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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평 독방에서 19년을 산 사람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18년 05월 04일 금요일 제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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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사람.’ 박정희 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인 서승 교수(리쓰메이칸 대학)를 이르는 말이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재일동포 서울대 유학생 서승은 보안사로 끌려갔다. 당시 야당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 혐의를 씌우려고 조작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른바 ‘재일동포 유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조사를 받던 서승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분신을 기도했다. 난로를 끌어안아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동생 서준식과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19년간 0.75평 독방에서 복역했다. 맨몸으로 견디는 폭염과 혹한의 날들, 사상 전향 공작, 엄혹한 감시와 폭행이 상존하는 독방에서 그를 견디게 한 것은 오로지 따뜻한 가슴이었다. 옥중 동지들 사이의 우정,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그리고 온기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교류와 부대낌이 버팀목이었다. 그는 1990년 2월28일 석방되었다.

서승 교수는 1994년 일본에서 <옥중 19년>을 펴냈다. 1999년 역사비평사에서 번역판이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한국어판이 나온 지 20여 년 만에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개정판을 냈다. 이번 개정판은 서 교수가 직접 번역했다. 초판에 빠졌던 표와 지도, 자료 등을 보강하고 오류와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격동의 현대사를 만날 수 있다. ‘감옥 속의 감옥’인 정치범 특별사동에는 남과 북에서 잊히고 지워진 사람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었다.

저자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고통의 중심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절제된 감정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냉정한 관찰자의 기록에 가깝다. 한국 인권사에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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