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우리가 캐내고 싶은 것은 어떤 삶의 흔적도, 추억도 추모도 아니다. 정말 캐묻고 싶은 것은 참혹한 사라짐이다. 이유도 묻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만 하는 슬픔이다. 제주 서귀포시 돈내코 유원지 인근에 쌓인 망자를 위로하던 동자석과 비석들.
ⓒ김흥구‘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리던 제주국제공항은 4·3 당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이뤄진 곳이다. 양민 약 500~8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총살되어 비행장과 그 주변에 암매장되었다. 제주국제공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제주도의 밤.
ⓒ김흥구희생자 1만4232명 중 1만4117명의 위패가 모셔진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유족들이 애도하고 있다.

 

 

 

국가에서 공식 인정한 희생자 수만 1만4232명이다. 가족이 몰살되고 마을이 사라졌다. 섬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생과 사가 갈린 채 70년이 흘렀다.

 

ⓒ김흥구북촌리 학살 사건으로 시아버지와 남편, 남편의 형제를 잃은 홍순씨(1919년생·가운데)가
어린 증손자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김흥구신상보씨(1946년생)는 동복리 학살 사건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었다.

 

ⓒ김흥구동복리 학살 사건으로 일가족 4명을 잃고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정병하씨(1921년생)가 자신이 이은 긴 염주를 세고 있다.
200여 호의 작은 마을이었던 동복리는 1949년 1월17일 군경 토벌대에 의해 90여 명이 무차별 총살당했다.

 

ⓒ김흥구종달리 ‘4·3성’에서 대창에 찔려 창상을 입고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김석봉씨(1923년생)가
그날의 악몽을 증언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토벌대는 강경 진압작전의 일환으로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3성’을 축조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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