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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공장이 멈추자 부동산도 얼었다

지난해 6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도 가동을 멈췄다. 개발 열풍으로 올랐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8년 03월 15일 목요일 제5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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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21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 익산을 지나 군산에 진입하자 애향심을 자극하는 광고판이 도시의 초입을 알렸다. ‘우리 고장 군산에서 만드는 올 뉴(All New) 크루즈를 구입합시다.’ 21번 국도는 금강과 만경강이 만든 반도(半島) 군산 도심을 알파벳 ‘C’자 모양으로 감싸고 돌았다. 이 도로가 만든 도심 경계선 서쪽 끝에,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군산공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올 뉴 크루즈’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국GM의 군산공장도 이곳에 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월13일, 한국GM은 ‘올 뉴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던 군산공장을 오는 5월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명절을 앞둔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노조는 즉각 인천 부평에 위치한 본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월21일 찾은 한국GM 군산공장은 이미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사무직 노동자들만 드문드문 모습을 보였다. 공장 서쪽에 위치한 신차 출고장도 한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년 사이 군산에서 가장 큰 제조시설 두 곳이 가동을 멈췄다. 지난해 6월에는 군산국가산업단지 서쪽을 차지하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조선산업 불황 여파로 운영을 중단했다. 그나마 현대중공업 조선소 충격은 버틸 만했다. 군산에 자리 잡은 지 7년밖에 안 된 데다, 타지에서 이주해온 노동자가 많아 군산시 지역사회를 뿌리째 흔들지는 않았다. 공단 동쪽에 자리한 한국GM 군산공장의 사정은 달랐다. 1997년 준공한 군산공장은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군산을 대표하는 대형 제조시설로 한때 전라북도 지역 수출의 30%까지 책임지던 곳이다.

ⓒ시사IN 이명익
한국GM은 군산공장을 오는 5월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군산공장은 2012년부터 생산량이 급감해 지속적인 공장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공단의 동-서 축을 대표하던 두 공장이 문을 닫자 ‘공단 속 주거지’ 기능을 하던 오식도동 원룸촌에도 빈 집과 빈 상가가 늘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점포 입구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원’을 내붙였지만, 방은 쉬이 나가지 않는다. 텅 빈 원룸촌 풍경은 ‘유령도시로 변모하는 군산’을 상징한다. 지역민들은 “지금 오식도동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가져올 진짜 여파는 군산시 전역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2월22일 찾은 군산시청 건물 정면에는 붉은색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 비슷한 외침은 군산시 도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피눈물로 지켜온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취소하라’ ‘군산시민 다 죽는다’. 현수막을 내거는 주체도 다양했다. 관변 단체나 한국GM 협력업체, 부녀회, 통반장 협회부터 은행이나 대형 마트, 동네 독서 동아리까지 각자 이름을 내걸고 한목소리를 냈다. 시가 주도하는 서명운동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주민센터는 물론 시립도서관, 박물관에까지 서명운동 부스가 마련됐다. 도심뿐 아니라 외곽 농촌 지역도 풍경은 비슷했다. 벼농사로 유명한 군산시 옥구읍 읍내 농협에도 ‘한국GM 군산공장 정상화 서명운동’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일부 시민은 이 같은 지역 분위기에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래전부터 위기 징후가 노출됐지만, 지방정부나 지역사회가 진작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흥남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40대 남성은 “시내 여기저기에 플래카드를 걸어둔 풍경은 현대중공업이 조선소 가동을 멈췄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군산시가 뒤늦게 생색을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재임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사무처장도 “지난해부터 이미 협력업체들 사이에서 위기설이 흘러나왔다. 일부 군산공장 노동자 가운데 ‘부평으로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장 폐쇄로 인한 직접적인 후폭풍은 아직 덜하지만, 어림잡아 계산해도 군산 경제 규모가 줄어들 게 눈에 뻔히 보이니까, 시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부터 협력업체 사이에 위기설”


시민들은 이미 한국GM 군산공장의 변화를 다양한 경로로 체감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생산 차종’에 관한 이슈였다. 군산시 소룡동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공장이 신차 배정을 제대로 못 받고, 가동을 서서히 멈춰왔다는 건 3년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얘기다. 부평·창원·군산에 각각 어떤 차종이 배정되는지 군산 사람들은 항상 민감하게 지켜봐왔다”라고 말했다.

