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에이즈(AIDS·후천면역결핍증) 환자와 이웃으로 지낼 수 있나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스웨덴인 6.1%, 미국인 13.9%가 ‘에이즈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습니다. 같은 대답을 한 한국인은 무려 88.1%였습니다. 스웨덴의 14배, 미국의 6배가 넘는 수치입니다(2010~2014년 제6차 세계가치조사). 만약 이 조사가 진행된 시점이 1980년대라면, 에이즈 환자에 대한 압도적으로 높은 거부감을 일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HIV/AIDS 감염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병에 걸리면 절반 가까운 사람이 2년 안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서 환자가 사망하는 모습을 의료진들도 무력하게 지켜보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세계 에이즈의 날인 12월1일 시민들이 에이즈 퇴치를 상징하는 빨간 리본 형상을 만들었다.

그 시절 미국에서는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신규 감염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음지에서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1988년 뉴욕 시 보건담당 부서는 과감하고도 놀라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HIV 신규 감염을 줄이기 위해 마약 중독자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주삿바늘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용했던 주삿바늘을 반납하면 그 숫자만큼 새것을 내주는 식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거대한 논란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효과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된 마약을 사용하라고 돕는 일에 세금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런다고 HIV 감염이 줄어들 리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그 논쟁 속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사회는 ‘과연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이 HIV 신규 감염을 줄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마약 사용이 증가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논쟁 속에서 1996년 역사적인 논문이 학술지 〈랜싯(Lancet)〉에 발표됩니다. 돈 자라이스 교수 연구팀은 〈뉴욕의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과 마약 사용자에서의 HIV 발병률〉이라는 논문에서 뉴욕 지역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마약 사용자들은 연간 100명당 1.56명이나 1.38명이 HIV에 감염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연간 100명당 5.26명이나 6.23명이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주삿바늘 무상 교환 프로그램이 HIV 신규 감염을 3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이 논문은 그 논쟁적인 프로그램의 효과를 증명한 최초의 연구입니다.
 

ⓒ연합뉴스세계 에이즈의 날을 하루 앞둔 2017년 11월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HIV/AIDS 인권활동가들이 HIV/AIDS 인권주간 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계속되는 실험 속에서 여러 연구가 쌓였습니다. 마침내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의 효과〉라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은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마약 사용자들에게서 HIV 감염을 막아내지만, 사회적으로 마약 사용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분노나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사회를 실제로 바꾸는 일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당시 뉴욕에서 불법인 마약 사용을 모두 막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주삿바늘로 전파되는 HIV 감염 역시 함께 막을 방법이 있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정책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뉴욕 시 보건담당 부서는 실제 가능하면서도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HIV/AIDS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고안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치료받으면 바이러스 전염되지 않아

2018년 HIV/AIDS는 19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질병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HIV 감염은 ‘현대판 흑사병’이 아닙니다. 과학의 성과입니다. 원인 바이러스를 밝혀냈고, 병의 진전을 막는 치료약을 개발하고,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과 같이 실제로 감염을 줄이는 중재 프로그램을 찾아냈습니다. 이제 미국과 캐나다를 기준으로, 스무 살에 HIV에 감염된 젊은이는 평균 일흔 살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성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논문이 2013년 〈랜싯〉에 게재된 〈에이즈의 종말:만성질환인 HIV 감염〉입니다. 학계에서 HIV 감염을 만성질환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치료약을 비롯한 여러 과학적 성과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더라도,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질병이 발생하는 에이즈의 단계까지 가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HIV는 당뇨나 고혈압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달리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그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획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면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최근 발표된 놀라운 연구 결과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7년 9월27일 미국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공지된 편지를 통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미국질병관리본부 HIV/AIDS 분과 책임자인 유진 매크레이는 HIV 감염인이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아 체내 바이러스 농도가 어느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동성 간이나 이성 간 모든 성관계에서 파트너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HIV 감염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치료약을 충실히 복용하면 비감염인과 평균수명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만성질환이 되었습니다. 에이즈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율이 스웨덴이나 미국에서 한국과 비할 수 없이 낮은 이유입니다.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HIV/AIDS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30년 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HIV/AIDS에 대한 비과학적 낙인과 혐오는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HIV 감염인의 삶을 파괴합니다. 한국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HIV에 감염된 한국인은 총 1만1439명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는 여러 심각한 차별 중 하나는 누구보다도 HIV/AIDS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의료진으로부터 받는 차별입니다. 감염인 208명이 참여한 〈감염인(HIV/AIDS) 의료 차별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2016)에서 응답자 중 26.4%가 HIV 감염 사실을 확인한 후에 약속된 수술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환자에 대한 비밀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담당 의료진이 공식적인 협진 이외에 다른 의료진에게 자신의 감염 사실을 누설한 적이 있다는 응답을 한 사람도 21.5%나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HIV에 감염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의료진은 HIV 감염인을 대할 때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안전에 신경 쓰고 잠재적인 감염으로부터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이루어진 연구를 통해 의료진이 일반적으로 감염을 막기 위해 지키는 ‘보편적 감염 주의 원칙(Universal Precaution)’을 따르면, HIV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공포와 편견에 기반한 ‘과도한 행동’은 의료진을 HIV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2017년 유엔 에이즈계획(UNAIDS)의 지원을 받아 시행된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감염인 104명 중 64.4%가 지난 1년간 ‘HIV 감염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질문에 독일의 감염인은 22.8%,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감염인은 14.5%만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HIV 감염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도 36.5%로 다른 모든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오른쪽 〈표〉 참조).

