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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처럼 말아먹은 한식 세계화

이명박 정부는 떡볶이를 한식 주력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직접 챙겼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식 세계화 사업에 투입된 나랏돈은 1000억원 가까이 된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8년 04월 17일 화요일 제5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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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연구소’라고 있었다. 2009년 3월 개소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로 개편) 차관과 유명 요리가 등 수백명이 운집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만들고 정부가 지원하는 민관 합동연구소였다. 농식품부는 ‘떡볶이 산업 육성 대책’까지 수립하며 나랏돈 14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차관은 개소식에서 “떡볶이가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외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리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소 출범과 더불어 온갖 매체에서 떡볶이를 띄웠다. 떡볶이가 초밥처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웰빙 음식 떡볶이’라는 불가해한 말까지 등장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2000여 명이 모인 떡볶이 무료 시식 행사는 모든 언론의 주요 뉴스로 도배됐다. 그럴 때마다 떡볶이 연구소가 나름대로 이론의 틀을 제공했다.

이제 이 연구소는 없다. 한 떡볶이 프랜차이즈 기업이 운영하는 이름만 같은 홈페이지가 있을 뿐이다. 연구소를 운영했던 한국쌀가공식품협회 관계자조차 정확한 시점을 모를 정도로 유야무야 문을 닫았다. 알고 보니 연구 기능은 생긴 지 고작 1년여 만에 중단됐다. 야심찬 출범과 달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다른 정부기관도 경쟁적으로 떡볶이 기획과제를 제시하면서 연구소에 돌아갈 몫이 줄어든 탓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떡볶이를 ‘국책사업’으로 끌어올린 건 이명박 정부였다. 비빔밥·전통주와 함께 떡볶이를 한식 주력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한식 세계화 사업이었다. 대통령 부인이던 김윤옥씨가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사업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와 비교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식 세계화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시책이었다.

ⓒYouTube 갈무리
2012년 11월6일 MBC <무한도전>은 미국 뉴욕에 ‘비빔밥’ 광고를 냈다. 박근혜 게이트로 구속된 광고 감독 차은택씨가 이 광고의 공동제작자였다.
한식 세계화는 국내·국외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 중추는 한식세계화추진단이 해체되고 만들어진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맡았다. 제1대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국회의원(바른미래당)이었다. 국내에서는 특급호텔 한식당 확대, 스타 요리사 양성 등을 꾀했고 해외에서는 현지 한식당 가이드북 발간 등 한식 브랜드 홍보 이벤트에 주력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하여금 뉴욕 시내 전광판에 비빔밥 광고를 내도록 한 게 대표적이었다. 당시 이 광고를 공동제작한 사람이, 박근혜 게이트로 구속된 광고 감독 차은택씨였다. 한식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겠다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한식 프로젝트의 결과는 떡볶이 연구소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한 채 요란한 이벤트만 되풀이했다.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부인이 직접 챙기는 국책 사업에 대놓고 시비를 건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한식 세계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3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한식재단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세금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1인당 474만원짜리 다과 체험 행사를 여는가 하면 270만원짜리 오찬, 95만원짜리 만찬 등 초호화판 잔치를 열었다. 유럽 각지에서 열린 ‘한식 가이드북 출판기념회’는 20명 정도 모이는 규모였음에도 행사 비용이 9000만원에 달했다. 미국 뉴욕에 한식당을 개설하겠다며 50억원 예산을 책정했다가 단 1개 업체도 참여하지 않아 무산되자 다시 40억원을 들여 천일염의 생리 활성 규명, 청국장 스포츠 기능성 연구 따위 용역사업에 사용했다. 배우 브룩 실즈가 한인마트에서 고추장을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지출된 비용은 3억5000만원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제는 근절되지 않았다. 한식재단은 음식을 다룬다는 특성상 이런저런 외부 인사가 숟가락을 얹기 좋은 구조에 놓여 있었다. 인사 전횡이 벌어지고, 내부자와 연관 있는 단체가 사업을 받아 챙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급기야 박근혜 게이트 때는 한식재단이 추진했던 프랑스 요리학교 한식 정규과정 개설 사업을 미르재단이 가로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레스토랑 정보서인 <미쉐린가이드> 서울 편 발간에 광고비조로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20억원을 내기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시사IN> 제531호 ‘20억 주고 얻은 미식의 별’ 기사 참조).

ⓒ청와대 제공
2009년 5월 한식세계화추진단 발족회에 참여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왼쪽에서 세 번째).
이명박 정부 실세들 ‘떡고물’ 챙겼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 세계화 사업에 투입된 나랏돈은 어림잡아도 1000억원 가까이 된다. 이 가운데 김윤옥씨가 직접 연관된 대목은 2010년 발간된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 정도다. 대통령 부인을 담당하는 청와대 2부속실이 추진한 이 책 발간 사업에는 외주용역비 5억원이 쓰였다. 본래 한식 문화 소개에 방점을 찍었다. 청와대 강요로 대통령 부인의 미담 일색으로 변질되면서 개인의 요리책 제작에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문제는 김윤옥씨가 연관된 한식 세계화 관련 비리가 빙산의 일각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된다는 점이다. 올 들어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김윤옥씨 명품 구입에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김윤옥씨와 한식 세계화 관련 의혹을 수사해달라는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왔다. 최근 사정기관발로 한식재단 비리 의혹과 관련한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김윤옥씨와 관련된 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현재 한식진흥원 내부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사업을 진행한 직원이 몇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한식 세계화 사업의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윤옥씨는 간판이었을 뿐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한식재단을 통해 이런저런 ‘떡고물’을 챙겼다는 이야기다. 확인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이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역대 이사장 등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해 말 한식재단은 한식진흥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4월3일 사찰음식 전문가로 알려진 선재 스님이 한식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왜 특정종교 소속 인물이 한식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장으로 오게 됐는지 말이 무성했지만, 짐작이 가는 점은 있다. 이런저런 외풍이 불 때 조계종의 힘을 빌려 한식진흥원을 보호해보자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출범 이후 끊임없이 권력에 의해 흔들리며 갈피를 못 잡았던 어느 기관의 자구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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