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노 가쓰토시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은 미국통이다. 자위대에서 미군 움직임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통한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해리 해리스 사령관과 밀접한 관계이고 미군 내 폭넓은 인맥이 그의 자산이다. 지난해 말 통합막료장 교체 시점이 됐음에도 아베 총리가 그를 유임시킨 이유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군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인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보는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직보되며 정세 판단의 근거로 활용된다.
북한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 ‘아킬레스건’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되기 전 얘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폼페이오뿐 아니라 특히 볼턴은 ‘슈퍼 강경 인사’로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볼턴에게 농담 삼아 “당신이 악마의 화신이라고 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볼턴은 북핵 해법과 관련해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며 북·미 정상회담 때 수송함을 끌고 가 북한 핵무기를 싣고 오면 된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 폼페이오나 볼턴의 ‘주전선’이 북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아니라면 어딜까? 이란이다. 즉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파기가 주요 미션이다. 2015년 7월 미국을 비롯한 안보리 5개국 및 독일과 이란 간에 이란의 핵시설과 우라늄을 제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JCPOA가 체결됐다. 이를 반대한 공화당은 이란핵합의검토법(INARA)을 제정해 90일마다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JCPOA 준수 여부를 판단해 승인 내지 불승인 의사를 의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대(對)이란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 조치가 빠져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불승인 통보를 했다. 지난 1월에는 미비 사항을 보완해 의회가 협정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진행 사항이 전무하다. 다가오는 5월12일 미국은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내에는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 내 갈등 양상이 소상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지난 1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및 제임스 켈리 비서실장 등의 갈등이 북핵 문제보다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에 대한 견해차에서 주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은 바로 그 중심인물이다.
겉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최대 이슈였으나 권력 내부에서는 5월12일로 다가온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셈이다. 우리 대북 특사단이 백악관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4월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서두른 배경 역시 이 문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빨리 안정시키고 이란 핵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11월 중간선거의 의미는 크다. 중간선거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이란 핵과 북핵 문제의 명암이 갈릴 수 있다. 대전제는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북한과 이란 양쪽에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순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실로 절묘한 타이밍에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과의 외교 협상 성과를 중간선거에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핵 폐기 기간은 북한 의지뿐 아니라 미국의 보상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더구나 보상의 키를 쥔 쪽은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다. 북핵의 실험 유예(모라토리엄)나 동결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는 대통령 권한이나 행정명령으로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핵 폐기와 관련한 본격 보상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쉽지 않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의회 반대로 물거품이 된 경험이 있어, 북한이 이번에는 합의 사항에 대해 의회 비준을 거친 조약 형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의회는 1994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요구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실제로는 동결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반적으로 동결은 확산 방지(수출 중단), 실험 중단(핵실험), 개발 중단(ICBM), 증량 중단(생산) 등 ‘4NOs’를 뜻한다. 미국 처지에서 핵심은 수출 중단과 더불어 수소폭탄을 이용한 탄두 소형화, 그리고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합의가 되면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진출하고 비핵화는 연락사무소를 기반으로 하겠다는 게 미국의 실제 복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북·미 양측은 뉴욕 채널을 통해 중간선거 이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심층적으로 논의해왔다(〈시사IN〉 제549호 ‘평양 하늘에 성조기 휘날릴까?’ 기사 참조).
중국이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보상 떠맡을 듯
주목할 점은 미국이 동결 대가로 북·미 관계를 어느 선까지 진척시킬 것인가와 비핵화는 어떻게 될 건지 하는 문제다. 비핵화부터 보면 미국이 결국 중국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즉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국제 감시단을 이끌고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비핵화를 관장하고 경제 보상을 떠맡는 방식이다. 대신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주한 미군의 성격이나 규모를 조정한다. 이런 구도가 바로 2016년 9월 발표된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 이후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사회 주류의 기본 해법이다.
비핵화의 짐을 중국에 떠맡기는 대신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대북 제재 완화, 북한의 국가 승인, 나아가 북·미 수교 등이다. 미국이 직접 경제 부담을 지지 않는다 해도 북한을 도울 방법은 있다. 베트남 예에서 보듯 미국 시장에 대한 최혜국 대우 보장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의 대북 융자 제공 등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다못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진출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산항을 미국 함선에 개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돈 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쟁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해야
문제는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얘기했듯 앞으로 몇 달이 우리에게는 역사적 기회다. 이 기회에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 남북관계 개선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이 모든 것의 대전제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정전체제와 분단체제 아래서 해결되지 못했던 남북문제 역시 이참에 해결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더 이상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1948년 제헌헌법에 따른 영토 조항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자격 시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70여 년을 흘러왔다. 앞으로 북핵은 온존한 채 북·미 관계만 진전되고, 주한 미군 역할이 바뀌는 등 변화가 일어나는데 분단체제에 따른 남북문제만 그대로 남으면 우리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때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문제부터 향후 남북 간 불가침 및 무력 불사용 문제, 서해 평화 문제 등 그동안 쟁점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안보 우려와 경제 재건과 관련해서도 우리 측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수교하면,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잇달아 수교할 것이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도 본격화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핵이 없을 때라면 몰라도 핵을 가진 북한과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 질서 재편에 나서고 있는 이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안을 던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국가 승인을 주도하고 남북관계를 국제적인 보장 아래 국가연합 단계로 안정시킴으로써 공존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중간 단계를 거치며 사회·경제 교류를 통한 실물 통합을 진전시키고, 점차 외교·국방·통화 통합 단계로 나아가는 장기적이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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