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인 3월15일 오전 11시, 김씨는 면접장 대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 섰다. 김씨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면접 잘 보라”는 노모의 전화를 뒤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증이 심한 아내의 미소를 떠올리며 이 자리에 섰다. 기자회견 내내 면접 참가를 권하는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이들 휴대전화에 울렸다.
2015년 12월30일 쌍용자동차 회사 측과 재직자 노조(기업노조), 해고자 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 3자는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등이 2017년 상반기까지 조속히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3자 합의에 따라 지금까지 해고자 167명 중 37명(22%)이 복직했다. 하지만 2017년 상반기가 지난 이후에도 나머지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복직하지 못한 130명 해고자 가운데 이번에 면접 전화를 받은 이들은 16명이다. 면접에 응하면 절반인 8명이 채용될 예정이었다. 이들은 전날인 3월14일 밤 2시간30분 동안 논의한 끝에 면접장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함께 살자’는 이유였다.
평택항만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쌍용차 해고자 김선동씨(50)는 “우리가 ‘함께 살자’고 10년 가까이 외쳤던 건 해고자들을 단 한 명도 잊지 않고,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다. 아직 130명의 복직 시기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16명이 남은 114명을 매장하고, 다시 그중 (뽑힌) 8명이 남은 8명을 매장하라는 것은 ‘의자놀이’를 또 하라는 소리다. 면접에 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시장 상황이 유동적이라 (전체 해고자) 복직 시점은 명기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2015년 12월30일 ‘3자 합의서’에 적힌 인력 수요의 계기는 티볼리 롱바디와 Y400(G4 렉스턴) 양산,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이었다. 이 가운데 신차 생산 조건은 이미 지나갔고 주간 연속 2교대제가 4월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에 회사 계획대로 8명이 복직하면 남게 될 122명은 언제 복직이 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쌍용차 복직 면접만 네 번 봤다는 해고자 이현준씨(49)는 “매번 한 줌의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딸들이 고2, 고3인데 이번엔 면접 본다는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사장 작업복을 챙겨 입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고된 이들이 싸움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2005년 1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전부터 기술 유출과 이른바 ‘먹튀’가 우려되었으나 매각이 진행되었다. 약속했던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 1월 상하이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쌍용차에서 손을 뗐고, 그해 4월 쌍용차는 구조조정 인원을 2646명으로 발표했다. 재직 노동자 37%가 넘는 숫자였다.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퇴사했고 나머지 980명은 정리해고됐다(이후 노동조합의 파업과 노사 대타협을 거치면서 정리해고 인원은 165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애초 구조조정 인원을 산출한 근거가 된 회계자료가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과다하게 계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2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1심과 달리 2014년 서울고등법원은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 계상을 인정하며, 쌍용차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또 쌍용차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조건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지 않고 쌍용차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뒤 사실상 지렛대를 잃은 해고자 김정욱·이창근씨가 쌍용차 공장 내 70m 굴뚝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끝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2015년 12월30일 합의는 이렇게 대법원이 정리해고 무효라는 희망을 꺾은 뒤 이뤄졌다.
2009년 노동조합은 일자리 나누기 등 해고 회피 방안을 회사에 제시했으나 회사는 2646명 구조조정 인원을 협의 없이 일방 통보했다.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이 77일간 ‘옥쇄 파업’을 벌이자 이명박 정부는 대테러 전략에 투입하는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회사와 경찰은 노조에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경찰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데, 지연이자를 합해 17억원에 이른다. 최근 경찰은 당시 쌍용차 과잉 진압에 대한 진상조사에 들어갔지만, 소송이 취하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쌍용차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했다).
