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노 가쓰토시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은 미국통이다. 자위대에서 미군 움직임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통한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해리 해리스 사령관과 밀접한 관계이고 미군 내 폭넓은 인맥이 그의 자산이다. 지난해 말 통합막료장 교체 시점이 됐음에도 아베 총리가 그를 유임시킨 이유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군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인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보는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직보되며 정세 판단의 근거로 활용된다.



ⓒ연합뉴스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 간담회.
그가 이끄는 일본 자위대는, 미국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18일 직후를 북한 공격의 디데이로 잡고 있다고 믿어왔다. 가와노 가쓰토시는 “3·18 이후를 대비하라”며 간부들을 다그쳤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이 한창 진행될 때 그가 ‘다른 얘기’를 해, 자위대뿐 아니라 일본 정가에 화제가 되었다. 3~4월에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셋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며 그가 지목한 방안이 이전까지 주장한 방향과 전혀 달랐다. 그가 예측한 미국의 세 가지 방안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북한에 대한 현재의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확대해 북한을 압박하며 핵무기와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형태로 폐기하도록 하는 것, 두 번째는 북한의 핵무기와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ICBM은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폐기한다는 것, 여기서 ‘인정’이란 군사적으로 추인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미군이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공격한다는 것. 이 세 가지 옵션 중 그는 미국이 두 번째 안을 선택할 것이라 판단하고 육해공 자위대 간부들의 별도 회합 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다.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미국이 자기들에게 위협적인 ICBM만 폐기하고 일본에 위협적인 IRBM과 북한 핵을 용인하는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Reuter4월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
그가 미국통으로서 얻은 정보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으로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내린 판단인지 알 수 없다. 두 가지가 섞였을 수 있다. 북한 핵무기를 현 수준에서 ‘추인’한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와 미래의 핵은 중단하되 기존 핵무기는 일단 현 수준에서 용인하고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즉, 동결을 의미한다. 북한 미사일 관련 부분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1999년 북·미 미사일 협상 때도 그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미국은 당시에도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만 협상하고, 일본을 목표로 하는 노동미사일은 협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 일본이 노동미사일 폐기 비용을 수교배상금에 가산해, 한때 배상금 액수가 2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4월17~18일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는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일 것이다. 납북자 문제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문제야말로 일본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북한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 ‘아킬레스건’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되기 전 얘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폼페이오뿐 아니라 특히 볼턴은 ‘슈퍼 강경 인사’로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볼턴에게 농담 삼아 “당신이 악마의 화신이라고 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볼턴은 북핵 해법과 관련해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며 북·미 정상회담 때 수송함을 끌고 가 북한 핵무기를 싣고 오면 된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EPA4월9일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 모습. 트럼프 대통령(가운데)의 오른쪽에 신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내보이며 대북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두 사람을 전격 기용했다는 시각이 많았다. 해외 시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존 볼턴과 같이 근무했다는 미국의 고위급 인사는 볼턴이 억지의 일환으로 위협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폼페이오나 볼턴의 ‘주전선’이 북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아니라면 어딜까? 이란이다. 즉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파기가 주요 미션이다. 2015년 7월 미국을 비롯한 안보리 5개국 및 독일과 이란 간에 이란의 핵시설과 우라늄을 제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JCPOA가 체결됐다. 이를 반대한 공화당은 이란핵합의검토법(INARA)을 제정해 90일마다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JCPOA 준수 여부를 판단해 승인 내지 불승인 의사를 의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대(對)이란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 조치가 빠져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불승인 통보를 했다. 지난 1월에는 미비 사항을 보완해 의회가 협정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진행 사항이 전무하다. 다가오는 5월12일 미국은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내에는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 내 갈등 양상이 소상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지난 1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및 제임스 켈리 비서실장 등의 갈등이 북핵 문제보다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에 대한 견해차에서 주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은 바로 그 중심인물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4월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후보가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이 반대해온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약속한 데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트럼프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할 인물로 존 볼턴을 지목해 국무장관이나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려 했으나 워싱턴의 외교 안보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해 7월 트럼프가 백악관 내 별동대를 통해 이란 핵협정 파기 순서를 밟으려 했으나 기득권 세력과 손잡은 공화당의 반대로 다시 무산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불승인 결정으로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뒤 올해 2월 틸러슨 국무장관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해온 폼페이오와 존 볼턴을 입각시킨 것이다.

