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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발칵 뒤집혔다. 삼성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최고 권력자 이학수 부회장과 2인자 김인주 사장이 아파트 앞에서 한밤중에 ‘뻗치기’를 했다. 매일 전략기획실에서 긴급 회의가 열린다. 삼성은 중국에 유학 간 임원마저 급히 불러들였다. 밤에만 삼성맨으로 활약하던 공무원들이 신변을 노출하고 삼성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닌다. 삼성의 위기다. X파일 사건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삼성이다. 외환위기 터지고 이런 난리는 없었다.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다.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50). 그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삼성 구조조정본부(구조본)의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일했다. 그는 기업체로 간 최초의 검사였다. 삼성 구조본에서 승진을 마다한 첫 삼성맨이었다.

삼성의 머리와 심장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삼성 고위직을 지낸 인사의 내부 고발은 처음이다. 삼성이 우리 사회 고질적인 부패의 진앙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삼성을 교과서 삼아 모든 기업이 따라가려고 발버둥친다는 것도 김 변호사가 나선 한 이유라고 한다.

그의 주장에 약점은 있다. 구체적인 자료가 뒷받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양심 고백을 하는 게 아니라 '자수서'를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과 공범으로서 수사를 받겠다는 뜻이다. 그의 의지가 확고하고, 그가 7년간이나 삼성의 핵심부에 있었다면 그의 말도 충분히 그대로 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그가 〈시사IN〉 기자와 만나 5일 동안 털어놓은 얘기 중 일부를 구술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삼성의 관제탑인 전략기획실은 삼성보다는 이건희·이재용 일가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전략기획실은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어 큰 덩어리는 이건희 회장 일가를 위해 썼다. 부스러기는 정계·관계·학계·언론계에 뿌려 삼성의 손과 발이 되도록 관리했다.

‘권력은 구조조정본부에 주라’는 이건희 회장의 엄명에 따라 전략기획실은 절대 권한을 가졌다. 전략기획실은 때로는 법을 무시하고 공적 권력 체계보다 우월하다. 그 힘의 근원은 돈이다. 금고지기 총책임자는 전략지원팀장인 김인주 사장이다. 그는 삼성을 지배하는 실질 권한을 가졌다. 삼성그룹의 모든 부회장과 사장이 그의 지배 아래 있다. 그가 전략기획실장 이학수 부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시대를 열 것이라고 한다.
 

X파일 사건과 편법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지난해 2월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전략지원팀은 계열사 사장단 및 재무담당 임원, 전략기획실 임직원 명의의 차명 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 그룹 매출 규모가 140조가량 됐는데 매출액이 6000억원에 불과하고 적자에 허덕이는 계열사에 50억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분식 회계를 통해 연간 1조원가량 비자금을 만들었다.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옛 재무팀)은 그룹의 실세 중의 실세. 전략기획실 안에 있는 인사지원팀과 기획홍보팀의 위상과 비교할 수 없다. 계열사마다 비자금 액수가 할당되면 무조건 돈을 만들어 보내야 한다. 삼성이 분식 회계를 통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대선 자금 수사 때마다 빠짐없이 불거졌다.

흔한 수법이 이중장부를 만들어 수주 금액을 부풀리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한 라인을 만드는 데 2조5000억원가량 드는데, 삼성물산이 공사를 하고 장비는 일본 삼성에서 일괄 구매한다. 두 수주 계약에서 수천 억원 비자금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타워팰리스를 지으면서 천문학적 비자금을 만들고 관련 자료는 100% 없앴다고 한다.

1000여 명 차명 계좌로 비자금 관리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주거나 부실을 메워주는 것도 전략지원팀의 작품이다. 2003년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와 제휴 계약을 맺으면서 이용권 구매비 및 판촉비로 67억5000만원을 미리 지급했다가 적발됐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항공의 경우 백화점 영수증을 동원하고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경비 처리했다고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진 신고하고 털고 가는 회계상 노하우를 발휘했다.

물론 국세청의 묵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은 국세청 공무원 관리에 역점을 뒀다. 회사 고위층은 국세청 신참 직원의 집에서 화분갈이를 해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삼성의 SM5 1호 신차도 국세청 국장 몫이었다.
 

