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공식 인정한 희생자 수만 1만4232명이다. 가족이 몰살되고 마을이 사라졌다. 섬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생과 사가 갈린 채 7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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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송기영 (시인)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아래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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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년, 정의를 묻는다
4·3 70년, 정의를 묻는다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제주4·3연구소 이사장)
1948년 4·3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4·3을 헤쳐 나온 분들에게는 지금도 잔혹한 그날이 어제 같기만 할 것이다. 그때 경험담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입은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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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총탄의 상처 지금도 욱신거려”
“4·3 총탄의 상처 지금도 욱신거려”
정희상 기자
4·3 한복판에서 가장 잔인했던 대학살이 1949년 1월17일(음력 12월19일) 일어났다. 세화리에 주둔한 2연대 3대대 병력이 대대본부가 위치한 함덕으로 가다 무장대 습격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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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당한 아이 그림책으로 살리다
학살당한 아이 그림책으로 살리다
장일호 기자
제주 전래동요 ‘꼬리따기’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것은 까마귀/ 까마귀는 검다/ 검은 것은 바위/ 바위는 높다.’ 한국 그림책 작가 1세대로 꼽히는 권윤덕 작가(58)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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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베레모의 끝내지 못한 싸움 [프리스타일]
빨간 베레모의 끝내지 못한 싸움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올해 똑같은 나이테를 가진 비극의 상처가 육지에도 있다. 제주에서 북촌리 주민 집단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1949년 경북 문경 산북면 석달동에서도 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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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5주년, “살암시난 살앗주”
제주 4·3 75주년, “살암시난 살앗주”
제주 / 글 임지영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4·3평화공원까지 차로 30여 분 걸린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 곳곳에 현수막이 보였다. ‘제주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