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라는 것은 원래 그 당시 너무 당연한 일은 적지 않는다.” 중국사 연구의 거장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의 한마디다. 이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시대의 당연한 일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없고, 무리하게 알려고 하면 거기에서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기게 된다(〈구품관인법의 연구〉 임대희 외 옮김).”
음식에서 좀 더 깊은 의미를 밝힐 단서가 될 기록은 태부족이다. 가령 기억만으로 짜장면 역사를 재구성하고 말면 끝장에 가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그만인 말잔치만 남는다. 어업과 그 음식 문화사에서 동네 천렵의 추억을 뛰어넘자면 몇 세기를 개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옛 그림이 아니라 ‘옛 문헌’으로 보는 우리 음식이다.
예컨대 판소리 〈수궁가(水宮歌)〉의 대본 또는 소설 〈토끼전〉은 뜻밖의 음식 문헌이다. 용왕은 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신하들을 저주한다. “밥반찬, 술안주나 될 놈들!” 수궁의 신하란 결국 수산자원이다. 판본에 따라 스무 종에서 예순 종이 넘는 물속 생물이 나열되는데, 이는 한 시대의 어물전 풍경이라 하겠다. 그 덕분에 짱뚱어, 능성어, 망둑어 등 시전 상인들의 거래 품목보다 훨씬 다양한 물목이 확인된다.
일본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가 편찬한 〈교린수지(交隣須知)〉 또한 뜻밖의 기록이다. 부산 왜관에서 근무했으며, 조선통신사를 수행하기도 한 편찬자는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조선어 어학서를 썼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권위 있는 조선어 어학서였던 이 책은 18세기 조선 음식 기록의 보물창고이다.
〈교린수지〉 속 ‘반식(飯食·먹을거리)’ 편을 보자. “칼국수(刀麵)는 가늘어야 먹기 좋으나니라.” “국(羹)은 더운 김에 먹으면 맛이 더하니라” “떡(餠)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밥 생각이 나옵네다” 같은 표현은 옛날과 오늘의 감각을 아우른다. 김치(葅)에 이르러서는 정신이 번쩍 난다. 김치에 해당하는 한자 ‘葅’에 잇닿은 표기는 오늘날처럼 ‘김치’다. ‘딤채’도 ‘침채’도 아닌 김치다. 그러고는 “김치가 맛이 시금시금하오”라 했다.
수산자원으로 넘어오면 어떨까. 서민 대중에게 익숙한 순서대로다. 붕어, 잉어가 맨 앞이다. 농어와 민어가 뒤따른다. 손질·저장법도 함께 나온다. 암치란 민어 암컷을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다. 넙치도 말려 썼다. 방어는 포를 떠 소금을 질러 항아리에서 숙성시키며 겨우내 먹었다. “연어를 씻어라”라는 대목도 나오는데, 그때도 연어는 별미 횟감이었다.
기록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 시대를 말한다
대구는 소금을 치지 않고 건조한 황대구, 배를 갈라 창자를 빼고 말린 건대구로 구분했다. 알집을 남기고 말리는 ‘약대구’라는 것도 따로 있었다. 가오리는 오려서 말렸고 상어는 참기름을 살짝 더해 석쇠에 구웠다. 송어를 밥 위에다 찌는 방식은 요즘 퓨전 한식집의 단골 조리법이다. 붕장어는 해만(海鰻)이라고 써서 장어와 구분했다. 한 장 뒤에 나오는 낙지볶음, 메기국, 생굴과 초장의 배선(配膳·음식을 차려 손님 앞에 나누어 놓음) 관련 항목 등은 오래된 조리서에서도 보기 힘든 기록이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음식 이야기를 하자고 〈교린수지〉를 쓰지는 않았다. 다만 생활의 실감 속에서 무리 없는,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표현은 생생하고 구체성은 오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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