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2009)는 참 이상했다. 분명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는데 눈과 귀만 바쁜 게 아니었다. 피부로 느끼고 혀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게 하는 영화였다.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 집 정원에 쏟아져 내린 햇살에 내 살갗이 그을렸고, 엠마(틸다 스윈턴) 입에서 새어 나온 거친 입김이 내 볼에 닿았으며, 그녀의 혀를 빌려 그 남자의 새우 요리를 나도 맛보았다. 이 영화에 별 다섯 개, 10점 만점을 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한 줄 평은 이랬다. “잠들어 있던 세포들의 일제 봉기!”

낯선 감독 이름을 새우 대신 입안에 넣고 오랫동안 오물거렸다. 절대 까먹지 않을 요량으로 꿀꺽, 긴 이탈리아어 이름을 씹어 삼켰다. 그가 만든 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던 날, 감독 이름을 게워내 노트 위에 뱉었다. 루카 구아다니노, 루카 구아다니노… 나도 모르게 적고 있는 이름마다 괜히 밑줄을 긋고 별표를 달았다. 다시 한번 ‘잠들어 있던 세포들의 일제 봉기’로 나를 압도해버린 영화의 감독에게 경의를 표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 작은 도시 크레마 인근 별장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스물네 살 미국인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별장 2층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방에 짐을 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다.

언제부터였을까. 고고학자 펄먼 교수(마이클 스털버그)가 앞으로 6주 동안 자신의 연구를 도와줄 올리버를 아들 엘리오에게 처음 소개할 때 이미? 긴 여정에 지쳐 시체처럼 잠든 올리버 주변을 엘리오가 괜히 기웃거릴 때 혹시? 잠에서 깨어난 올리버가 이탈리아에서 먹는 첫 끼니를 맛있게 해치우는 모습을 맞은편의 엘리오가 힐끔힐끔 훔쳐볼 때 아마? 하지만 여기까지는 내 추론일 뿐. 엘리오가 속마음을 언어로 처음 드러낸 건 단둘이 거실에서 시간을 보낸 뒤였다. 올리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방으로 돌아와 노트에 남긴 낙서 한 줄. “그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그랬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걸 알게 된 그때부터 열일곱 살 엘리오의 첫사랑이 깊어간다. 자전거를 타느라 빨라진 심장박동인 줄 알았는데 자전거를 멈춘 뒤에도 숨이 차다. 살구는 너무 달고 자정은 너무 멀고 6주는 너무 짧다. 그렇게 올리버와 엘리오의 찬란했던 그해 여름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트 신. 관객들로 하여금 오직 엘리오의 얼굴만을 마주보게 만드는 엔딩.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우리 모두 살면서 한번은 저 표정이었다는 걸. 지금, 엘리오의 저 얼굴이 바로 세상 모든 첫사랑의 얼굴이라는 것을.

‘한때의 엘리오’와 이야기하고 싶어라

우리 각자의 ‘그해 여름’을 느끼게 하는 영화. 보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꾸 얼굴만 발갛게 달아오르는 영화. “나는 독자들에게 김사과의 신작을 소개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천국에서〉를 읽은 독자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시사IN〉 제318호, 금정연 ‘제니와 케이의 서울 서울 서울’ 기사 참조).” 이 말을 빌려 결국 이렇게 실토하게 만드는 영화. “나는 독자들에게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을 소개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본 ‘한때의 엘리오’들과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