군산공장 폐쇄 여파는 협력업체 노동자, 자영업자에게 이어진다. 군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는 협력업체 130여 곳, 일자리 1만1000여 개에 영향을 미친다. 당장 일자리를 잃게 생긴 한국GM 군산공장 소속 노동자 약 2000명을 더하면 약 1만3000명의 일자리가 흔들리는 셈이다. 2월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하반기 지역별 주요 고용지표’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만 군산 지역에서 약 8000개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GM 군산공장 가동률 하락에 따른 결과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포함해 2만여 명의 경제적 기반이 위태로워졌다. 이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27만여 인구의 소도시 군산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공장 폐쇄에 따른 경기 하락 불안감은 자영업자 사이에서 확대되고 있다. 공단과 가장 가까운 동네인 군산시 소룡동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 중인 한 음식점 사장은 “공단 안에서 같은 메뉴 먹기가 지겨운 협력사 임직원들이 종종 소룡동으로 넘어와 회식을 하곤 했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는 발길이 뚝 끊겼다. 단골손님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도 들린다”라며 최근 경기를 설명했다.

‘2020년 인구 52만명 시대를 목표로 새로운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 2012년 9월13일 군산시는 8년 뒤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며 당초 2008년에 세운 ‘2020 도시기본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에는 2020년 예상 인구를 45만명으로 잡았지만, 2012년에는 이보다 늘어난 52만명으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도시계획의 핵심은 주택 보급에 있다. 이들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새만금 개발에 따른 특수를 누려 서해안 핵심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포부였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당시만 해도 파티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군산 지역은 2010년대 초,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 한국GM 군산공장 역시 2011년 한 해 동안 완성차 26만8000여 대를 생산했다. 2010년에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준공됐고, 국가산업단지 부지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2012년 군산시의 ‘장밋빛 예상’은 이 짧은 훈풍이 계속되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됐다.

결과는 처참했다. 2012년 12월 당시 27만8341명이던 군산시 인구는 2017년 12월 27만4992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한국GM 군산공장도 2012년부터 생산량이 급감했다. 21만1000대(2012년), 14만5000대(2013년)를 거쳐, 2014년에는 8만400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4년까지 군산 시내 집값은 여전히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도시 외곽 ‘공단대로’를 따라 대규모 택지 개발이 연이어 펼쳐졌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
군산시청에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 항만도시였던 군산은 북쪽 옛 항구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갔다. 서남쪽부터 동쪽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신규 주택이 확대됐다. 당초 군산을 대표하는 신도시는 군산 도심 서남쪽 외곽에 위치한 나운동이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이곳은 공단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워 공장 근로자들도 많이 입주해 살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군산시는 점점 동쪽으로 아파트 단지를 확대해나갔다. 2010년대 초까지 도심 남쪽 수송동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뒤이어 동남쪽 미장동과 조촌동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이 줄을 이었다. 

2014~2015년 무렵 개발 열풍에 적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시에 부를 가져다주던 공단의 가동률이 떨어졌고 인구는 답보세를 보였다. 주택보급률이 치솟으면서 구도심 슬럼화가 시작됐다. 빈 집, 빈 상가가 늘었다. ‘원조 신도시’였던 나운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2월23일 이 지역을 안내하던 강진권씨(가명·52)는 “구도심 항구 주변은 그나마 최근 관광단지로 개발되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문제는 원조 신도시인 이 동네(나운동)다. 노후한 아파트도 많은 데다, 공단 사람들이 줄면서 나운동 유흥가 상권도 완전히 죽었다”라고 설명했다. 한때 군산에서 가장 화려한 밤거리를 자랑했지만, 금요일인 2월24일 밤에도 불을 켜지 않은 점포가 많았다. 지은 지 오래된 한 모텔에는 “대실 1만원, 숙박 2만원, 달방 있음”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신도시, 새 아파트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군산시의 미분양 주택은 742호에 달한다. 같은 시기 전라북도 전체 미분양 주택 수(1881호)의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2013년 2월 처음 발생한 군산시 미분양 주택은 2016년 6월에 1619호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2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군산시를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저기 저 차가 이 공장 마지막 트럭이야. 운전하는 저 양반, 지금 웃으며 나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어. 내가 알아.” 2월27일,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ㅋ업체 1공장. 한국GM 군산공장에 자동차 내장재를 납품하는 이곳에 경비원으로 일하는 조기석씨(가명·63)가 공장 입구를 떠나는 트럭을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천 부평에 본사가 있는 이 업체는 설 연휴 직후 군산1·2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한때 생산직만 300명을 고용한 이 업체는 한국GM 군산공장 생산량 하락에 따라 최근까지 생산직 70여 명 규모로 몸집을 줄인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 직후인 2월19일,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던 생산직 70여 명에게 해고 통보를 보냈다. 조씨는 “하루아침에 나앉은 생산직 비정규직은 그동안 잔업수당을 다 합쳐도 월 230만원 정도밖에 받질 못했다. 비정규직일수록 군산 토박이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군산에서도 손꼽히는 1차 협력업체 중 하나였다. 조씨에 따르면 ㅋ업체는 군산1공장을 운영했고, 인근에 새로 부지를 분양받아 신규 군산2공장을 마련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공장이 완성될 즈음 한국GM 군산공장은 가동 물량을 줄였고, 2공장은 제대로 가동도 하지 못한 채 창고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날 조씨가 배웅한 ‘마지막’ 2.5t 트럭도 1공장에 있던 설비를 2공장으로 옮기던 참이었다.

