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적었다. 뒷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냥 ‘개인 사유’라고 쓰면 편했다. 하지만 사유를 정확하게 적는 일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4개월 전 서혜진씨(가명·32)는 연차휴가를 내면서 사유 난에 ‘반려동물 장례 관련’이라고 적어 결재를 올렸다. “반려동물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휴가를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난이’를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고된 업무를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텅 빈 집의 어둠이 부쩍 막막하던 때였다. 침대에 누워 유기 동물 사이트를 살펴보곤 했다. ‘믹스견, 추정 나이 5~6세, 털 엉겨붙음, 말랐음, 겁 많지만 사람 따름’ 따위 설명이 붙어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계속 눈에 밟혔다. 하루, 이틀, 사흘…. 언제 들어가도 그 녀석이 있었다. 나이가 많은 데다 검정개라 입양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기르다 떠나보낸 강아지 ‘깜이’가 생각났다. 대학 입학으로 서씨가 집을 떠나던 해, 깜이가 노환으로 죽었다.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업을 빠진 날도 있었다. 깜이를 생각할 때면 ‘나는 앞으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겠구나’ 싶었다. 흐르는 시간은 정말 약이었을까. 언젠가 닥쳐올 이별도 두 번째이니만큼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에 밟히던 녀석을 집에 들이기로 했다. 이름을 막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말이 떠올라 ‘못난이’로 지었다가 ‘난아’ ‘난이야’ 하고 부르게 되었다.

ⓒ21그램 제공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펫 포레스트’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따뜻하고 밝은 공간에서 기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안다고 해서 슬픔의 크기가 다른 건 아니었다. 16년을 살다 죽은 깜이와 달리 난이는 서씨와 5년밖에 함께 살지 못했다. 사인은 신부전증이었다. 서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안락사당했을 테니 5년이나 더 살았다고 할 수도 있을 터였다. 난이의 죽음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면서 지난번과 달리 여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넣거나(현행법상 동물 사체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매장은 불법이다) 깜이처럼 병원에 맡기지 않고, ‘제대로’ 장례 절차를 밟고 싶었다. 휴가가 불가피했다. 집에서 가까운 반려동물 장례식장도 서울 근교에 있었다.

서씨의 특별한 연차 사유는 작은 회사에서 며칠간 소소한 화젯거리였다. ‘뭘 그렇게까지’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동료 직원이 장례를 잘 치렀는지 다정하게 묻기도 했다. 그 역시 강아지를 기르는 이였다. 절차며 비용 따위를 알려줬다. 맞은편에 앉은 부장이 못마땅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하여간 요즘은 개가 상전이야.” 동조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의 모멸을 서씨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21그램 제공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전문 장례 지도사가 숨진 강아지를 수습하고 있다.
사별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과 달리,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은 과소평가되어 왔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이 경험하는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흔히 ‘동의받지 못한 슬픔’이라고 말한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은 섭식장애나 수면장애를 겪는 등 통상 3~6개월 동안 우울감을 경험한다. 이보다 길어질 경우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신경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강한 데다 막상 병원을 찾는다 해도 반려동물과 관련해 훈련받은 전문의가 극히 드물다. 우울을 드러내놓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슬픔을 침묵하게 하고, 지지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고립시킨다.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2013년 국내 한 대형 동물병원의 펫 로스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역시 극심한 자살 충동과 무력감,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했다.

반려동물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행된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반려동물의 죽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가까운 친구가 죽었을 때와 비슷하며, 자녀를 잃었을 때와 유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케 한다. 주변의 지지나 위로가 부족한 경우 슬픔을 느끼는 기간은 연장된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반려동물 사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온 서구 사회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관련 연구나 지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모효정, 〈반려동물의 상실로 인한 슬픔, 펫 로스 증후군의 증상과 대처〉, 2015).

국내 반려동물 돌봄 인구는 2000년 이후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0년 270만명 정도였던 반려동물 돌봄 인구는 현재 1000만명 시대를 맞이했다. 가족 의미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처음 쓰인 시점은 2003년. 이후 2005년 9월1일 한국동물복지협회와 세계동물보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반려동물 국제회의’가 국내에서 처음 열리면서 언론에서도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빈도가 늘었다. 반려동물은 장난이나 유희의 대상(애완)이 아닌, 여생을 함께 보내는 가족에 더 비중을 둔 표현이다. 특히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반려동물은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공식’ 용어가 되었다.

