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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김대수 (미지북스 편집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5월 04일 금요일 제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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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규정하려고 한다. 이런 시도는 일종의 고지전, 즉 ‘정치적 투쟁’을 동반한다. 이 싸움은 그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채 이루어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승리하고 언덕에 깃발을 꽂지만 ‘진실’의 승리라기보다 일방의 승리, 정치적 규정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승자가 사건의 대변인이 되어, 이른바 정론으로 변신해 성역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박제된 모습을 순례할 뿐 좀처럼 그 생생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최정운 지음, 미지북스 펴냄

최정운 교수의 <한국인의 발견>은 이러한 정론의 억압을 지적하며 시작한다. 결국 이 책은 현대사의 존재와 사건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 그러기 위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현대사를 통해 한국인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 좀 더 폼 나는 말로 하면 우리의 ‘사상’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은 주류의 서술과는 퍽 다르다.

해방 후 초라한 모습의 한국인들은 ‘새 나라의 어린이’에 희망을 걸었고, 한반도는 만세의 물결이 파도치는 환희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멸절의 전쟁 후 1950년대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죽음’의 풍경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저자에 따르면 우리 예술가들에 의해) 한국인은 생명을 되찾고 움직이고 욕망을 회복했다. 말하자면 ‘부활’하고 ‘재생’했다. 그리고 1960년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다. 4·19와 5·16은 모두 1950년대 후반에 연원을 둔 쌍둥이, ‘두 개의 혁명’이었다. 두 개의 혁명 이후 욕망이 만개하는 시대가 열렸으니 1960년대와 1970년대 ‘산업화’란 욕망의 대대적 전개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욕망이 불꽃처럼 명멸하는 가운데 ‘인간의 존엄’에 눈뜨고 심지어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민주화’는 그러한 역사적 전개의 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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