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가주석직을 2회 이상 연임하지 못하게 한 기존 헌법 조항(제79조 제3항)을 삭제했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과 동일하게 국가주석직을 종신 연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임기가 끝나는 2023년 초반 이후에도 합법적으로 중국 국가주석을 연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1인 독재 시대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SNS상에서 ‘이민’이 검색어 1위로 떠오를 만큼 불안감이 표출됐다. 시 주석의 정치적 의지와 성격, 그간 정치 행보를 보면 개헌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과연 개헌의 배경과 시진핑 주석의 복안은 무엇이며, 향후 전망은 어찌될까?

먼저 수정된 헌법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자. 서언, 총강, 공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 등 총 4개 장 138개 조항으로 구성된 기존 헌법 가운데 이번에 수정되거나 새로 만들어진 게 21개 조항이나 되어 총 143개로 늘어났다.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대목은 헌법 정신이나 철학적·사상적 토대를 제시하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 해당되는 서언이다. 서언에서는 국가의 지도사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삼개대표론’, ‘과학발전관 사상’에 이어 시 주석의 이름이 들어간 ‘시진핑 신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법제(法制)’를 ‘사회주의 법치(法治)’로 바꿨으며, 중국의 현상을 ‘오랜 기간의 혁명과 건설의 과정에 있다’고 한 조항에다 ‘개혁’을 첨가했다.

ⓒXinhua3월17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 부주석으로 선출된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왼쪽).

본문에서는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라는 부분에 ‘중국공산당의 지도는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를 집어넣었다. 즉 조문 중에 ‘공산당의 지도’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들어갔다(제1조 제2항). 또 국가감찰위원회를 신설하고 그 권한과 역할을 국무원 수준으로 올렸다(제3조 제3항). 제24조 제2항에서는 ‘국가는 사회주의의 핵심적 가치관을 제창하고’라는 문구를 삽입해 ‘사회주의의 핵심적 가치’와 애국 의식을 강조했다. 국가공무원 취임 시에 헌법 선서를 공개로 행할 것도 규정했다(제27조 제3항 신설).

장쩌민 무시하고 덩샤오핑도 안중에 없고

이번 개헌은 시진핑 주석의 야심, 그리고 인사와 연동되어 있다. 향후 공산당의 통치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첫째, ‘시진핑 신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헌법에 명기함에 따라 시진핑 주석의 위상이 마오쩌둥의 권위에 이를 만큼 공고화된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당내 집단지도 체제 대신 1인 독재 체제로 갈 수 있도록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말해준다. 실제 그는 장쩌민을 완전히 무시하고, 심지어 덩샤오핑마저도 안중에 두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예컨대 마오쩌둥 집권 동안 개인 우상 숭배와 1인 독재가 만들어낸 폐해를 고치고자 덩샤오핑이 국가주석직의 연임을 제한한 것을 무력화해버렸다. 이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하에서 최고 지도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중앙상임위원회 내 계파들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분열과 파국을 관리해온 당-국가 체제의 독특한 장치를 허물어버린 셈이다.

둘째, 시진핑 주석은 개헌을 통해 막후의 원로 정치를 차단했다. 막후에서 원로 정치를 해온 장쩌민과 쩡칭훙을 제압하고 당내 반(反)개혁 원로 세력과 단절한 것이다. 당 최고 지도자에서 물러나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지금까지 공산당 지도부의 관행이었다. 국가주석직과 당 총서기직을 후계자에게 넘기면서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만은 물려주지 않다가 나중에 넘기기도 했다. 실제로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후임자에게 국가주석직과 공산당 총서기직을 넘기면서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한꺼번에 같이 물려주지 않았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해 후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진타오만이 세 권력을 한꺼번에 시진핑 주석에게 물려주고 깨끗하게 정계에서 은퇴했다. 원로 대부분은 자파의 인물을 당 최고 의결 조직인 중앙정치국 상임위원회에 밀어넣어 대리청정 방식으로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특히 장쩌민은 후진타오 재임 시 막후에서 장쩌민을 최측근 보좌한 쩡칭훙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쩌민은 시진핑 집권 1기 때까지도 막후에서 시 주석을 견제해왔다.

ⓒEPA2017년 10월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장쩌민(오른쪽),
후진타오(왼쪽) 전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앉아 있다.

셋째, 시진핑 주석 개인 권력의 강화를 통해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시 주석은 당·정·군에 시진핑 사람들을 뜻하는 ‘시자쥔(習家軍)’을 대거 중용해 포진시켰다. 물론 사전 정지작업을 거친 뒤였다. 그가 지난 수년간에 걸쳐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장쩌민이 심어놓은 심복을 하나하나씩 쳐내는 권력투쟁에 시동을 걸었다. 장쩌민의 수족들인 보시라이, 링지화, 군부의 쉬차이후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혁명 원로 자제 그룹인 태자당과 공산주의청년단, 장쩌민 전 주석 중심의 상하이 지역 파벌 등 3개 파벌이 분점하던 집권 1기와는 달리 자신의 최측근 인사 그룹인 시자쥔이 요직을 장악해 독주 체제로 나타났다.

