재무부 문서 조작 등과 더불어 정권 퇴진의 중대 사유로 규정한다. 미투 운동이 일본판 촛불시위에 더해져 또 다른 사회변혁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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