모아진 비자금은 전략지원팀 금고로 들어간다. 삼성 본관 27층 전략지원팀 내 경영지원팀(옛 재무팀 내 관제팀) 구석에 상무 방이 있다. 상무 방에는 가구가 있는데 그 뒤 벽에 비밀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철창이 나오고 그 안에 비밀 금고가 있다. 안에는 각종 유가증권·의류권·상품권·순금이 있다. 이곳에는 경영지원팀 가운데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다. 2004년 퇴사할 때는 관제팀 내에서도 권 아무개 상무와 최 아무개 상무 담당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관제팀(현 경영지원팀)이 어렵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고 격려하곤 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이 있었다.

금고에 보관하는 돈은 비자금 중 극히 일부분이다. 비자금은 전략지원팀에서 차명으로 관리한다. 전·현직 핵심 임원 1000여 명의 차명계좌에 현금·주식·유가증권 따위로 분산되어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은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나의 차명 계좌를 이용하고 있다. 삼성 본관 2층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서 개설한 김용철 명의의 계좌에는 5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다. 2006년도에 1억8000여 만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해 2500여 만원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했다. 물론 전략기획실에서 세금을 내줬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계좌를 나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월18일에는 이 계좌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으나, 이후에는 이마저 확인되지 않았다. 10월18일 이 계좌를 조회하니 우리은행 측에서 삼성 쪽에 알려 조처를 취한 것 같았다.
 

김용철 변호사 명의로 관리되고 있던 삼성의 비자금 계좌. 김씨는 계좌 번호와 개설 지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은행과 공모가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 외에도 우리은행 삼성센터 지점과 신한굿모닝증권 도곡 지점에서 삼성은 내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개설한 뒤, 비자금을 관리했다. 내 명의의 비자금 통장을 만든다는 것은 삼성으로부터 신임받는 핵심 인력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임원들은 일종의 승진으로 생각한다.

비자금의 일부 부스러기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선거의 불법 자금으로 제공돼 선거판을 어지럽혔다. 삼성의 자금 없이 치러진 것은 선거가 아니었다. 또한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 판검사, 정부 고위 관리, 언론인 등 사회 지도층 전반에 뿌린다. 형태도 현금, 골프 접대, 상품권, 호텔 할인권, 고급 포도주 등 다양하다. 삼성이 떡값을 주면서 ‘관리’하는 인사는 모두 우리 사회 지도층이다. 삼성의 관리를 받는다는 것은 미래를 보장받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삼성은 ‘삼성 돈은 뒤탈이 없다’ ‘증거가 드러나도 삼성은 불지 않는다’는 속설을 만들어 거부감을 줄여주었다. 

삼성을 호위하는 인맥은 삼성의 정보를 국가정보원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략기획실에는 모든 정보가 모인다.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검찰·경찰의 정보 보고가 매일 들어왔다. 언론사의 정보 보고는 실시간으로 접수됐다. 삼성 관계사인 중앙일보의 정보 보고는 하루에 두 번씩 전략기획실 책상에 올라왔다. 심지어는 삼성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회의록이 전략기획실 팩스로 들어온다.

삼성 천거로 장관된 인사 많아

인맥과 정보로 삼성은 공무원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삼성의 천거로 장관이 된 인사는 많다. 삼성을 비판했던 공정거래위원장은 공교롭게 연임에 실패했고, 이후 변변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공정위에 파견된 한 검사는 삼성과 관련한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검찰로 불려들어가 좌천당했다. 한 검사가 돈을 밝힌다고 하자 그 검사는 바로 인사에서 물먹었다. 검찰총장 내정자 등을 비롯해 검찰 인사를 삼성은 먼저 알고 있었다.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결심하고, 언론의 취재가 시작됐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열성적으로 움직인 것도 공무원이었다. 대검찰청, 청와대, 정부 고위 관료가 삼성의 논리로 김 변호사를 매도하고 삼성을 두둔하고 나섰다. 한 정부 고위 관료는 “김 변호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아내와 함께 돈을 뜯기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론을 펴기 위해 〈시사IN〉 편집국을 찾은 삼성 홍보팀 고위 간부는 이 관료와 똑같은 논리를 폈다. 어휘마저 비슷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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