이러한 자살 충동은 ‘충동’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이훈재 교수가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를 받아 진행한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2005)에 따르면 한국의 HIV 감염인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 전체의 자살 사망률보다 10배가 높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그런 한국인 전체 인구보다도 HIV 감염인은 자살로 사망할 위험이 10배나 높은 것입니다.

둘째, HIV/AIDS에 대한 낙인과 혐오는 비감염인들이 HIV에 감염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감염인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참여한 감염인 104명 중 22명은 ‘가족과 친구와 파트너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숨기게 되면 주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질병관리본부의 발표처럼, 치료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성관계 시 파트너가 감염될 위험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낙인으로 인해 감염 사실을 숨겨야 하는 현재의 한국 상황은 HIV 감염 전파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한국에서 자주 언급되는 ‘동성애가 HIV 감염 원인’이라는 주장은 비과학적 선동인 동시에 이성애자가 HIV/AIDS로부터 안전한 집단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한국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새로운 HIV 감염인이 발생했을 때, 그 감염인이 이성애자일 가능성이 동성애자일 가능성보다 항상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성애자는 안전하다는 착각으로 인해, HIV 감염 조기 검진에 응하지도, 콘돔을 사용한 안전한 성관계를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HIV 감염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HIV 감염이 치명적이고, 그 질병의 원인이 동성애라고 말하는 비과학적 낙인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에서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HIV 신규 감염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주기적인 검진을 통해 병을 조기에 발견한다면 당사자의 건강도 지키고, 주변인에게 전파될 위험도 줄어들 수 있지만, 질병에 대한 낙인으로 인해 잠재적인 환자들이 음지로 숨게 됩니다. 이미 감염된 이들은 차별이 두려워 스스로를 계속 숨기게 됩니다. 이는 HIV 감염인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HIV 전파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어떤 전문가 집단도 HIV 감염을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공포를 조장하거나, 동성애자나 성매매 여성과 같은 특정 집단을 질병의 원인으로 낙인찍는 일이 HIV 신규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편견과 낙인이야말로 의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드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HIV 보균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감염인은 제거해야 할 병균이 아닙니다. 인간을 병균과 동치시키기 때문에, HIV 환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면 그 경찰이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는 일이 실제로 발생합니다. HIV 감염인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어로 감염인을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People Living with HIV/AIDS)’이라고 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은 HIV 감염인만이 아닙니다. 당뇨 환자(Diabetic patient)를 ‘당뇨를 가진 환자(Patient with diabetes)’라고, 조현병 환자(Schizophrenic patient)를 ‘조현병을 가진 환자(Patient with schizophrenia)’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동의를 얻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간은 질병 이상의 존재이고,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 역시 잘라낼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지요.

혐오는 쉽습니다. 가장 약하고, 아픈 당사자들을 욕하면 되니까요. 어떤 이들은 HIV 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합니다.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혐오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증가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한국 사회의 HIV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혐오와 사회적 낙인을 거두고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난 30년간 과학 연구를 통해 인류가 알게 된, HIV 감염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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