ⓒ시사IN 이명익전국의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 정보를 모아놓은 플랫폼 ‘21그램’의 권신구 대표.
농림축산식품부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에게 월평균 양육비를 10만~30만원 이상 쓰는 사람의 비중도 30% 가까이 된다. 양육 비용은 2030 세대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관련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관련 산업 규모는 2017년 3조원을 달성했고, 2020년 6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반려동물 평균수명이 15~17년 전후임을 고려하면 한국은 이제 막 반려동물 생로병사의 한 사이클을 지나왔다. 2000년을 전후해 키우기 시작한 반려동물이 죽거나, 죽음을 앞둔 시기인 셈이다. 추모는 죽은 이를 기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산 사람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는 과정이기도 하다.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도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거나, 동물병원과 계약된 업체에서 주사기나 사용한 솜 또는 다른 동물의 사체와 함께 섞어 의료폐기물로 소각하거나, 불법으로 땅에 매립하는 기존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 반려인이 늘기 시작했다. 3~4년 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처리’에 가까운 무허가 업체의 반려동물 화장 과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장례 업체를 깐깐하게 고르는 반려인도 늘었다. 2008년 동물 전용 장례식장이나 화장장·납골 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는 동물장묘법이 시행되고, 2018년 4월 현재 전국에 동물장묘업 정식 허가업체 스물다섯 곳이 운영 중이다.

기업의 반려동물 정책이 업무 효율 높여

지난 1월 서비스를 시작한 반려동물 장례 관련 스타트업 ‘21그램’은 전국의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 정보를 한곳에 모아놓은 플랫폼이다. 24시간 전화 및 온라인 상담을 통해 상담자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장례식장을 소개하고 장례 절차를 안내한다. 건축가 출신인 권신구 대표는 지난 2월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내 새로 생긴 애도실의 디자인과 시공을 맡기도 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장례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직원이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이용할 경우 드는 비용을 회사에서 상품권 형태로 제공해 일부 부담하는 식이다.

“화장하는 데 드는 시간이 평균 3시간이고, 장례식장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보통 하루가 걸립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휴가를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국내 기업 중에는 관련 복지가 전무하다시피 하죠. 기업 장례 서비스는 그런 차원에서 제안을 드리는 거예요. 도입하는 회사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회사가 직원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반려동물 죽음으로 인한 주변의 인정과 위로가 필요한 직원을 안정적으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어린아이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가정의 경우 장례 과정 자체가 생명에 대한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해외 글로벌 기업은 임직원 복지 차원으로 반려동물 관련 사내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이뤄지는 반려동물 관련 정책은 평상시 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반려동물 사후에는 빠른 일상 복귀를 도와 업무 손실을 줄이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는 반려동물을 위한 간식은 물론 반려동물 눈높이의 식수대를 준비해놓았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출근하겠다고 등록한 직원은 2000명이 넘었다.

단순히 동반 출근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국에 있는 양조회사 ‘브루도그(Brew Dog)’는 직원이 반려동물을 입양할 경우 일주일간 유급 입양 휴가를 준다. 일종의 출산휴가인 셈이다. 일본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유레카’는 반려동물이 병원에 가야 할 경우를 고려해 연 3회 반차를 허용한다. 일본 소프트웨어 업체 ‘파레이’는 고양이 식비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채용 공고에 내면서 직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유기묘 입양 시에는 보너스 5000엔을 지급한다.

2017년 10월 이탈리아 법원은 반려동물 병간호를 유급휴가 사유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로마 사피엔차 대학의 한 교직원이 반려견의 수술과 병간호를 이유로 이틀간 유급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소송을 내어 승소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반려동물도 가족임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정책을 적극 도입한 회사가 있다. 임직원 360명 규모의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코리아는 지난해 6월, 월 5만원의 반려동물 수당과 장례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우미령 대표는 “국가의 복지제도도 그렇지만 대개 사내 복지제도라는 게 가족 중심, 특히 기혼자 중심으로 설계되기 마련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가 없는 직원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혜택이 어떤 게 있을까 궁리 끝에 실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월 5만원의 수당이 적어 보일 수도, 단 하루의 장례 휴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자체적으로는 반려동물 유무와 관계없이 직원들의 소속감과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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