2009년 이후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그 가족 등 29명이 자살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이러한 ‘응어리’와 무관하지 않다. 해고 안전망에 대한 투자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해고 뒤의 삶은 곧 낭떠러지였다. 현재 쌍용차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이번에 면접 전화를 받지 못한 채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자 김갑수씨(48)는 “재취업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이력서에 쌍용차가 들어가면 일단 거부당했던 경험도 두세 차례 있다. 해고는 살인이란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변론을 맡았던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쌍용차는 회사의 기술 유출, 회계조작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보니 해고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재난’의 피해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해고자도 적지 않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회사가 다시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은 3월16일 현재 김득중 지부장은 130명의 복직을 위해 16일째 단식 중이다(이날 회사는 일방적 면접 통보에 유감을 표하며 3월17일 별도 면접 실시를 제안했고, 지부는 면접을 보되 남은 해고자 복직을 계속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
“단식 말고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단식 말고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신한슬·이상원 기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 투쟁을 시작한 이래 일곱 번째 추석이 지나갔다. 굴뚝 위에 올라갔던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회사 측과 대화하기 ...
-
공장으로 돌아간 쌍차 해고자들
공장으로 돌아간 쌍차 해고자들
신한슬 기자
정리해고에 맞서 거리로 나왔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2413일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있었던 농성 천막이 정리됐다. 고동민 전국금속노조 쌍용...
-
여기 사람이 있다 저기도, 또 저기도
여기 사람이 있다 저기도, 또 저기도
김동인 기자
견고해 보였던 정부는 모래성이었다. 강한 정부는 거짓말이었다. 비선은 실재했고, 거대했던 대통령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거리에서 싸운 사람들은 유령과 싸운 세월에, 허망함이 ‘달그닥...
-
출구 없는 비극 ‘금호타이어 잔혹사’
출구 없는 비극 ‘금호타이어 잔혹사’
김동인 기자
금호타이어 정상화를 둘러싼 내홍이 격해지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3월2일 중국 타이어 회사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6463억원, 신주...
-
‘산 자’와 ‘죽은 자’가 또 나뉘었다 [프리스타일]
‘산 자’와 ‘죽은 자’가 또 나뉘었다 [프리스타일]
전혜원 기자
면접에서 떨어지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자신의 어느 대목이 회사 마음에 안 들었을지 끝없이 곱씹는다. 취업 준비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2...
-
내려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내려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장일호 기자
형식적인 아이템 중 하나였다. 연말이라서, 새해니까 따위 이유로 ‘이맘때’ 하면 좋을 것 중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고공 농성중인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시대다. 섭외가 ...
-
마지막 칼럼이기를 [편집국장의 편지]
마지막 칼럼이기를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온종일 공장 정문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경찰 폴리스 라인 너머는 접근 불가. 무기력한 취재의 반복이었다. 이른 아침 경찰을 피해 공장 안으로 잠입했다. ...
-
해고자 119명이 보내는 구조 요청
해고자 119명이 보내는 구조 요청
장일호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가 적어낸 긴급생계비 지원서 내용은 단출했다. ‘해고 기간 55개월, 국가가 제기한 손배 14억7000만원, 퇴직금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 김씨는 2...
-
‘억’ 소리에 묻힌 노동권을 찾아서
‘억’ 소리에 묻힌 노동권을 찾아서
장일호 기자
“힘들게 싸우고 있는 작은 사업장도 많은데…. 어떤 때는 우리만 주목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쌍용차를 넘어선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김정...
-
누가 그의 목숨 줄에 칼집을 내었나
누가 그의 목숨 줄에 칼집을 내었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더워서 가까운 카페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이마에 얼음을 대보고 뒷목에도 넣어봤지만 소용없다. 땀 닦은 수건에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옷에선 시큼한 ...
-
지금 여기에 필요한 노동 프로파일러
지금 여기에 필요한 노동 프로파일러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나가던 시민이 건네는 말이면 감사한 일이지만 천막 농성장으로 찾아온 노동부 관료의 첫 질문이 이렇다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그래서 되물었다. “가지고 있는...
-
쌍용차 해고 10년 그들이 들려준 대답
쌍용차 해고 10년 그들이 들려준 대답
장일호 기자
햇수로 10년이다. 2009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해고 당사자의 경험과 건강에 대해서는 몇 차례 논의됐다.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고도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
나도 그 굴뚝 위에 있었다
나도 그 굴뚝 위에 있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4시40분, 습관처럼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일요일임을 알아차린 건 문 밖에 있어야 할 신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허탈했지만 모처럼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