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아래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해방되니까 들어온 거예요. 죽지 안 허고. 그 먼 데 가서, 죽지 안 허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미군정이 있는데 친일 부역이 뭔 문제라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가파도의 400여 명 인구 중에 100명 넘게 배를 타고 나와 1947년 3·1운동 기념행사에 참석했더랍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용철이가, 죽었다. 이거, 큰일 났다. 우리 아들딸들 다 죽이겄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그리고 그 후에 서북청년이란 단체가 들어왔습니다. 묵시록의 붉은 용을 잡으러.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학원생들도 ‘신탁관리 절대반대’ 이런 구호하에 시위도 했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이 필요한 게 아니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쪽도 무섭고, 저쪽도 무섭습니다. 강씨 언니는 얼굴이 고운 분이었지요.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위도 무섭고, 아래도 무섭습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비는데,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검정개도 무섭고, 노랑개도 무섭습니다. 당시 큰형님이라고 해봤자 열다섯 살이나 됐을까.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난 아무것도 안 했수다. 시부모 모시고 애기만 키웠주 아무것도 안 했수다. 제주 여성은 빨갱이를 재생산합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불순분자를 발근색원 합시다. 옆집 사람이 나를 명부에 올렸죠. 협조하지 않는 언론은 통제하세요.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린 목숨 하나 의지해서 살자고, 산에 올라가도 못하고 내려오도 못하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제주도민 90%가 좌익 색채를 띠고 있소.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서북 계열의 사설 청년단체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메이데이, 메이데이. 우리 미군은 원인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오직 진압뿐.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앴는데.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군은 드디어 양과 같이 선량한 백성을 적의 독아로부터 구원하였습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죽지 안 허고, 그 먼 데 가서 죽지 안 허고.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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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4·3 영령들
잠들지 못하는 4·3 영령들
변진경 기자
국가에서 공식 인정한 희생자 수만 1만4232명이다. 가족이 몰살되고 마을이 사라졌다. 섬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생과 사가 갈린 채 7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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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년, 정의를 묻는다
4·3 70년, 정의를 묻는다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제주4·3연구소 이사장)
1948년 4·3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4·3을 헤쳐 나온 분들에게는 지금도 잔혹한 그날이 어제 같기만 할 것이다. 그때 경험담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입은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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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낳은 ‘난민’, 일본 인권운동가 되다
4·3이 낳은 ‘난민’, 일본 인권운동가 되다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방정옥은 1937년 제주도 김녕에서 태어났다. 방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47년 3월1일 동네 주민들이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걸 또렷이 기억한다. 아버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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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운명을 바꾼 세 명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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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SBS CNBC PD)
오늘은 네게 참 하기 힘든 얘기를 들려줘야겠구나. 올해는 2018년. 1948년 4월3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 반대를 외치는 제주도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킨 4·3 70주년이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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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픔 보듬는 다크 투어리즘 정착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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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기자
〈시사IN〉은 4·3 70주년을 맞아 3월24~25일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를 진행했다. 4·3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쓴,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와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