2010년대 초 호황 시기에 군산으로 이주한 조씨의 심정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씨는 “군산을 떠나고 싶어도 발이 묶여서 떠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조씨를 붙잡는 건 다름 아닌 아파트였다. “원래 직장에서 정년퇴직 후 이곳 공장에 넘어왔다. 2012~2013년까지 호황이 계속되면서 부동산이 뛰었다. 군산에서는 7000만원 정도면 아파트를 한 채 구할 수 있었다. 투자 목적으로 두어 채 구입했는데, 처음에는 가격이 오르나 싶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계약직이라 조만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산에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조씨는 주변 주민들 사이에도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피해가 적잖다며, 특히 원룸 건물을 3억~4억원에 구입한 사람들이 공실로 인한 손해가 만만찮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가계부채 부담 가중

ⓒ시사IN 이명익
군산의 부동산 시장은 2014~2015년 적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위는 군산 시내 전경.

‘자산의 역습’은 곧 가계부채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지역 시민사회에서도 이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월27일 군산대학교에서 열린 ‘한국GM 군산공장 위기 극복을 위한 집담회’에서도 공장 노동자의 소득 중단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가 지적됐다. 이날 집담회에 참석한 김성훈 살맛나는민생실현연대 대표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주로 고용 촉진 지원책이다. 그러나 정책적 지원을 받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군산을 떠날 확률이 많다. 그나마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집이 안 팔려서 못 나갈 뿐이다. 당장 불법 사금융의 채권 추심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난다. 재고용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위한 법률·주거 관련 지원책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집담회에 참석한 학계·노동계·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국GM이 순순히 군산공장을 정상 재가동시킬 리가 없다”라는 인식을 보였다. 현실을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중앙정부가 GM을 상대로 퍼주기식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었다. 이날 집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단순 조립공장은 매년 이런 이슈가 터질 수밖에 없다. 정부에게 한국GM에 줄 돈이 있으면 차라리 군산에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산업의 수명은 길게 봐도 20년이다. 전기자동차 연구시설을 유치해서 지속 가능한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금속노조 한국GM 군산지회는 인천(부평)과 군산, 서울을 오가며 거리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 문제와 관련해 노조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다. 집담회에 참석한 이범로 전 한국GM 노조 군산지회장은 “현 상황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글로벌 GM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글로벌 GM과 한국 정부 간 협약에 의해 정리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단 이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의 경영 실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무직 노조원들의 실사 참여도 고려해야 한다. 군산공장 회생 방안 마련을 위해서라면 노조 역시 지금보다 더 인내하고 양보하며 희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대부분 이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수송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시민은 “정부가 돈을 지원한다고 해도 나중에 한국GM이 다시 군산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라고 말했다. 신풍동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도 “한국GM은 도저히 믿을 상대가 못 된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유재임 사무처장은 최근 군산시민의 인식에 대해 “지역민들도 예전과는 달리 무작정 ‘지역에 돈 달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지역 산업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역 경제구조 기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양했다. 최근 군산에서 주목받는 관광산업은 더 확장시킬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중론이다. 구도심 근대문화유산을 찾아오는 젊은 세대가 늘었지만, 전주를 거쳐 당일치기로 잠시 들르는 인파가 많다는 게 문제다. 과거 군산의 경제 기반이었던 어업은 새만금 개발 등으로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일부 지방정부 관계자들은 “새만금에 대규모 카지노를 유치하면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군산시의 명운은 완성차 중심의 공업지역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정부의 한국GM에 대한 실사 결과를 지역민들이 가장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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