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힐 복지원은 30년이나 폐허로 남겨져 있었다. 철조망에 붙어 있는 출입금지 안내문, 창문마다 널빤지가 덧대어 있고, 황폐한 정원에는 까마귀가 날아다닌다. 어느 날 외로운 소녀 엘라가 근처로 이사를 왔다. 엘라의 방에서는 손힐이 한눈에 들어온다. 엘라는 어쩐지 손힐에 자꾸 눈길이 간다. 자기와 손힐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엘라의 엄마는 곁에 없고, 아빠는 늘 바빠서 메모로만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다 엘라는 손힐의 정원에서 한 소녀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그녀를 쫓아간 엘라. 정원 여기저기서 인형 조각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가져와 예쁘게 색도 칠하고 머리카락도 만들어준다. 엘라는 지역신문에서 30년 전 손힐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소녀 메리에 대해 알게 되고,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분명 아무도 살지 않는 손힐의 꼭대기 방에 밤이 되면 불이 켜진다. 엘라는 손힐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정원에서 열쇠를 발견한 엘라는 자석처럼 꼭대기 방에 이끌려 잠긴 문을 연다. 거기에는 인형 수십 개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었다. 침대에는 파편을 주워 만든 끔찍한 인형도 있었다. 엘라는 그 방에서 메리의 일기를 발견하고, 30년 전 손힐 복지원에서 메리가 겪은 끔찍한 일을 알게 된다. 메리의 외로움과 슬픔, 고통에 동질감을 느낀 엘라는 그녀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주려고 한다.
메리의 일기와 엘라의 그래픽
〈손힐〉은 독특한 형식의 그래픽노블이다. 1982년 손힐에서 살았던 메리의 일기는 텍스트로, 현재를 사는 엘라의 이야기는 그림으로 교차하며 보여준다. 그래픽노블이지만, 과거 시점인 메리의 이야기는 노블(소설)만, 현재 시점인 엘라의 이야기는 그래픽(그림)만 있는 셈이다.
눈에 가장 띄는 것은 형식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스릴과 감정도 대단하다. 메리의 일기는 자신을 따돌리던 아이가 복지원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한다. 메리는 그날 이후 방에서 나가지도 못할 만큼 두려움에 떤다. 손힐의 복지사들은 메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메리는 철저히 버려진 채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메리가 비극을 향해 가는 사이 엘라 역시 위험천만한 손힐에 점차 빠져든다. 친구에 굶주린 두 소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또 하나의 비극이 일어난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외로운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다만 친구를 원했을 뿐인, 버려진 아이들은 결국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책이 눈을 끄는 또 하나의 지점은 작품의 분위기를 반영한 만듦새다. 독특한 질감의 양장본에 종이의 테두리에만 먹장을 입혀 어두운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형식과 내용과 만듦새, 삼박자가 제대로 맞은 그래픽노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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