시자쥔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당에는 7명의 중앙상임위원 중 리잔수, 왕양, 한정 등 최소한 4명 이상이 확실한 시진핑파 인물이다. 당 서열 2위의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리는 리잔수 전 당 중앙판공청 주임에게 맡겼고,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에는 왕양 전 부총리를 앉혔다. 정부 계통에도 ‘7상8하’(67세 유임, 68세 은퇴)의 연령 제한 규정 때문에 물러났다가 국가부주석으로 재등장한 왕치산을 비롯해 외교·경제 등 각 분야에서 시진핑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무수히 많다. 각 지방(성시) 정부의 수장도 시자쥔 인물로 채워진 게 적지 않다. 허난성 당서기 왕궈성, 칭하이성 당서기 왕젠쥔, 쓰촨성 당서기 펑칭화, 광시자치구 당서기 루신서, 장시성 서기 류치, 헤이룽장 성장 왕원타오 등이 시진핑 주석의 사람들이다. 신장위구르와 시짱(티베트)의 주권 및 영토 문제, 반체제 활동, 사이버 공격 등 중국 국가 안전에 위협적인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정보 수집과 대응을 위해 조직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격인 국가안전위원회 지도부도 시진핑 주석을 정점으로 새로 짜였다. 신설된 국가감찰위원회도 왕치산 부주석 측근으로 알려진 양샤오두 감찰부장이 초대 주임으로 기용됐다.

공산당 일당 독재의 최대 버팀목인 군부도 시진핑 주석 사람으로 대폭 물갈이되었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부주석에 유임된 쉬치량과 장유샤 전 장비발전부장, 리쭤청 연합참모부 참모장, 먀오화 정치공작부 주임, 장성민 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채워졌다. 로켓군 사령관에서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으로 기용된 웨이펑허도 장쩌민 수족을 대신해서 새로 기용된 군부의 복심이다.

넷째, 사정·감찰·감시·사찰·정보 수집 기능을 맡은 국가감찰위원회를 신설하고 그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기구를 조직했다. 이는 애국주의에 호소하고 사회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제창한 것, 국가공무원 취임 시 헌법을 선서하게 하는 규정들과 맞닿아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규정한 공산당의 지배력 확대와 통치의 심화를 예고한 것이다.

‘시진핑-왕치산’ 체제의 집권 2기

ⓒXinhua2017년 8월30일 중국군 건군 90주년 기념식에서 군복을 입고 사열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리커창’ 체제에서 ‘시진핑-왕치산’ 체제로 집권 2기가 시작된 중국 정국을 전망해보면, 시진핑이 전면에서 당·정·군·외교 분야를 진두지휘할 것이다. 그를 보좌할 주요 이론적 책사로는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당 서열 4위에 발탁된 왕후닝이 반부패 전쟁, 일대일로 정책, 이른바 ‘대국 외교’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또 국방과 군사를 제외한 다양한 분야의 정책 실행과 추진 면에서는 총리직에 유임됐지만 권한이 대폭 축소된 리커창 대신 왕치산이 시진핑 주석을 보좌할 것이다. 

특히 신설된 국가감찰위원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감찰위원회는 국유기업 간부뿐 아니라 광범위한 인민을 대상으로 사정·감찰·감시·사찰·정보 수집에 나설 것이다. 결국 공산당이 펼칠 통치 기조는 고압적·권위적이며, 인민의 행복추구권, 알권리,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제한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 민주, 인권, 생태계 환경 등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변화는 내우외환이라는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강력한 영도가 아니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는 시진핑 주석과 그 일파의 현실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개인 권력 집중과 구심력 강화는 중국 역사의 거시적 흐름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추이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중화제국으로 군림했지만 근대에 들어와 서양에 무릎을 꿇었다. 그 역사를 뼈저리게 각인한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이제 다시 과거 ‘위대한’ 중국의 힘에 의한 질서, 즉 ‘팍스 시니카(Pax Sinica)’ 체제의 강력한 힘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 같은 ‘중국몽’은 옛날 중화제국의 영광과 위상을 다시 세우려는 의도다. 시진핑 주석의 야심은 황제가 되고자 하는 꿈으로도 비칠 수 있다. 공산주의 이념을 견지하면서 공자를 앞세워 중국적 전통 가치를 전 세계에 퍼뜨리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가치를 확산시켜온 팍스 아메리카나와 부딪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장구한 중국의 역사에는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일치일란(一治一亂), 중앙집권과 분열, 구심력과 원심력의 순환 반복이 일어났다. 지금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일치(一治) 시대로 중앙집권과 구심력이 최대치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다. 그것이 정점에 서면 다시 일란(一亂), 분열, 그리고 원심력이 작용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진핑 체제는 당분간 순항할 듯해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밑으로부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공산당 일당 독재가 휘청거릴 정도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중국의 변화와 동향 그리고 미래를 예측해야 할 이유다.

 

 

기자명 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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