겉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최대 이슈였으나 권력 내부에서는 5월12일로 다가온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셈이다. 우리 대북 특사단이 백악관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4월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서두른 배경 역시 이 문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빨리 안정시키고 이란 핵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11월 중간선거의 의미는 크다. 중간선거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이란 핵과 북핵 문제의 명암이 갈릴 수 있다. 대전제는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북한과 이란 양쪽에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순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실로 절묘한 타이밍에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과의 외교 협상 성과를 중간선거에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Reuter2005년 7월26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 중국의 리자오싱 외교부장(가운데)이 다른 나라 대표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동안 북·미 정상회담을 북한 비핵화의 성공 여부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것은 볼턴이나 폼페이오의 강성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깨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여유를 갖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확고히 천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외에 특별히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포괄적 일괄타결 등 화려한 수사가 오가고 핵 폐기 기간을 최대한 짧게 명확히 함으로써 협상의 성과를 부각하려 할 것이다.

핵 폐기 기간은 북한 의지뿐 아니라 미국의 보상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더구나 보상의 키를 쥔 쪽은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다. 북핵의 실험 유예(모라토리엄)나 동결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는 대통령 권한이나 행정명령으로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핵 폐기와 관련한 본격 보상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쉽지 않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의회 반대로 물거품이 된 경험이 있어, 북한이 이번에는 합의 사항에 대해 의회 비준을 거친 조약 형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의회는 1994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요구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실제로는 동결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반적으로 동결은 확산 방지(수출 중단), 실험 중단(핵실험), 개발 중단(ICBM), 증량 중단(생산) 등 ‘4NOs’를 뜻한다. 미국 처지에서 핵심은 수출 중단과 더불어 수소폭탄을 이용한 탄두 소형화, 그리고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합의가 되면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진출하고 비핵화는 연락사무소를 기반으로 하겠다는 게 미국의 실제 복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북·미 양측은 뉴욕 채널을 통해 중간선거 이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심층적으로 논의해왔다(〈시사IN〉 제549호 ‘평양 하늘에 성조기 휘날릴까?’ 기사 참조).

중국이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보상 떠맡을 듯

주목할 점은 미국이 동결 대가로 북·미 관계를 어느 선까지 진척시킬 것인가와 비핵화는 어떻게 될 건지 하는 문제다. 비핵화부터 보면 미국이 결국 중국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즉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국제 감시단을 이끌고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비핵화를 관장하고 경제 보상을 떠맡는 방식이다. 대신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주한 미군의 성격이나 규모를 조정한다. 이런 구도가 바로 2016년 9월 발표된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 이후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사회 주류의 기본 해법이다.

비핵화의 짐을 중국에 떠맡기는 대신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대북 제재 완화, 북한의 국가 승인, 나아가 북·미 수교 등이다. 미국이 직접 경제 부담을 지지 않는다 해도 북한을 도울 방법은 있다. 베트남 예에서 보듯 미국 시장에 대한 최혜국 대우 보장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의 대북 융자 제공 등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다못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진출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산항을 미국 함선에 개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돈 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쟁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해야

문제는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얘기했듯 앞으로 몇 달이 우리에게는 역사적 기회다. 이 기회에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 남북관계 개선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이 모든 것의 대전제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정전체제와 분단체제 아래서 해결되지 못했던 남북문제 역시 이참에 해결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더 이상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1948년 제헌헌법에 따른 영토 조항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자격 시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70여 년을 흘러왔다. 앞으로 북핵은 온존한 채 북·미 관계만 진전되고, 주한 미군 역할이 바뀌는 등 변화가 일어나는데 분단체제에 따른 남북문제만 그대로 남으면 우리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때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문제부터 향후 남북 간 불가침 및 무력 불사용 문제, 서해 평화 문제 등 그동안 쟁점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안보 우려와 경제 재건과 관련해서도 우리 측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수교하면,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잇달아 수교할 것이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도 본격화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핵이 없을 때라면 몰라도 핵을 가진 북한과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 질서 재편에 나서고 있는 이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안을 던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국가 승인을 주도하고 남북관계를 국제적인 보장 아래 국가연합 단계로 안정시킴으로써 공존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중간 단계를 거치며 사회·경제 교류를 통한 실물 통합을 진전시키고, 점차 외교·국방·통화 통합 단계로 나아가는 장기적이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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