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은 푸르고 잔잔했다. 설 전 악천후로 일주일 가까이 배가 뜨지 못했던 일이 까맣게 잊혔다. 목포에서 출발한 배는 92㎞를 달려 2시간 만에 흑산도 예리항에 도착했다. 물빛과 산빛이 푸르다 못해 검다는 흑산(黑山), 겨울과 봄 사이 여행 비성수기임에도 300명 정원 배는 3분의 2쯤 찼다.

외지인에게 흑산도는 홍어의 섬이다. 흑산도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귀하다는 ‘흑산도 홍어’는 안다. 19세기에는 유배지로 악명 높은 섬이었다. 정약전은 천주교도라는 죄로 유배돼 이곳에서 해양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썼고, 최익현은 강화도조약에 반발해 “내 목을 쳐라”며 상소를 올렸다가 유형을 떠났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라면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라는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로 기억되는 섬이다.

지금 흑산도는 공항으로 시끄럽다. 멀고 먼 서남쪽 바다에 자리 잡은 이곳에 50인승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소규모 공항을 건설하는 문제로 논란이다. 벌써 여러 해째 ‘추진’과 ‘무산’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또 다른 분기점까지 왔다. 3월 중에 열리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명운이 갈린다. 서남해안 개발을 둘러싼 이슈라는 점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제주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도서 지역에 민간인 이용 공항이 건설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이슈이기도 하다.

ⓒ시사IN 이명익하늘에서 바라본 흑산도 예리항과 공항 예정지 전경. 오른쪽 사진 안에 표시된 곳이 공항 예정지다.
흑산공항 계획은 흑산면 예리 일원 68만3000㎡ 부지에 1.2㎞ 길이(폭 30m) 활주로와 부대시설 등을 갖춘 소형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비는 국가와 한국공항공사가 1833억원을 낸다. 김포, 김해, 무안, 청주 등에서 흑산공항을 오가는 경비행기가 취항한다. 공항이 건설되면 서울에서 흑산도까지 현재 5시간(KTX+배편) 정도 걸리는데 1시간대로 단축된다.

핵심 쟁점은 명확하다. 환경 파괴와 경제성, 두 가지다. 흑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서남단의 중심이다. 2009년 인근 홍도·비금도·도초도 등과 함께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흑산면사무소 정문에는 흑산도 바다절벽·벼랑바위 등이 유네스코 보전 대상에 속한다는 안내판이 크게 서 있다. 공항 건설은 생물권 보전 취지에 역행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예리항에는 섬 내 몇몇 단체가 만든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흑산공항 건설은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은 주민과의 협력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런 문구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 ‘사람이 먼저다’.”

항구에서 주민 김선복씨를 만났다. 홍어 도매업을 하는 김씨는 흑산공항 반대 주장을 펴는 사람이다. 김씨와 함께 흑산도 공항 건설 예정지를 찾았다. 공항 예정지는 흑산도에서 가장 번화한 여객터미널과 겨우 1㎞ 남짓 떨어져 있었다. 걸어서도 갈 만한 거리였다. 공사 및 비행기 소음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사IN 이명익흑산도 예리항에는 흑산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다.
공사 예정지는 낮은 산이었다. 산길을 따라 낮은 구릉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졌다. 김선복씨는 “이곳은 운동 삼아 다니는 산책로였다. 우리에게는 올레 같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입이 떡 벌어질 풍광은 없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의 멋이 있었다. 동백나무·대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길 곳곳에 방목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곰치·산마늘· 두릅도 지천이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도리어 공항 건설에는 최적지였다. 얕은 봉우리와 등성이만 싹 밀어버리면 활주로를 건설하기 쉬운 지형이었다. 바다를 매립해야 하는 울릉도 공항과 달리 흑산공항이 탄력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눈에 거슬리는 풍경이 있었다. 이 지역 소나무들이 죄다 말라죽고 있었다. 성한 나무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흑산도 해안에 빼곡히 자라는 상록수가 바다에서 보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흑산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흑산은 사철나무가 많은 곳이다.

마을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토지 수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소나무를 죽게 만든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공항 건설로 수목 보상이 실시될 때 소나무는 꽤 비싸게 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2015년 산림청 등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해 병충해로 결론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은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공항 건설이 지역을 얼마나 흉흉하게 만들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흑산도는 철새로도 중요한 곳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의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가 있던 섬이다. 과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흑산공항이 건설될 경우 150종 이상 철새의 중간 기착지인 예리가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업 재검토 의견을 낸 바 있다. 새와 비행기의 충돌 위험(bird-strike)도 지적했다. 철새연구센터 관계자는 “국책사업이라서 의견을 내기 어렵다”라며 말을 아꼈다. 신안군 측은 먹이 제공을 통해 인위적으로 새로운 철새 서식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철새연구센터 앞에 서니 예리항 마을과 공항 예정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항 예정지인 예리항 뒤편 산은 마을의 방풍림 구실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 산이 잘려나갈 경우 흑산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예리 마을이 태풍으로부터 속수무책이 되리라는 염려를 털어놓았다. 가뜩이나 바람이 거센 섬 지역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이들도 이 부분은 수긍했다.

