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로 출산한 다음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을 느꼈다. 윌리엄스는 2011년 다리 수술 후 혈전으로 인한 폐 색전증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이게 무슨 증상인지 바로 알았다. 혈전색전증은 혈액이 끈끈해져 다리나 폐의 혈관을 막아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오래 움직이지 못하는 장거리 여행이나 수술, 임신, 경구피임약 등이 원인이다. 그녀는 간호사를 호출해 즉시 흉부 CT와 항응고제 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간호사는 그녀가 진통제로 인해 정신이 몽롱한 거라고 생각했다. 재차 요청하자, 의사는 초음파로 다리에서 혈전을 찾으려고 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못 찾았다. 결국 그녀가 지속적으로 외친 흉부 CT를 찍고서야 작은 혈전이 폐혈관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항응고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기침을 하다가 제왕절개 상처가 벌어졌고, 항응고제로 인해 피가 묽어져 수술 부위에 큰 혈종이 생겼다. 재개복수술까지, 총 6주나 입원했다.
질병 치료의 인종 간 격차와 젠더 편견
이 이야기가 알려진 후 ‘세리나 윌리엄스나 되니 살았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모성사망률은 악명이 높다. 특히 인종 간 격차가 심하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1~2013년 신생아 10만명이 태어날 때 백인 엄마는 12.7명이 사망한 반면, 흑인 엄마는 43.5명이 숨졌다. 물론 소득수준이나 임신 이전 건강 상태 등 다른 요인이 있지만 윌리엄스의 예처럼, 인종 자체만으로 의료진은 환자를 경시한다.
주목해야 요인이 또 있다. 의료진은 ‘여성’ 환자의 말을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류머티즘 환자인 마야 듀선버리는 자신의 책 〈Doing harm〉에서 의학이 젠더 편견을 가지게 된 전통과, 그것을 내면화한 의료진들이 얼마나 여성 질병에 소홀한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인터뷰한 한 여성은 심장마비로 세 차례나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정상’이라며 돌려보내졌고, 엉뚱하게 항우울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네 번째 방문에서야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 이를테면 비특이적인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는 다발성경화증은 첫 증상에서 진단까지 평균 2년이 걸린다. 만성 통증을 일으키는 섬유근육통은 첫 증상에서 진단까지 평균 2.3년이 걸리며 3.7명의 의사를 거친다. 이 질환은 여성에게서 훨씬 더 많이 발병한다.
그뿐 아니다. 쉬운 증상에서도 의사들은 여성들이 원인도 없는 증상 때문에 불평한다는 편견을 강화한다. 대표적으로 생리통은 ‘정상’이기 때문에, 심한 생리통을 일으키는 자궁내막증 같은 질병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까지 평균 12년이 걸린다. 환자는 12년간 답을 찾아 여러 의사를 방문하지만, 마지막 의사 외에는 모두에게 ‘닥터쇼핑 하는 여자’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여성 질병이 덜 연구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학의 무지와 의료인의 젠더 편견이 결합해 생기는 문제다.
나도 잘 모를 때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질병 경험을 더 많이 말하고, 공유하고, 피드백하자. 의료인 역시 여성 환자를 대하는 젠더 편견은 없는지 진료 패턴을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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