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일지 모른다. 출판사가 작아서, 1인 출판이라서 국내서를 내기 힘들다는 말은. 국내서를 시리즈로 내는 작은 출판사도 있다고 따지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우리 출판사는 책 기획을 하고도 국내 저자를 찾지 못해 외서로 낸 경우가 많다. 다행히 책 기획에 맞는 전문가가 국내에 있고, 고맙게도 그 전문가가 구멍가게 출판사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아주면 비로소 국내서가 진행된다. 국내 저자와 함께 책을 만든다는 건 굉장한 즐거움인데, 특히 이 책은 국내에서도 저자를 못 찾고, 외서도 없어 오래 묵힌 기획이라서 더 신이 났다.

내용은 전혀 신나지 않는다. 내 소비가 전 세계 동물들의 고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니 불편해도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가끔 일상의 사치로 마시던 루왁 커피가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를 학대한 대가로 얻어진다고, 중년이 되고 몸이 팍삭 늙는 게 느껴져서 고작 하나 챙겨먹는 오메가3가 하얀 털이 보슬보슬한 새끼 물범을 잔인하게 죽여서 얻은 거라고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별 문제없이 굴러가던 일상을 누군가에게 지적당한 느낌. 가족과 큰맘 먹고 외식한 비싼 중식 코스의 샥스핀 요리 때문에 상어가 지느러미가 잘린 채 바다에 버려져 죽는다며 식탁 윤리까지 들이미니 아, 정말 곤란하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이형주 지음, 책공장더불어 펴냄
그럼에도 이 불편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소비를 하려는 독자가 있다면 돕고 싶어서다. 그런 도움 필요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작은 불편을 감수하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예쁘고 맛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조금만 줄이면 한 생명이 산다.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살리는 선택이라니 얼마나 뿌듯한가.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좋은 영화란 영화가 끝나고 나가면서 시작되는 영화라고 했다. 책도 그렇다. 이 책을 덮고 일어나면서 시작된 변화로 한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기 바란다.

기자명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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