ⓒ시사IN 이명익흑산도 공항 예정지에서 방목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흑산도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신뢰할 수 없는 공항 경제성 분석

가장 뜨거운 논란은 경제성이다. 비용 대비 편익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가 쟁점이다. 2015년 국토교통부(국토부)가 환경부에 제출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계획 변경 요청서’에는 흑산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4.38’이라고 나온다. 이 값이 1보다 크면 경제성이 있다는 뜻이니 흑산공항 건설은 ‘대박 사업’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런데 이 분석은 50인승 항공기가 연간 1만5000회 뜨고 내려야 가능한 수치였다. 매일 평균 41회 운행해야 달성된다는 이야기다. 연간 1만 회 비행기가 운항하는 대구공항이나 김해공항을 앞지르는 수치다. 악천후로 인한 비행기 결항률이 연간 20%에 달할 것이라는 201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와도 배치된다. 한마디로 과대평가된 수치였다.

국토부는 결국 지난해 7월 국립공원 훼손 비용 등이 빠졌다는 환경부 지적에 따라 다시 보완 서류를 제출했다. 그 결과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2.6으로 크게 떨어졌다. 더욱이 비행기 운항으로 인한 대기오염 증가, 여객선 운영 손실 등은 비용으로 넣지 않았다. 당시 국토부의 보완 서류를 공개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든 흑산도 공항의 경제성 분석은 모두 과장되거나 조작됐다”라고 주장했다. 연이은 엉터리 경제성 분석 논란으로 흑산공항은 표류하는 듯했다.

문제는 6월 지방선거다. 정치 지형이 흑산공항을 부채질하는 양상이다. ‘호남 지역 집권당’인 민주평화당은 물론이고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공항 건설에 이견이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부 언론도 흑산공항 표류 위기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호남 홀대 결정판’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전남 도지사 시절부터 흑산공항 추진을 여러 차례 확약해왔다. 이 총리는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부 부처에서는 환경부가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김은경 장관은 흑산공항은 물론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등 각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꾸준히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이 문재인 정부 개각 1호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환경단체 등은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서 김 장관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당시 전남지사 출마를 저울질했던 주승용 의원(바른미래당)이 김 장관에게 “흑산도 공항의 발목을 잡으면 호남인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오해한다”라는 내용의 공개 글을 쓴 적도 있다.

흑산도 공항을 가능케 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었다. 2011년 환경부가 나서서 자연공원법을 개정해 국립공원에도 소규모 공항이 들어설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줬다. 케이블카 설치도 가능하게 했다. 이후 흑산공항 추진 계획이 급물살을 탔고 논란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환경단체가 흑산공항 건설이 ‘MB 적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여기까지는 ‘개발 대 환경보호’라는 오래된 논쟁이다. 흑산공항 논란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섬 주민들 삶의 질 문제다. 흑산공항 건설이 관광객이 아닌 4000여 명 섬 주민이 육지로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수단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흑산도는 여객선 결항률이 연간 평균 11.4%(2013년 KDI 보고서)가 될 정도로 배가 뜨지 못하는 날이 많다.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불편함은 이보다 훨씬 크다. 여객선 결항으로 섬이나 육지에서 며칠씩 발이 묶이거나 뱃멀미로 고통받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를 중요시하는 일부 인사 가운데도 흑산공항 문제는 조심스럽게 보는 이가 있다. 일부 환경 파괴를 감수하더라도 섬 지역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안군 흑산공항개발단 이정수 단장은 “인근 도초도·비금도 주민까지 합하면 모두 1만2000명이 공항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신안군 주민 3분의 1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안군 주민 삶 통째로 바뀔 것”

물론 전제가 있다. 현재 목포-흑산 여객선 요금은 3만4000원이지만 지역 주민은 정부 보조를 받아 6000원이면 탈 수 있다. 이처럼 항공료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진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는 신안군의 바람일 뿐, 아직 정부 차원에서 공식 논의된 것은 없다. 항공 이용객 증가에 따라 여객선 업체 손실이 커지면서 기존 배편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에도 뚜렷한 대책은 없다. 관광객 증가로 여객선 업체도 시너지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뿐이다. 도서 지역의 오랜 숙원인 ‘여객선 공영제’와 공항 건설이 따로 가는 양상이다.

숙박 대책도 없다. 이미 흑산도는 성수기 때면 관광객 포화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기반시설 비용, 각종 토지보상 비용 등 쟁점이 될 사항도 수두룩하다. 신안군 측은 일단 공항부터 건설하고 보자는 생각이다. 공항 건설로 자칫 주민 삶의 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염려는 애초부터 없었다.

지역 여론은 차분했다. 오래 표류해온 탓인지, 되면 좋지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는 이들이 많았다. 흑산도를 떠나기 직전 만난 흑산면 면장은 웃으며 말했다. “날씨가 나쁜 날 배를 타고 흑산에 와보세요. 뱃멀미 좀 하고 나면 분명히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이튿날 목포항에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흑산도행 배편이 끊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항 건설은 정말로 섬사람을 위한 것일까. 머릿속에 멀미가 일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