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오월의봄, 2018)는 ‘뒤늦게 온 고전’이다.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니 무려 43년 만에 번역본이 나온 셈이다. 제목만 갖고는 무슨 책인지 알기 어렵지만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라는 부제는 이 책이 어떤 분야의 고전인지 단박에 알려준다.

살인·폭행·강도·절도·사기 등 세상에는 온갖 범죄가 있지만, 특정한 성이 특정한 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는 따로 없다. 강간만이 예외다. 동성 성폭행이 엄연히 있기는 하지만, 대개 강간은 남성이 여성을 향해 저지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책의 서두에서 이 특별한 범죄가 인류 역사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죄에 비해 턱없이 연구가 부족하고, 참조할 수 있는 문헌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도서관 색인에서 강간이라고 분류된 항목을 찾아보는 식으로 쉽게 연구했다고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그 시절 도서관 색인에는 강간이라는 주제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강간을 규명해보려는 노력이 기이하다고 할 만큼 부재했기에, 그 빈자리를 ‘강간 신화’가 차지했다. 남성은 강간을 할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가졌고 여성은 강간에 취약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 ‘수컷이 최소한의 비용을 투자해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고 할 때 강간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전략이다’, ‘여자가 저항하는 한 강간은 절대 있을 수 없고 강간은 여자가 조심하면 되는 문제다’, ‘여자는 강간당하기를 원하며 폭행을 당하는 중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등. 남성을 강간이라는 범죄로부터 사법적·도덕적으로 옹호하고 면제해주는 허다한 신화는 오래된 구비 전승이나 종교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가까이 접하는 각종 대중문화와 정신분석학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남성은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여성을 강간했다. 선사시대의 법적 원리는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었는데, 여성은 징벌적 보복을 할 힘이 없었다. ‘일부일처제나 모성애, 사랑에 이끌리는 본능이 아니라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다는 공포야말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만든 최초의 원인이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대가로 한 짝짓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여성이 남성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은 남성의 권력 수단이자 재산이 되었다. 강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유·무형의 남성 권력이며, 남성 가부장 사회가 완수되면서 강간이 심각한 범죄가 된 것은 그것이 남성이 남성에게 저지르는 재산상의 범죄였기 때문이다.

강간이 여성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려는 남성 권력의 폭력적인 관철이라는 것이 여성에게는 뻔히 보이지만, 남성 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프로이트는 노출증이나 가학·피학 성욕 같은 일탈 성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논문을 남겼지만 강간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고 이해하기를 내세우는 프로이트 학파는 강간범을 본질상 유아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충동의 희생자로 보는 동시에, 어머니와 성교하려는 자연적 충동이 좌절된 결과로 정의한다. 이럴 때 강간범은 질병에 시달리는 희생자로서 그가 저지른 행위에 희생된 사람보다 더 고통받은 사람이 된다.

ⓒ이지영 그림
왜 강간 사건에만 허위 신고 의심치가 높나

집단 강간에 대한 프로이트 학파의 해석도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다. 이들에게 집단 강간이란 또래 남성들 사이에 고조된 동성애에 대한 긴장을 해소하려는 해결책이다. 즉 여성 신체를 강간하는 것으로 억압된 동성애 욕구를 은폐하거나 대리 충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 강간의 진실은 그것을 통해 남성성을 발견하거나 증명하고 남성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군인들이 떼 지어 벌이는 전시 강간 역시 남성 연대를 과시하는 것이며, 전시 강간의 유래는 선사시대의 약탈혼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에는 강간 사건을 감별하는 꽤 까다로운 규정과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명시되어 있다. 바로 비명을 질러서 이웃의 도움을 요청했는지 여부다. 이 규정은 이 책이 집필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좀체 바뀌지 않는 강간 신화의 일부가 되었다. “만약 그녀가 악랄한 평판의 소유자이고 본인 외에 진술을 입증해줄 다른 사람이 없을 경우, 고소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상당 기간 상처를 숨겨왔을 경우,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구하러 올 수 있는 곳인데도 격렬하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경우 등 위에 열거한 상황이나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면 그녀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거나 꾸며낸 것”이 된다.

오인과 허위 신고는 범죄 종류를 가리지 않지만, 유독 강간 사건에서만 허위 신고에 대한 의심치가 더 높다. 이 문제의 원인은 성행위에서 정해진 목표를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남자의 타고난 역할이고, 여자의 타고난 역할은 저항하다가 굴복하는 것이라는 문화적 전제다. 이 전제는 모든 강간을 정상적인 성관계로 둔갑시킨다. 또 여느 범죄와 달리 유독 강간 사건에서만 피해자의 이력과 정조 있는 성생활이 피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살해’까지 각오한 저항이 피해자의 증거 구성 요건이 된다. 이렇게 해서 강간 범죄는 실제 일어난 건수보다 신고율이 낮은 역설이 발생하게 되며,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하고 나서도 고소를 자진 취하하는 억울한 일이 생겨난다. 지난 3월26일, 재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 20만명을 돌파한 일명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 그랬다.

단역배우를 관리하는 기획사의 반장을 포함한 직원 열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택했던 소희(가명)양 사건은 상식에 어긋한 수사 방식과 2차 가해를 했던 수사관들의 의식부터 추궁해야 한다. 수전 브라운밀러의 말을 들어보자. ‘강간에 관한 한 남성 경찰의 사고방식은 여타의 남성 문화에서 통용되는 고정관념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태의 경찰관에게 피해 사실 증명을 맡겨야 하는 것이 강간 피해자의 비극이다.’ 조디 래피얼도 〈강간은 강간이다〉(글항아리, 2016)에서 같은 말을 한다. ‘강간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단번에 확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선의 방법은 편견 없이 사건을 성심성의껏 조사하는 경찰관과 형사들의 능력에 기대는 것뿐이다. 만약 경찰관이 강간 신고의 50%가 허위라고 믿는다면 당연히 그 믿음은 수사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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