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 뮤지션과는 되도록 거리를 둬야 한다고 믿어왔다. 이유는 명료하다. 음악을 평할 때 찜찜함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까지는 이 원칙을 꽤 잘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하긴,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지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언제 기회 되면 유병재씨랑 누가 더 낯을 가리나 내기 한번 해보고 싶다.
최근 이 원칙에 큰 고민을 가져다준 음악 책을 하나 읽었다. 아니, 음악 책이라기보다는 ‘뮤지션에 관한 책’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이다. 제목은 〈신해철: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돌베개 펴냄). 그렇다. 이 책은 고 신해철에 대한 평전 성격을 띠고 있다. 내게는 대선배라 할, 음악평론가 강헌이 지은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리뷰〉라는 계간지가 있었다. 내 주변에 음악 좀 좋아한다는 사람 중 거의 모두가 이 계간지를 읽었다. 그중에서도 강헌 평론가가 진행한 두 명과의 인터뷰를 잊지 못한다. 바로 서태지와 신해철이다. 둘 중 신해철과 했던 인터뷰가 확장 버전으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해철 관련한 인터뷰 중 이게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좋다. 겉핥기식 인터뷰가 아닌 진짜 인터뷰. 그러니까, ‘상호 간의 관점을 교환하면서 독자에게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 인터뷰 말이다.
인터뷰를 포함한 책 전체를 보면서 ‘이건 현재의 내가 할 수 없는 콘텐츠’라는 판단이 섰다. 나와 신해철 간의 사적인 인연이라고 해봐야 인터뷰 한 번에 일주일 정도 라디오를 함께했던 것에 불과해서다. 즉, 이 책은 뮤지션을 넘어선 ‘인간’ 신해철에 대해 강헌 평론가만이 쓸 수 있는 결과물이다. 나는 신해철이 왜 (가끔은 음악 밖의 영역에서도) 가시면류관을 쓰면서까지 변화를 부르짖었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격하게 공감했다.
책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헌 평론가 특유의 화려한 수사학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본다. 가끔씩 보이는 예스러운 표현들이 눈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걸로 트집 잡기에는 책 내용 자체가 독보적으로 출중하다. 그의 문장력 역시 변함없이 탁월한 수준이다.
모든 음악평론가들의 버킷리스트
뮤지션 한 명에 대해 깊이 있는 책을 내는 것은 모든 음악평론가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강헌 평론가의 경우, 신해철과 조용필에 대해서만은 자기가 ‘누구보다 잘 쓸 수 있다’고 확신해왔을 것이다. 20대 시절 문화센터와 모교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경험을 떠올려볼 때, 나는 그가 확신해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책에도 나오는, 이 두 뮤지션의 명반 리스트 순위에 관한 그의 도그마에 가까운 주장은 잠시 물리기로 하자. 비판의 맥을 잘못 짚었다는 정도만 부기해둔다. 이 모든 걸 뒤로하고, 〈신해철: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는 신해철이라는 항성에 대한 가장 입체적이고도 인상적인 주석이라 할 만하다. 그 항성을 동경하며 주위를 떠돌았던, 나를 포함한 수많은 위성이 이 책을 읽으며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
“음악만은 아무도 웃지 못하도록 할게”
“음악만은 아무도 웃지 못하도록 할게”
임지영 기자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빠진 내용은 있다. 1994년 5월, 록 밴드 넥스트가 두 번째 앨범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1:더 비잉(The Retu...
-
우리 시대의 마왕 고마웠어요, 잘 가요
우리 시대의 마왕 고마웠어요, 잘 가요
고재열 기자
마왕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향년 46세,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 및 패혈증’이라는 병명이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여느 연예인의 죽음과는 결이 달랐다...
-
우리에게 남겨진 당신의 조각들
우리에게 남겨진 당신의 조각들
차우진 (음악평론가)
음악가로서 신해철은, 적어도 초기에는, 자신이 만드는 음악은 그게 활동의 기반이든 추구하는 사운드든 간에 아무튼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그러니까 (한국에) 없던 것을 먼저 시도해...
-
최정상을 비난하는 개똥 같은 이유 [음란서생]
최정상을 비난하는 개똥 같은 이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브루노 마스.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최고 인기 뮤지션이다. 만약 그 이름이 낯설다면 이 곡부터 감상해보길 권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
-
‘선하게’ 쓰고픈 배우라는 영향력
‘선하게’ 쓰고픈 배우라는 영향력
장일호 기자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배우 임수정씨의 작업실 앞에 형제로 보이는 얼룩 고양이 두 마리가 서성였다. 많은 어린 길고양이가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이야기가...
-
가끔씩 찾아오는 경이의 순간 [음란서생]
가끔씩 찾아오는 경이의 순간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신뢰하지 않는 몇 가지 선언이 있다. 그중 하나, 바로 “난 음악 없인 못 살아요”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무엇을 논하든 간에 ‘절대’를 상정하는 문장은 언제나 불편하다. 예외를 ...
-
정교하고 호방한 이 록밴드를 보라 [음란서생]
정교하고 호방한 이 록밴드를 보라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연주는 더없이 정교한데, 이를 통해 표현되는 밴드의 기세는 참으로 호방하다. 그들을 설명할 때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온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적 록’이다. 그러나 아시안체어샷...
-
이 친구들은 장르로 정의할 수 없겠는걸 [음란서생]
이 친구들은 장르로 정의할 수 없겠는걸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가장 믿음직한 선생은 수십 가지 ‘리스트’였다. 해외건 국내건, ‘명반 순위 100’ 같은 것을 입수해 하나씩 지워가면서 앨범을 모았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